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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기

by 석현준 Feb 21.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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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아주 잠깐 급히 내리는 비

빗속에서 느껴지던 비릿한 물의 내음이 나쁘진 않았다

나는 소나기가 그치길 바랐을까?


오늘은 온 세상이 잔인할 정도로 찬란한 날이었다. 아침부터 뜨거운 햇빛이 부리며 나를 괴롭히던 한여름이었다. 목덜미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히던 무렵에 머리 위로 작은 무언가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지랑이가 일렁이던 검은 아스팔트 위로 빗방울이 툭툭 떨어지기 시작했다. 잔잔히 들리던 매미 소리도 묻히고 우리는 비를 피해서 작은 처마 밑에서 비를 피했다.


찬란하게 빛나던 하늘은 우중충한 잿빛으로 변했고 처마 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자 너는 몸을 떨면서 나를 보면서 씩 웃어 보였지만 웃는 네 입술은 파랬다. 나는 가방에 있던 바람막이를 말없이 내밀었고 너는 생각보다 추웠는지 얼른 받아서 몸에 걸쳤다. 그리고 작은 적막이 생겼고 머릿속은 빗소리로 울려 퍼졌다. 그래도 좋았다. 그저 너와 있던 그 처마 밑이 생기를 내뿜는 너와 함께하던 시간들이. 바람 속에 실려오던 비의 향이 나쁘진 않았다. 그 후 너는 나와 같은 곳을 바라보며 걸어갔다.  비가 그치고 물기에 서린 공기는 밀려난다. 그리고 빗물을 머금은 풀들은 다시 생기를 되찾는다. 아마 나도 그럴 거라고 믿었다.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서리라고.


몇 번의 계절이 지나고 다시 여름이 활기를 되찾았을 때 나는 너를 찾았다. 나와 같이 발맞추어 걷던 너를 연신 찾았지만 너는 어느새 나를 떠나 있었지. 나는 오늘도 같은 거리를 걷고 있는데 네가 없었지. 무뚝뚝한 내 곁에서 웃던 것이 지쳤던 걸까? 여러 고민을 하며 걸어가는데 때마침 하늘에서 소나기가 내렸다. 어깨는 점점 젖어갔고 나는 가방 깊숙이에 들어있는 작은 우산을 꺼냈다. 그리고 혼자서 쓰고 걸어갔다. 아주 천천히 어쩌면 네가 뒤에서 뛰어오리라고 생각하며 걸었지. 웅덩이 속에 비친 나는 비가 떨어지자 일렁거렸고 꼭 내 마음 같았다. 너와 함께했던 작은 흔적이라도 찾기 위해서 혹시라도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작은 추억이 떠오를까 기대하며 너와 함께 비를 피했던 처마 밑으로 들어가 보았다. 그곳에는 너와 함께 있던 나만 남아있었다.


네게_

그거 알아?

처마 밑에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됐었어.

사실 나는 언제나 가방에 작은 우산을 넣어두거든.

그럼 내가 기억을 못 했을까?

아니야 나는 몇 번이고 우산을 쓸까 고민을 했었지만 나를 그곳에 붙잡아둔 것은 따로 있어.

이제 막 피기 시작한 어린 사랑이 나를 꼭 붙잡고 있었어.

아마 아직도 남아있을 거야

아직도 너를 잊지 못한 어린 사랑이 혼자 떨면서 웅크려 있겠지

너와 함께였던 여름으로 돌아가고 싶다.

아프지 말고 잘 지내

내게 한 번만이라도 찾아와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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