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네가 실패작이라고 생각하니?_
네게 전화를 걸지 말지를 수백 번도 더 고민한 끝에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네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수신음 끝에 귀속을 부드럽게 맴도는 네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너 비밀 지킬 자신 있어?"
"..... 응, 이야기해 봐"
나는 네게 내 속 마음을 털어놓았다. 간간이 눈에선 눈물이 흐르고 목이 꽉 막히는 것 같았지만 되도록 괜찮은 척 말을 이어갔다. 그러다 말문이 턱하고 막혀서 울기 시작했다. 이유는 불분명했지만 가슴을 찌르는 것 같았고 자괴감이 드는 생각이었다. 나는 울음 섞인 말로 네게 말했다.
"너는 내가 실패작이라고 생각하니?"
넌 아무 말이 없었지. 분명히 휴대폰 너머로 흘러나오는 내 울음을 들었을 텐데라는 생각에 충동적으로 전화를 끊으려고 하는 찰나 너는 아직 듣고 있다는 것처럼 헛기침을 했다. 그리고도 아무 말 없이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지. 나만 슬프고 끝나면 될 이야기를.
그래서 실컷 울었다. 네 앞에서 창피할 정도로 오열을 했다. 내 인생이 송두리째로 뽑힌 것 같아서, 내가 처절한 전쟁 끝에 아무 소득 없이 다시 돌아오는 패잔병 같아서 오히려 전쟁 중에 장렬히 전사했다면, 그 편이 더 나았지 않았을까. 그렇게 잠잠해질 것 같지 않던 울음이 거의 멈추자 너는 짤막한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지. 꼭 해답을 준 것 마냥.
"지금 나와. 밖에서 보자."
전화가 끊기자마자 화장실로 갔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가관이었다. 눈은 붉게 퉁퉁 부어있었고 눈물이 얼굴을 뒤덮고 있었다. 얼른 세수를 하고 너를 보러 갔다. 문을 열고 나오자 하늘에서 해가지고 있었다. 하루가 이렇게 또 지나가고 있었지. 너를 만나기 전에 여러 감정들이 나를 스쳐 지나갔다. 너를 만나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까? 웃어야 할까, 울어야 할까? 고민을 하던 중 네가 왔다. 그래서 어색하게 손을 흔들었다.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아서.
밖에 나와 걸어서일까 아니면 너와 함께 있어서일까 기분은 한결 나아졌다. 그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걷다가 이제 겨우 산자락에 걸려있는 햇빛이 네 한쪽 뺨을 비추자 미묘한 여러 감정이 마음속에서 올라왔다. 슬펐다, 기쁘기도 했지, 따뜻했다, 불안하기도 했고 그래도 네게 조금은 젖어드는 것 같았다. 사랑하면 닮는다고 했던가. 나는 일방적으로 널 닮아갔다. 너에게 빠져만 갔고 내 속에서는 네가 차오르는 듯했지. 그러다 나는 황혼의 시간을 마주하게 되었다. 해가 땅거미 속으로 들어갈 때의 빛, 시간에서는 닿을 수 없는 것이 만져지는 아름답고 찬란한 시간이었다.
해가 지고 밤이 찾아왔다. 나는 이따금 네게서 뒤처져서 앞서가면서 걸어가는 것을 보면 넌 불가항력을 가진 것 같다. 모든 것들을 모든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신비한 힘. 그래서 난 너에게로 이끌렸던 걸까. 나는 절대 이길 수 없는 불가항력을 가진 네 궤도를 돌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조금씩 너에게 이끌려서 거리를 점차 좁혀가면서. 한 번씩 보는 네 뒷모습을 보고 있으면 모든 것들이 아름다워 보였다. 그래서 주변을 돌아보다 보면 어느새 너는 저 먼 곳에 서서 나를 향해 얼른 오라고 손짓을 하고 있지. 그럼 난 네가 남긴 발자국을 따라서 네가 걸어간 길을 따라서 가다 보면 꽃이 피어올랐다. 네 발자국마다 네가 걸은 거리마다 꽃이 피어올라 세상을 물들였다.
결국은 기뻤다, 따뜻했다 그리고 네게 흠뻑 젖었다. 네게 빠져들었지. 실패작은 내가 정하는 것이었다. 언제나 나는 명작으로 탄생할 수 있었던 거지. 바보같이 그것을 몰랐던 것이고, 그렇다고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랬다면 진짜 너를 보지 못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