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화와 안전화
장화와 안전화
인도네시아 조악한 건설현장에서 안전화를 신는다는 건 권력을 뜻한다
인도네시아는 비가 자주 내린다.
우기에는 하염없이.
건기에는 하루 한 번 짧게.
그래서 현장 인부들한테 안전화가 아닌 산업용 장화를 지급한다.
땡볕의 뜨거움에 땅이 갈라지는 날이면,
장화 속에는 물이 찬다,
현장 관리자들은 신발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
비 오는 날 장화를 신을 권리가 있고,
마른날 안전화를 신을 권리가 있다.
내겐 장화를 신을 권리는 있었지만,
사이즈에 맞는 장화가 없다.
현장에서 신는 산업용 장화에는 앞쪽에 쇳덩이가 있다.
고무로 만든 장화지만 늘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장화를 신지 못한다.
우기다. 장대비란 말이 부족한 폭우가 내린다.
현장 인부들은 구석구석 옹기종기 모여 비를 피한다.
하지만 나는 안전화를 신고 현장을 둘러본다.
착한 사람 눈에만 보이는 옷을 입고 거리를 돌며 비웃음을 산 벌거벗을 임금님처럼,
장대비를 우산도 없이 맞으며 안전화를 신고 현장을 걸으니 인부들이 비웃는다.
왜 한국 사람은 비 오는 날 현장을 돌아다니며 비를 맞냐고.
나는 말한다. 막힌 물구멍이 담장을 무너뜨린다고.
물구멍에 물이 잘 통하는지 확인해야 한다.
인부들은 다시 비웃는다.
담장이 무너지면 다시 세우면 되는데,
한국인은 쓸데없는 걱정이 너무 많다고.
나는 말한다. 그만 놀고 나가서 배수로 막힌 곳 뚫어 놓으라고.
인부들은 또다시 비웃는다.
비 맞으면 감기 걸리고 감기 걸리면 아프다고.
자신들은 가난해서 한국 사람처럼 홍삼을 사 먹을 수가 없다고.
나는 말한다.
힘들게 출근했는데, 일당 반만 받고 집 가실래?
아니면 우비 입고 나가서 배수로 뚫을래?
인부들은 마지못해 움직인다.
인부들은 우비를 입고 장화를 신고 막힌 배수로를 뚫는다.
나는 맨몸으로 비를 맞으며 작업상황을 확인한다.
안전화는 권력을 뜻하는데,
난 장화가 신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