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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srkim Jul 03. 2023

군인. 유학생. 그리고 재즈음악

사실 대학교 졸업식을 참석하지 못했다. 날짜가 자세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졸업일과 입영 날짜 사이가 너무 촉박해서 졸업식 행사에 참석할 여유가 없었고, 결국 짐을 학교에서 먼저 정리한 뒤 한국으로 귀국했었다.  아무리 내가 원하는 미국 내의 의대 진학이 확정되고 2년 뒤 미국으로 돌아갈 계획이 정해진 상태였다 할지라도, 막상 입영날짜가 다가오니, 난 졸업의 후련함보다는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아마 한국에서 군대를 가야 하는 모든 남자들이 겪는 그런 심정이었겠지..


입영일의 그 느낌은 지금도 기억이 난다. 6월 땡볕 아래, 논산 육군훈련소 연병장에 퍼지는 그 발구름 소리와 흙먼지. 내 머리는 너무 짧아서 어색했고, 그 더운 날씨에 빨간 모자 조교들의 그을린 피부, 찢어진 눈빛을 숨어 올라오는 긴장감. 막상 씩씩하게 들어왔지만, 들어온 순간 느꼈다, 아 이제 여기는 정말 바깥과는 다른 곳이구나 (난 이제 망했다는 엄습감도)


사실 군생활이란 게 대부분의 한국 남자들이 거치는 과정인지라, 뭐 내가 그렇게 특별한 군생활을 한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돌이켜 보면 인생의 많은 부분을 타국에서 생활한 내 인생에 있어 하나의 큰 기점이라고 해야 할까. 결국 나의 정체성과 인생의 여정에 있어서 중요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그 당시 내가 지원해서 간 보직은 경리행정병이었기에, 전투부대가 아닌 행정부대에서 사무직 일을 주로 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특히 주간 근무를 하는 환경이 경리사무실 안에서 간부들과 군무원들, 즉 그 사이에서의 한국 회사 생활 비슷한 것을 경험해 볼 수 있었다. 비록 내가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라왔지만, 고등학교와 대학교 교육을 미국에서 마친 상황이었기에, 그 한국 오피스의 사내 문화란 건 새로운 것이었고, 처음 제대로 배워보았던 시간이었다. 직장 상사 (간부)들을 대하는 자세와 행동. 또 후임을 대할 때의 선임으로서의 내 리더십과 포용력. 그 시기가 아니었다면 아마 지금까지도 나에겐 그렇게 한국의 조직 또는 사내 문화를 간접적으로 나마 경험해 볼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간 근무 시간 외에 내무실에서 생활하는 한국 군대의 군생활은 마냥 쉽지는 않았다. 나는 유학을 떠난 시기가 꽤 늦었기에, 항상 정신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완연한 한국인이라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군생활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다행인 것은 워낙 내가 겉으로 내 감정을 많이 드러내는 성격이 아니고 시키는 대로 잘하는 편이기에, 아마 다른 사람들은 잘 몰랐을 것이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잘 생활하고 적응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지만, 그 속내는 군생활 초반부에 적응하는데 좀 힘들었던 것 같다.


사실 그 어떤 특정 무언가가 문제가 있었다고 콕 집어서 말할만한 것도 없다. 아마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다 겪어보았을 만한 그런 일반적인 경험일 수 있겠지만, 개인주의적 성향이 짙은 내 성격과 외국에서 수년을 생활하다 돌아온 상황이 결합되어서인지, 그 단체생활과 병영문화가 힘들었던 것 아닐까 싶기도 하다. 정말 이등병 때는 2년 (정확히는 23개월)의 시간이 너무나도 더디게 흘러가는 것만 같았다. 내 사무실 컴퓨터에 앉으면 누가 만들어 놓은 전역일 계산기라는 사악하고 앙증맞은 어플 같은 게 있었는데, 달팽이처럼 1일씩 움직이는 D-day숫자를 보는 내 심정은 정말 숨 막힐 듯 답답했다. 또 내가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온 유학생이란 사실도, 처음엔 주변 사람들에게 흥미로운 부분이었는지 이것저것 물어보고 관심 가져주고 했지만, 그마저도 한두 달이 지나고 나니, 나 또한 그저 다른 신병들과 별반 다를 게 없는 이등병이었고, 그렇게 단체 속에 점점 일개의 병사로 묻혀갔다.


부모님이 면회왔을 때 찍힌 사진. 웃는 게 웃는 것이 아니던 그 시절. 부대 특성상 근무복을 입고 생활했었다.




그럼에도 결국 사람이란 존재는 환경에 적응을 하게 마련인 것일까?


나는 그 안에서 조금씩 "짬"이 생기면서 나만의 공간과 시간을 만들어 내어 가기 시작했다. 아침엔 남들보다 조금 더 일찍 출근해서 조용한 나만의 시간도 만들어 보았고, 저녁식사를 하고 나선, 내무실 생활을 피할 겸 체력단련장에서 시간도 보내곤 했다. 점호시간이 지나면, 자기 전에 혼자 독서실에 가서 책들을 읽고, 주말엔 인터넷 방에서 웹서핑을 한다던가 또 CD플레이어로 음악도 듣기 시작했다 (보안 문제로 MP3나 다른 기기들은 가져올 수 없었고, 이 또한 허가가 필요했다). 그렇게 군 생활 안에서도 나만의 공간과 시간을 점점 만들며 나의 생활을 조금씩 찾아가고 있었다.


