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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니홉 May 30. 2024

백설기를 못 드시는 어머니

떡이 목에 걸려 죽은 딸을 가슴에 묻은 어머니는 백설기를 안 드신다.

  "이 떡 좀 먹어 보이소!"

  옆집 아주머니가 집안에 경사가 있는지, 떡을 하여 나눠 먹자고 들고 오신다. 들고 온 떡의 종류는 백설기이다. 저녁 5시경, 슬슬 저녁 준비를 하려는 때에, 옆집에서 떡을 갖다 준다. 방금 해온 떡이라 김이 살짝 나는 것이 아주 먹음직스러운 냄새가 솔솔 풍긴다.


  "뭘 이런 걸 다, 고맙심더. 잘 묵을께예."

  나의 어머니는 감사의 인사를 하고 떡을 받는다. 조금 있으면 남편이 퇴근해서 오고, 저녁을 준비하려 하신다. 현재 집에는 엄마와 세 아이가 있다. 첫째는 4살 딸, 이름은 효정(가명)이다. 둘째는 나의 형, 현재 나이는 3살이다. 그리고 막내는 나, 이제 돌 지난 아기이다.


  사실 나는 이 상황을 이야기만 들었지, 아주 아기 때라서 아무런 기억이 없다. 그 때를 상상해서 소설처럼 이야기를 적어 보려 한다. 어머니에게서 몇 번 들어봐서, 내가 그 장면을 본 것처럼 적을 수 있을 것 같다.


출처: 블로그, 나의 일상 이야기


  어머니께서는 저녁 준비와 육아로 바쁘셔서, 우선 첫째 딸 효정에게 백설기를 좀 먹고 있으라고 한다. 집에서 세 아이를 돌보며 살림을 한다는 것은 참 힘든 일이다. 정신없이 반찬을 준비하고 저녁상을 차리려 분주하시다. 그 때 갑자기 효정이의 힘든 숨소리가 들린다.


  컥컥컥컥.

  저녁 먹기 전에 배가 고픈 나머지, 효정이는 백설기를 급하게 먹다가 목에 걸려서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목을 움켜 쥐고 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어머니께서는 딸에게 달려왔지만 어떤 행동을 어떻게 취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 하신다.


  당시에는 집전화가 없었다. 지금이라면 스마트폰으로 '119'에 신고라도 했겠지만, 그 당시 집에는 전화기도 없고, 어머니의 머릿속에는 '119' 라는 숫자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목을 움켜 잡고 숨을 못 쉬어 괴로워 하는 딸에게 '하임리히법' 응급처치라도 알았다면 했을텐데,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어머니는 딸의 등을 탁탁 쳐서 목에 걸린 백설기가 나오게 하려 애쓰신다. 하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다. 딸은 점점 숨쉬기가 힘든지 의식을 잃어가고 몸에 힘이 빠진다. 자신의 눈 앞에서 점점 죽어가는 딸의 모습을 보는 그 마음을 어찌 짐작할 수 있을까? 자신이 할 수 있는 무엇이라도 해보려 한다. 바늘을 가져와서 손가락, 발가락을 다 따서 피를 낸다. 그렇게 하면 숨을 쉴 수 있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감으로. 하지만 딸의 몸은 추욱 늘어진다.


  그 때 아버지께서 퇴근해서 들어오신다. 어머니의 당황한 모습과 그녀의 품에 안긴 딸을 보며 당황하기는 매한가지이다. 옆집 아주머니에게 두 아이를 잠시 부탁하고, 의식이 없는 딸을 안고 택시를 타고 인근 병원으로 달려간다. 병원 응급실에 도착하여 의사와 간호사가 심폐소생술, 가슴압박을 계속 실시한다. 아이가 다시 깨어나길, 아이가 눈을 다시 뜨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그 광경을 지켜본다.


출처: 블로그, Lena


  몇 십 분이 몇 년처럼 길게 느껴진다. '제발, 나의 사랑하는 딸아, 눈을 떠다오. 이렇게 너를 보낼 수는 없단다.' 이제는 말도 재잘재잘하며, 애교가 많고 눈이 새카맣게 예쁜 딸이 저기 차가운 병원 침대에 누워서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얼마 후 의사가 부모님께 말한다.

  "안타깝게도 따님이 사망하였습니다. 유감입니다."


  정말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다. 불과 몇 시간 전 만해도 옹잘옹잘 떠들며 놀던 아이가, 지금은 차가운 주검이 되어 병원침대에 누워있다.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다. 태어나는 순서는 있어도, 저승에 가는 순서는 없다더니, 하늘은 무심하게도 예쁜 딸을 이리도 빨리 데려가 버린다. 머릿속이 하얗다. 앞으로 어찌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


  부모님은 차가운 딸 아이의 시체를 받아 들고 병원을 나선다. 가난한 형편에 장례를 치를 수는 없다. 축 늘어진 딸아이를 업고 집으로 돌아온다. 아버지는 삽을 챙기고, 어머니는 온기가 점점 식어가는 딸을 업고 뒷산으로 향한다. 아버지는 미친 듯이 땅을 판다. 땅을 파는 아버지도 제 정신이 아니다. 어느 정도 구덩이 공간이 마련되었다. 그곳에 눈이 까맣게 예뻤던 효정이를 고이 눕혔다. 어머니는 자신이 너무나도 원망스럽다.

  '백설기를 효정이에게 주지 않았다면...... 물을 주면서 꼭꼭 씹어 먹어라고 했더라면......'


  그렇게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예쁜 딸을 뒷산과 가슴에 묻고, 두 분은 집으로 돌아 오셨다. 그 때 어머니는 딸을 따라 죽고 싶으셨다고 한다. 하지만 집에는 당신을 기다리는 두 아이가 있어서 그러지 못하셨다고 한다. 글을 쓰면서 그 장면을 상상해보니 내 눈에 눈물이 고인다.


  내가 부모가 되기 전에는 사실, 백설기를 먹다가 목에 걸려 죽은 누나 이야기를 듣고도 그렇게 마음 아프게 공감을 하지는 않았었다. 그냥 내가 아기 때 누나가 한 명 있다가 죽었구나, 정도의 느낌이었다. 하지만 내가 두 아이의 아빠가 되어보니, 그 마음을 이제는 알 것 같다. 내 전부를 주어도 바꿀 수 없는 세상 가장 소중한 아이가 갑자기 죽어버리면, 내 마음이 어떨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 날 이후, 어머니께서는 '백설기'를 절대 드시지 않으셨다고 한다. 아마 나라도 그렇게 했을 것 같다. 그리고 예전 등본을 떼면 죽은 딸 아이의 이름이 적혀 있는 것을 보는 것이 너무나도 괴로우셨다며, 지금은 사망자가 안 나오는 등본이라 다행이라 말씀하셨다.


  나의 어머니 인생에, 그렇게 딸 아이를 떠나보내신 적이 있으셨다. 그 날 이후, 절대로 '백설기'를 드시지 못하는 어머니가 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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