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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니홉 Jul 11. 2024

낙지탕탕이와 소맥 한 잔

한 여름밤의 꿈같았던 엄마와의 밤마실

  군 제대 후 취업하여 혼자 자취를 하며 살았다. 남자 혼자 자취를 하면 어머니 입장에서는 물가에 내어 놓은 아기 마냥 불안하기만 하다. 직장이 정해지고, 직장 인근 자취방을 하나 잡았다. 집에 있는 나의 물건들을 몇 가지 옮기고, 직장이 있는 지역의 홈플러스에 가서 생필품들을 마련하여 나도 어엿한 1인 가구의 구성원이 되었다.


  혼자 밥 해 먹기 어설픈 사회 초년생의 삶은 고향집 어머니와 연결되어 있다. 어머니께서 봉지 봉지에 싸주신 시래깃국, 곰국을 냉동실에 차곡차곡 쌓아 둔다. 아침에 한 봉지를 꺼내 양푼에 물을 받아 잠시 넣어두었다가 작은 편수 냄비에 넣고 끓인다. 그렇게 집에서 가져온 반찬과 국으로 아침밥을 먹고 출근한다. 어머니께서는 감사하게도 보름에 한 번 정도 그렇게 준비해 주셨다. 고향집에 내려가면 봉지에 담은 국을, 박스 하나에 담아와서 냉장고에 저장하였다.


출처: 블로그, 하자보수 전문업체, 예인건설


  가끔 어머니께서 자취방을 방문하신다. 남자 혼자 살면서, 아침을 대충 해 먹고, 잠만 자는 자취방은 대략 그림이 그려질 것이다. 주방이며, 화장실이며, 방 청소 상태가 그렇게 양호하지 못하다. 어머니께서 올라오신다는 연락을 받으면, 나는 내 나름 청소를 한다. 주방에 있는 가스레인지를 닫고, 화장실 변기를 청소하고, 방바닥을 쓸고 닦는다. 하지만 어머니의 기대에는 못 미친다. 내가 직장에 있는 동안, 어머니께서 다시 청소를 하신다. 그러면서 퇴근하여 들어온 나에게 '좀 깨끗하게 하고 살아라!'며 잔소리를 하신다.


  그러한 상황이 몇 번 반복되니, 이제는 내가 청소를 아예 하지 않는다. 내 나름 청소를 해도 욕을 먹고, 안 해도 욕을 먹으니, 차라리 청소를 하지 않고 욕을 먹자는 심보에서 그랬던 것이다. 늙으신 어머니께서 자취방에 오셔서 청소를 하게 하는 것도 참 못된 일인데, 청소를 조금이라도 해 두는 성의를 보이지 않는 아주 못된 아들 녀석이었다.


  무더운 여름날, 태양이 서쪽으로 넘어가고 저녁에 선선한 바람이 부는 날이었다. 그날 자취방에 오신 어머니와 저녁을 먹고 함께 산책하러 나섰다. 나의 자취방에서 도보로 15분 정도의 거리에 수변공원이 있었다. 아주 큰 호수 둘레로 걸으며 산책하기 좋은 공원이다. 소화시킬 겸 엄마와 나는 그 공원에 가서 걸었다. 공원에 운동하러 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출처: 블로그, 민이의 사진공간


  엄마와 나는 손을 잡고 걸었다. 어린 시절에는 엄마와 함께 손을 잡고 걷는 경우가 많았다. 딸이 없는 우리 집에서 나는 엄마에게 딸 같은 아들이었다. 함께 시장에 갈 때 손을 잡고 가서, 장 본 물건들을 들고 오는 아들이었다. 그 후에는 가끔 함께 걸을 때 손을 잡고 걸었었다. 어머니는 여자 중에서 손이 큰 편이었다. 손가락이 길쭉길쭉하게 생겼으며, 나와 손의 크기가 같았다. 엄마의 반지 중 탐나는 반지를 내가 빌려서 끼고 다니기도 하였다.


  군 제대 후 엄마와 손을 잡고 오랜만에 걷는다.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수변공원을 걸으니 기분이 상쾌하다. 어머니께서도 막내아들의 손을 잡고 걸으니 기분이 좋으신가 보다. 우리 둘은 그렇게 한참을 손잡고 수변공원을 산책하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길가에 낙지집이 하나 보인다. 살짝 땀을 흘려 시원한 맥주가 당기면서, 우리는 '낙지 탕탕이'와 함께 한 잔 하러 들어갔다.


출처: 블로그, 웅이맘의 달콤키친


  조금 있으면 자야 할 밤이라 가볍게 먹을 수 있는 낙지 탕탕이를 시켰다. 어머니께서는 문어, 낙지, 회 등 바다에서 나는 음식을 좋아하셨다. 술이 먼저 나왔다. 우리는 소맥을 두 잔 만들어 시원하게 한 잔 들이켰다. 그 후 남은 맥주로 소맥 반 잔씩 만들어 두 번째 잔을 마셨다. 그 사이 주문한 낙지 탕탕이가 나왔다. 잘린 낙지다리가 꿈틀꿈틀 거리는 것이 아주 맛나 보인다.


  어머니와 나는 소주를 한 잔씩 홀짝홀짝 마시며 낙지 탕탕이를 먹었다. 낙지 탕탕이와 소주를 다 먹는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우리 둘은 살짝 알딸딸한 기분으로 집을 향해 걸었다. 집으로 향하는 길에도 우리 둘은 함께 손을 잡고 걸었다. 장성한 아들과 함께 소주 한 잔 후 손을 잡고 걷는 기분이 어떠하셨을까? 아주 뿌듯하고 즐거우셨으리라, 내 나름 판단하여 본다.


  낙지 탕탕이와 소주를 먹고 집으로 걸어올 때의 장면이 어렴풋하게 기억난다. 그때 잡았던 어머니의 따뜻한 손, 선선하게 불어오던 바람, 알딸딸한 취기가 돌아 약간 터덜터덜 걷던 두 사람의 걸음. 여름날 저녁 그날의 손을 잡고 걸어가던 한 키 큰 남자와 허리가 약간 구부정한 할머니가 그날의 풍경이 되어, 지금도 그 길을 걸을 때 내 앞에 두 사람이 다정하게 걷고 있다.


  어머니께서 자취방에 오시면 같이 술 먹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어머니는 술을 그다지 좋아하시지 않으셨다. 좋은 안주 있으면 한 잔, 간단하게 드시는 정도의 음주자였다. 그날은 어머니께서 소맥 1.5잔을 드시고, 소주도 두 잔 정도 드신 것 같다. 그날은 술이 술술 들어갔던 것일까.


  집에 오는 길에 어머니께서 나의 팔 한쪽에 기대어 팔짱을 낀 것 같기도 하다. 그날은 살짝 취해 아들에게 기대고 싶으셨나 보다. 항상 굳세게 버티어 사시느라 힘드셨을 어머니. 그날은 아들의 팔에 기대어 잠시 쉼을 얻으셨다면 참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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