무슨 이유인지, 그 당시 내가 발견한 관심사는 재즈 음악이었다. 사실 내가 재즈음악을 처음 접한 것은 대학교 때 생화학 실험실에서였다. 실험실 지도교수님이 좋아하는 음악이 재즈였는데, 그래서 나와 내 동료학생들이 실험을 할 때면 교수님과 함께 재즈음악들을 함께 듣곤 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나는 Dave Brubeck이라는 뮤지션의 음악에 나도 모르게 빠져 들었던 것 같다 (유명한 곡으로 그 당시 한국 통신사 광고로 나오던 Take Five라는 곡이 있다).


그러다 보니 재즈음악은 군생활에 있어서 내 마음의 해방구 역할을 해주는 느낌이었다. 뭐라 그럴까, 그 무엇 하나 내 맘대로 할 수 없을 것 같은 군대 안, 그리고 그 수많은 규율들 사이에서, 나 혼자 이어폰을 꽂고 미국에서 듣던 재즈 음악을 듣고 있으면, 조금이나마 그 재즈의 자유로운 영혼으로써 마음이 뚫리는 대리만족의 기분이었다고 할까. 난 이미 알고 있던 Dave Brubeck의 음악으로 시작해 점점 다른 한국과 미국의 연주자들도 찾아보기 시작했다. 특히 그중에서 재즈 속의 피아노 연주를 많이 좋아하곤 했었다. 정말 막 치는 듯한 그 빠르고 자유로운 연주 속에서 앙상블과 감동을 선사하는 재즈 속의 피아노는 나를 흠뻑 매료시켰다. 지금도 기억나는 음악은 Arturo Sandoval이라는 트럼펫 연주자가 발매한  [My Passion for the Piano]라는 피아노 앨범이 있었는데, 그 음반은 정말 닳고 닳도록 들었던 것 같다 (그 당시 아마존으로 미국에서 한국 집에 주문했었다). 어떻게 저렇게 피아노를 칠 수 있지? 본업은 트럼펫 연주라는데, 피아노 연주를 어떻게 저렇게 잘하지? 언젠가 한번 저 사람 저 연주를 보고 싶다는 생각도 하면서... 그렇게 내 군생활은 재즈음악과 독서, 그리고 조금의 체력단련 운동으로 채워져 갔고, 그렇게 시간도 조금씩 조금씩 서서히 흘러갔다.


Arturo Sandoval의 피아노 연주곡 중 내가 제일 좋아했던 Sureña라는 곡. 정말 지금 봐도 너무 멋있다. 더 늦기 전 그의 연주를 직접 보러 가야겠다.




얼마 전 운전을 하고 가는 길, 딱히 듣고 싶은 음악이 없어서 예전 플레이리스트 속에서 이곡 저곡들을 꺼내어 돌려 보았다. 그리곤 우연히 멈추게 된 Arturo Sandoval의 피아노 곡들. 오랜만에 다시 들어보았다. 정말 숨 쉬지 못할 정도의 흡입력 있는 그의 연주는 몇 년이 지난 지금 다시 들어도 너무 멋졌다.


더욱이, 그 음악들은 그때 그 당시 군대 안 독서실과 내무반에서 그 고물 CD플레이어로 듣곤 했던 군생활의 기억들을 촤르륵 회상시켜 주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탄 것처럼.


그때 군생활 시절엔, 이것저것 힘들고 답답하다고 불평이 많았지만, 지금에 와서야 생각을 해보면, 그때만큼은 정말 미래의 진로에 대해서만은 고민하지 않아도 괜찮았던 내 인생의 유일한 시기였다. 물론 그 당시 군대 안에는 전역 후 미래에 대해 고민을 하고 준비하며 공부하는 동료들이 꽤 많았다. 하지만 나는 감사하게도 미국으로 돌아갈 계획이 다 짜여 있는 상황이었고, 2년 정도의 군생활 안에서 내가 무언가 발버둥 치며 의대생활을 걱정하고 준비하는 것도 필요치 않은 상황이었다. 그래서 미래의 고민 보단 그때 그 현재를 사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그 당시 나는 몰랐다. 그저 난 군생활의 답답함을 빨리 벗어나고 싶었고, 그렇게 전역만을 기다리면서 생활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미래의 고민 없이 현재만을 살아가도 되는 시기가 또다시 오진 않으리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었던 것이다.


지금까지의 삶을 돌이켜보면, 그 순간의 행복, 또 그리고 소중함들을 잊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았다... 정말 처절히 힘들고 외로울 것만 같았던 순간들 마저도 되돌아봤을 때엔, 그 안에서의 행복과 소중함이 항상 있었던 것 같은데, 왜 그 순간순간에는 알지 못하고 감사하지 못했을까.


삶의 행복이라는 것이 꼭 대단한 것이 아닌 그 하루하루 삶 속에 있기 마련인데, 왜 그 당시에는 그 소소한 순간의 행복들을 미처 알지 못하고 돌아서서야 아쉬워하는 내 모습이 조금 부끄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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