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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srkim Jun 27. 2023

그래서 군대는 어떻게 할 건데? II

의대 합격을 함으로써 나의 어깨 위에 있던 꿈의 중압감은 내려놓을 수 있었다. 사실 실패를 준비하며 시작한 도전이었기에, 그렇게 주어진 합격의 결실은 꿈만 같았고, 정말 구름 위를 떠다니는 기분이었다.


대학교 마지막 학기는 몇몇 남아있는 학교들 인터뷰를 다니고, 그 학교들로 부터 결과를 듣는 것으로 채워졌다. 정말 너무 감사하게도, 합격된 의대의 수는 꽤 늘어났으며, 나에겐 여럿의 선택지가 주어지기 시작했다. 어느 의대로 진학을 할지 결정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하지만 나에겐 정말 또 다른 큰 고민이 아직 남아 있었다.


"그래서 군대는 어떻게 할 건데?"


몇 해전 카투사에서 낙방한 이후로, 딱히 다른 방도가 없었기에 군대 문제는 미뤄두고 있었는데, 그 시기와 해결 방법이 정말 너무 어려웠다. 나는 병무청에서 보기엔 유학생이지, 한국 내 의과대학생이 아니었기에, 한국에 있는 의대생들처럼 입대를 미루고 나중에 군의관으로 복무할 수 있는 길도 어려워 보였다. 그렇다고 해서 병역의 의무를 해결하지 않고 미국 의대에 진학을 하게 되면, 그 바쁘고 어렵다는 의대 4년 중간에 공부를 중단하고 2-3년을 휴학해야 하는데, 과연 그게 올바른 선택일지 고민도 되었다. 이게 지금 생각해 보면, 꽤 적지 않은 수의 의대생들이 의대 2학년을 마치고, PhD과정을 하기 위해 의대 본과 과정을 휴학하기도 하는데, 한국인으로서 의대 2학년 뒤 2-3년 군대를 다녀오는 것도 불가능하진 않았겠지 싶은 생각도 든다 (사실 그러한 케이스를 주위에서 보기도 했다). 어찌 됐건, 많은 사람들의 조언은 병역의 의무를 해결하고 의대를 진학해야 한다는 게 대부분이었다. 의대의 공부는 힘들고 연속성이 중요하기에, 중간에 쉬지 않는 것이 낫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래서 난 의대 입학 전에 군대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고. 최대한 짧은 시간에 병역의 의무를 마칠 수 있는 육군병으로 가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그 당시 육군병 복무기간은 23개월 정도였기에, 타이밍이 잘 맞으면 2년만 한국에 다녀와도 될 가능성이 있었던 것이다. 단지, 이 모든 것을 어떻게 학부 졸업과 의대 진학 사이에 끼워 넣느냐가 나에겐 관건이었다. 조금이라도 타이밍이 어긋나면, 한국에서 보내야 할 시간이 3년으로 늘어날 수 있는 여지가 다분했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면, 육군 일반병으로 지원할 경우, 입대의 시기가 예측 불가능이었다. 그저 학부졸업을 마치고 무작정 한국입국을 하면, 병무청의 입영통지를 기다려야 되는 수순이었고, 그럴 경우 보통 몇 주에서 몇 달간 입대를 기다린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래서 입영시기가 확실한 방법을 찾다가, 여러 특기병과를 찾아보았다. 내 경제학 전공을 기반으로 경리행정병이라는 병과에 지원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운이 좋게도 학부졸업 후 6월에 바로 입대 할 수 있는 시기가 있었다. 이를 추진할 경우 2년 안에 병역을 마치고 다신 2년 만에 미국으로 "쓩" 복귀할 수 있는 기회가 엿보였다.


근데 가장 큰 문제는 미국 의대입장에서 나에게 2년이나 admission deferral (입학 연기)을 허락해 줄지 여부였다. 내가 알아본 바로는 의대들은 이러한 입학 연기에 있어서 꽤 까다로운 편이었는데, 허락해 준다 한들 보통 1년이 최대기간이었고, 그래서 2년이나 입학연기를 신청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사실 그래서 이러한 경우에는 미국 의대 지원 자체를 미루라고 하는 경우도 많았다.


