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현장으로
사직서를 읽은 이사가 놀래 전화를 했다.
어디에 던져놔도 밥 잘 먹고 다니는 속 편한 놈이 사직서를 냈으니 놀라만도 하다.
퇴사하는 이유를 물어본다. 사실대로 말한다.
하지만 말이 이상하게 나왔다.
"능력이 없어 사표 썼습니다."
하고 싶은 말을 너무 줄여서 말했다.
다행히도 개떡 같은 말을 이사는 찰떡같이 알아듣는다.
"왜 그래? 뭔 일 있었냐?"
"제 능력이 여기 현장에 도움이 안 됩니다."
"그걸 왜 네가 판단해?"
"뭘 더 못 하겠습니다."
잠깐의 침묵 후 이사가 말한다.
"딴 현장 보내줄게."
그 말뒤에 긴 쌍욕이 이어졌다. 그리고 마지막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는다.
"담부턴 고민 있으면 말로 해라. 사표 쓰지 말고."
쌍욕을 얻어먹었는데 기분이 나쁘지 않다.
걱정받는 느낌이다.
나도 이제 쌍팔년도 노가다 꾼이 된 건가. 쌍욕에서 정이 느껴진다.
새로운 현장으로 발령받았다.
창고사람들과 작별인사를 한다.
아쉬움은 없다.
그저 차에 있는 한국산 마스크를 탐내는 눈빛만 보인다.
"미스터 송별회 안 해요?"
이들의 송별회는 한국인이 사비로 밥을 사주는 것이다.
웃음으로 송별회를 대신하고 떠난다.
겉으로 보기엔 그저 현장으로 떠나는 것이지만,
사실은 도망치는 중이다.
지긋지긋한 창고야 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