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렸다. 하염없이 쏟아져 내렸다. 하교시간이어서 여기저기서 팡팡 거리는 소리와 함께 우산들이 펼쳐졌다. 나는 교문 앞이 너무 붐벼서 잠깐 기다렸다. 아마 오늘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가 없었던 탓일까. 대부분의 아이들이 우산 하나에 옹기종기 붙어서 낄낄거리며 나서고 있었다. 습했다. 숨 쉬기가 힘들 만큼 습했다. 그래서 여름이 싫었다. 장마 때문에 안 그래도 답답한 가슴이 더 답답해져서.
혼자 걸어가고 있는데 뒤에서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뒤를 돌아보았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몇 번 더 뒤를 돌아본 뒤에는 쳇바퀴 같은 학원으로 갔다.
다음 날이 되었다. 아직도 비가 내린다.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내리는 비 속에서 학교로 갔다.
학교에서 너와 몇 번 눈이 마주치고 네가 날 불렀을 땐 점심시간이었다. 나는 점심을 뒤로한 체로 너를 따라 미술실로 향했다. 너는 내게 그림 한 점을 보여주었다. 그 그림엔 혼자 쓸쓸하게 걸어가고 있었고 어깨엔 무거운 짐을 올려둔 것처럼 힘들어 보이는 사람이 그려져 있었다. 내가 물었고 너는 내게 대답을 해주었다.
"이 그림 속 주인공은 너야"
놀랐다. 그리고 슬퍼지기 시작했다. 누구나 자신이 생각한 성공에 닿으려면 가져야 하는 처절한 시간을 그려놓아서 나는 그림을 보고 별 말없이 가만히 있자 네가 말을 하고 조용히 떠났다.
"오늘 하교 때 정문으로"
그렇게 학교의 모든 시간이 끝이 나고 나는 널 정문에서 기다렸다. 나를 본 너는 잠깐 놀란 눈치였지만 이내 웃으며 내 곁으로 와서 말을 했다.
"비에 대한 기억은 오래 남는데, 그래서 좋은 기억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말이 끝나기 무섭게 너는 내 손을 꼭 잡고서는 비 속으로 뛰어들었다.
순식간에 옷이 젖어가기 시작했고 색다른 기분이었다.
힘으로 네 손을 뿌리칠 수 없었다. 이유 모를 힘이 너와 날 연결 시켜 놓은 것처럼.
네 손에 이끌려 정처 없이 뛰어다녔다. 처음으로 느낀 느낌이었고 나는 그것에 매료되었다.
그 후에 일은 기억이 잘 나진 않지만 아마 부모님께 엄청 혼났던 것 같다. 그렇지만 방에서 혼자 비가 내리는 걸 바라보며 작은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 작은 일탈이 내게 남긴 건 너무나 커서 말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것만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그때 이후에는 비가 내겐 더 이상 물속에 잠긴 것처럼 답답하지 않다는 걸
그리고 그날에 질퍽거리는 운동화 물에 젖어서 살결에 달라붙는 티셔츠 마지막으로 이제야 느껴 버린 청량함까지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고
이제는 태어난 지 몇 년 안 된 아이를 안고 눈 속을 달리고 있다.
내가 너무 늦게 느낀 그 느낌을 아이만은 일찍 알았으면 해서 꽁꽁 얼어붙은 눈 속을 달리고 있다.
뒤에서 네가 아기 조심하라고 소리치는 소리와 아이가 웃는 소리가 서로 공존하며 다시금 내 입가엔 웃음이 지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