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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니홉 Jul 04. 2024

'아로나민골드'와 '백송이 장미'

살면서 어머니께 해드린 가장 기억나는 선물 두 가지

  부모님의 생신 선물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며 살았다. 우리 집 분위기가 그러했던 것 같다. 생일이 되면 미역국에, 나물 반찬, 생선 한 마리를 마련하여 식사를 하였다. 케이크를 사서 촛불을 불거나, 서로에게 생일 선물을 챙겨주는 것은 사치였다. 부모님도, 형과 나도 생일은 그냥 평소보다 맛난 밥을 먹는 날 정도로 생각하였던 것 같다.


  하지만 어머니 생신 선물로 챙겨드린 것이 두 가지 생각난다. 그 두 가지 물건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보려 한다. 죄송하게도 아버지 생신 선물로 챙겨드린 것들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안 챙겼던 것 같다. 내가 돈을 벌고 나서는 용돈이나 티셔츠를 선물로 드린 것 같은데, 나의 기억에 없는 걸 보면 그렇게 신경 써서 준비하지 않은 것 같다. 부모님 두 분 다 소중하고 감사하지만, 아버지보다 어머니에게 더 마음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분의 배에서 나와서 그런가.


  나와 형이 초등학생 때였던 것 같다. 텔레비전에서 '아로나민골드' 광고를 한다.

  "피로엔 아로나민골드. 육체피로, 눈의 피로엔 아로나민골드"

  그 광고를 보면서 형과 나는 이번에 다가오는 엄마의 생일 선물로 저걸 사 드리자며 의견을 모은다. 형과 나는 평소 모아두었던 돼지저금통을 가른다. 천 원짜리, 오백 원 짜리, 백 원짜리, 오십 원짜리, 십 원짜리 동전을 각각 모아 세고 총금액을 계산하였다. 아로나민골드 한 통에 얼마인지는 몰랐지만, 어느 정도 금액이 되어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형과 나는 그 돈을 봉지 봉지에 넣어 근처 약국으로 갔다. 약국에 들어서는 초등학교 남학생 둘을 보고 약사는 말하였다.

  "얘들아, 무슨 약이 필요하니? 뭐 줄까?"

  "어머니 생신 선물로 '아로나민골드' 한 통 사려고요."

  "그래? 아이고 기특하네. 엄마가 엄청 좋아하시겠다."

  그런 대화가 오고 가며 우리는 아로나민골드를 한 통 사서 집에 왔다. 다행히 가져간 돈으로 한 통 구매가 가능했었다. 금액은 기억이 안 나는데, 약사에게 동전이 든 봉지를 내밀었던 기억은 난다.


출처: 블로그, 그레이스의 건강한 하루


  드디어 어머니의 생신날이 되어, 우리는 어머니께 생일 선물이라며 우리가 약국에서 사 온 '아로나민골드'를 드렸다. 어머니께서 울컥! 하심이 느껴진다. 아들 둘을 키우면서 고생한 자신의 삶을 보상받는 기분이었을까? 생일 선물을 받으신 어머니께서 아주 기뻐하셨다. 그 후 어머니께서는 매일 그 영양제를 복용하시며 힘든 때밀이 일을 하셨다. 영양제를 먹은 것과 안 먹은 것의 차이를 느끼셨는지, 우리가 사 드린 것을 다 드신 후에는 본인이 직접 사서 드셨다.


  지금도 '아로나민골드' 관련 광고나 그 물건을 보면 그때의 장면들이 영화처럼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형과 내가 저금통을 뜯어서 돈을 세는 장면, 약국에서 약사와 이야기하고 사 오는 장면, 어머니께서 기뻐하시던 얼굴. '아로나민골드'는 힘들게 일하시는 어머니에게 드린, 아들이 전하는 사랑의 상징이었다.


  군 제대 후 취업을 하고 직장생활을 하였다. 사회생활의 초보였던 나는 하루하루 힘들게 직장에서 버티고, 저녁에 술자리에서 술을 마시며 지냈다. 술을 꽤 좋아하던 나이기에 술자리가 잦았고, 술을 마시고 저녁 늦게 혼자 사는 자취방에 들어와 잠을 청하곤 하였다. 술에 취해 집에 들어와 씻고 잠시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갑자기 어머니 생신이 생각났다.


