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타게 무언가를 기다리며 시간을 비워내고 있다
조금씩 조금씩 하지만 일정하게 사라지는 시간을 보면서 초조할 때도 있고 행복할 때도 있지
그때는 가득 채워진 일정표를 보면 내 마음까지도 가득 채워진 기분이었지
하지만 내 속에는 채워지는 것이 없었어
어쩌면 내가 평생을 갈망하며 살아오던 것은 공백이었던 걸까?
엄청난 성과를 이루었었지. 지나가던 누구에게 물어도 우와라는 감탄사를 들을 수 있을 커다란 회사에 임원으로 살아왔단다. 내 말 한마디에 회사의 판도가 좌지우지되는 막강한 권력과 누군가는 평생을 벌어도 가지지 못할 값비싼 집과 자동차도 자가로 가진 엄청난 사람으로 살아왔어. 이런 높은 곳에 있음에도 정직의 아이콘으로 불릴 만큼 청렴한 인간이었던 나의 이야기를 하려고 해.
내 마음속에서 공백이 느껴졌어. 잠을 줄여가며 빽빽한 일정표를 보며 살아가던 때부터 어쩌면 그전부터 내 속에서 조금씩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갔지. 느낄 수 있었고 알 수 있었지만 바쁘다는 생각을 복잡한 머리를 핑계 삼아서 매번 무시하고 있던 그것이 점점 자신의 영역을 널 펴가더니 이제는 내 온 마음을 집어삼켜버렸지. 공허하지만 그 속에서는 어렸을 때 아주 옛 기억들이 고요하게 맴도는 기억들. 언제나 부족했지만 그 마저도 행복으로 덮어버린 어린 기억들이 지금 까지도 내 심금을 울린단다.
점점 커가면서 세상의 이치를 배워가고 세상 사람들을 만나면서 자극적인 세상에 매료되어서 나 조차도 빨라지고 나를 화려하게 꾸며갔지. 내가 채울 수 없는 부분은 가차 없이 잘라내고 나를 과시하며 그것이 정답인 것 마냥 살아왔었지. 높아지려고 했어. 그러다 까마득할 정도로 높은 곳에 올라서서 주변을 살펴보면 내가 생각하던 행복은 없었지. 나를 값비싼 상품으로 생각하는 잿빛 세상뿐이었어.
공백은 비어있다.
그러나 완전하다.
편안하게 그리고 내가 잊고, 잊으려고 노력했던 작고 소중한 시간들이 그곳에서 피어나 꽃을 피우고 공백은 나를 채우려고 하지 않아도 된단다. 그저 고요하게 내가 머물러 있는 그대로 나를 받아주고 내 존재 자체로 나를 사랑하고 위로하지. 내 본질을 깨닫게 해 주고 나를 상품으로 대하지도 않아. 나를 상품으로 전락시키지도 않고 작품으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걸작으로 나를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주기도 하지.
이 늙은 할애비말을 잘 들어보렴.
늙으면 늙어갈수록 마음은 어려져 간단다. 내가 일하던 회사이름은 기억을 못 해도 나를 행복하게 해 주었던 그리고 같이 놀았던 친구의 이름은 머릿속에 남아있지. 내가 행복했던 그때로 내게 인상이 깊게 남았던 그 사람에게로 다가간다. 그러니 널 아껴주어라. 어릴 땐 내 몸을 혹사시켜서 밤낮으로 돈을 버는 것이 좋은 줄 알지만 다 늙고 난 지금은 건강보다 중요한 것이 없다는 것을 나는 너무 늦게 알았으니 너는 그러지 말아라. 그리고 아직은 늦지 않았으니 상품으로 전락하려 하지 말고 작품으로 걸작으로 살아가려무나. 마지막으로 공백의 시간은 언제나 흐르고 누군가에게나 있어야 한단다. 그러니 즐겨라 네게 주어진 모든 시간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