어찌 됐건, 나는 이제 여럿의 의대에 합격을 한 상황이었고, 그중에서 나에게 한국으로 2년 군대를 다녀올 시간을 허락해 줄 의대를 찾는 것이 필요했다. 아무도 허락해주지 않으면 어쩌나, 그냥 의대에 진학하고 다른 기회를 엿보아야 하나 좀 복잡한 상황이었다.




그렇게 미국 학부 졸업을 앞둔 봄. 결정의 시간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군대 문제는 해결할 수 있을지.

어느 의대를 진학하게 될 것인지.


1년 전 의대입시의 문턱에서 하던 마음고생에 비하면 나름 행복(?)한 고민이었을는지도 모르겠지만, 고민과 걱정의 무게는 절대 가볍지 않았다. 2-3달 안에 이 모든 것들이 톱니바퀴처럼 딱 떨어져 맞도록 풀어나가고 싶었는데, 난 자신이 없었다.


나는 이제 합격한 의대들 중에서 내 마음속의 순위를 정해 나갔고, 그 내 마음의 1위 학교부터 내 상황을 설명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다 보면 그 어느 학교에서 나의 상황을 이해하고 입학 연기를 해주겠지 하는 마음으로.


사실 미국 의대들 순위라는 것이 정말 복잡한데, (요즘은 좀 특히 말이 많아졌지만) 지금이나 그때나 US News & World라는 매거진에서 의대 랭킹을 매기는 것이 있다. 아무리 이러한 랭킹이 중요하지 않다고는 하지만, 미국 의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학부생 입장에서는 사용할 수 있는 객관적인 잣대나 정보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이런저런 내가 아는 정보, 유추한 정보, 또 그 랭킹들을 다 종합하여서, 난 내 마음속의 순위를 정하기 시작했고. 그 마음의 1위 학교에 내 상황을 설명하는 편지를 보냈다. 한국 군대 문제를 위해 2년 입학 연기를 해달라고.


그런데 웬 걸. 난 얼마 후 그 학교 입학사정관 한 분에게서 전화 한 통을 받게 되었고. 그 전화는 꽤 일방적이었는데, 2년간 의대 입학 연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무언가 설명을 할 수 있는 여지도, 질문을 할 수 있는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병역의 문제가 남아있으니, 입학 합격도 취소하겠다는 통보도 받았다.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내가 실수했나? 내가 내 마음속 1위의 의대입학 취소를 자초했나 싶은 마음에 너무 당황스러웠다. 입학연기는 잊고 먼저 의대진학을 한 뒤, 그 중간에 입대시기을 조율 했어야 싶기도 했고, 너무 혼란스러웠다. 내가 오히려 문제를 더 크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니었나, 내가 그렇게 원하던 의대입학의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난 내 pre-med 어드바이저 분을 찾았다. 과연 이게 맞는 것인지. 이러다가 내가 합격한 학교들이 다 똑같은 답변으로 나오면, 내 의대진학의 꿈은 무너지는 것인지. 하지만, 결론적으로 어드바이저 분은, 나에게 선택지가 좀 있으니, 내 랭킹 2위 학교부터 다시 한번 연락해 보라는 조언을 해주셨다.


그래서 다시 한번 심기를 가다듬고 그 당시 내 리스트 2위의 학교에게 연락을 해보았다.

내가 다닌 의과 대학의 캠퍼스. 처음 인터뷰 갔을 때는 그렇게 문턱이 높을 것 같았던 그 학교가, 내 상황을 잘 이해해 주고, 입학 전 소중한 2년의 시간을 허락해 주었다


너무 감사하게도,

그 학교는 첫 번째 학교와 다르게 너무나도 호의적이었다.

한국인으로서 군대를 가야 하는 상황을 이해하기에, 건강하게 군생활 잘하고 2년 뒤에 보겠다는 말까지.


그렇게 해서, 난 대학학부 졸업 직후, 한국에서 바로 입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나에겐 돌아올 곳이 있는 상황이었다. 마음 편히, 몸 건강하게, 병역의 의무만 해결하면 되는 것이었다. 또 이 시간은 학부생활 4년 내내 수많은 고민으로 지쳤던 내 머리를 쉬게 해 줄 휴식의 시간이기도 했다.


지금 돌이켜 봐도, 그때처럼 정말 많은 고민이 다 해결되고 마음이 가벼웠던 적이 없는 것 같다. 비록 입대를 앞둔 상황이었지만, 고민보단 꿈을 더 많이 꿀 수 있었던 그 순간 그 시절이 지금도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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