  며칠 뒤에 어머니 생신이었던 것이다. 술에 취해 감성적이었는지, 내가 살면서 엄마에게 꽃 선물을 한 번도 안 드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친구를 사귀면서 백일 이벤트로 장미꽃 백 송이를 선물하기도 했지만, 정작 나를 낳아준 어머니라는 여성 분에게는 꽃 선물을 정식으로 한 번도 드린 적이 없었다.


  그러면서 어머니를 떠올려 보았다. 과연 어머니는 살면서 꽃 선물을 몇 번 받아 봤을까? 꽃을 좋아하시는 어머니지만 꽃을 돈 들여서 사지는 않으셨다. 아버지가 꽃 선물을 했을 리는 만무하다. 어머니는 꽃 바구니를 받아 보셨을까?


  술이 취했지만, 정신은 어느 정도 멀쩡했기에, 컴퓨터로 꽃배달을 검색하였다. 예전에는 돈이 없어 어머니께 제대로 된 선물을 못 해드렸지만, 이제는 돈을 버는 직장인이다. 나의 어머니께 꽃바구니를 선물해 드리고 싶다. 사이트에서 괜찮은 장미꽃 100송이 바구니를 하나 선택하여 고향집 주소를 입력하고 결재하였다.


  그러고 나니, 갑자기 내 마음이 울컥하다. 한평생 꽃 바구니 선물 한 번 받아 보시지 못한 어머니. 여자친구에게나 꽃 선물을 할 줄은 알았지, 엄마에게는 한 번도 꽃 선물을 하지 않은 아들. 그 아들이 장성하여 자취를 하고 살아도 항상 먹거리를 챙기시는 어머니. 아들이 객지에서 안 아프고 건강하게 잘 지내는지를 항시 걱정하시는 어머니.


출처: 블로그, 파인플라워, 꽃을 선물하다


  어머니 생신 날이 되었다. 아침부터 나는, 내가 주문한 꽃바구니가 언제 전달될까? 하는 생각이 가득하다. 직장에 출근하여 일을 하는 와중에도 간간히 '꽃바구니가 언제 엄마 손에 전해질까?' 하며 나의 핸드폰이 울리지 않는지, 핸드폰을 만지작거린다. 꽃바구니를 받으시면 엄마는 과연 어떤 기분을 느끼실까? 환하게 웃으시는 엄마의 얼굴이 보고 싶다.


  잠시 후, 나의 핸드폰에 문자 도착음이 울린다. 엄마가 보낸 문자이다. 장미꽃 100송이가 담긴 꽃바구니 사진이다. 어머니께서는 내가 일하는데 방해가 될까 봐, 받으신 꽃바구니의 사진을 찍어서 나에게 보내셨다. 문자만 봐도, 기분이 좋음이 단 번에 느껴진다. 나는 살짝 짬을 내어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엄마, 생신 축하해요. 꽃바구니 잘 받았어요?"

  "응. 아들, 너무 고마워. 내가 언제 이런 꽃바구니 선물을 받아보겠노. 비싸지 않나?"

  "맞제? 내 아니면 줄 사람이 없다이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하하."

  "그래. 아들 고마워. 이 꽃 말려서 집에 둬야겠다."

  "응. 생일 축하해. 사랑해 엄마!"


  내가 살면서 엄마랑 했던 통화 중에 가장 유쾌하고 사랑스러운 통화였던 것 같다. 소녀처럼 상기된 엄마의 목소리가 지금도 내 귓가에 선명하다. 어머니께서는 그 꽃바구니를 최대한 집에 두셨다. 나중에는 꽃은 정리하고 바구니는 남겨 두셨다. 정말로 처음이자 마지막 꽃바구니 선물이 될 줄이야.


  일찍 돌아가실 줄 알았다면 꽃 선물을 매 년 어머니 생신 때마다 해 드릴 걸. 납골당에 꽃을 가져간들, 기뻐하시는 엄마의 얼굴을 볼 수 없고, 전화 넘어 상기된 엄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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