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by 감상자

이제는 학교에 가는 것이 두려울 것도, 어려울 것도, 힘들어할 이유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빠르게 가서 모두와 함께 있고 싶었다. 그곳에서 나는 더 이상 투명 인간이 되지 않았고, 오히려 존재를 더욱 또렷하게 해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반영된 것인지 이른 시간부터 교실에 들어섰고, 빨리 시간이 지나가 그들이 교실로 들어오길 바라게 됐다.


생각보다 시간은 더디게 흘렀고, 혹시 지금까지 겪었던 모든 것들이 신기루처럼 사라질까 봐 걱정됐다. 어쩌면 육체적 고통만 제거된 상태로 또 투명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그것이 그냥 나 혼자만의 걱정이라는 것을 누군가 들어와서 증명해 주길 바랐지만, 아무도 증명하지 않았으면 싶었다.


이래 저래 갈팡질팡 하다 보니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천천히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마치 나 혼자만 특별한 시간을 소유하고 있는 착각이 들기까지 했다. 그런 생각이 계속되고 있을 때, 누군가 교실의 문을 열었다.


눈으로 교실에 들어올 누군가의 발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시선을 옮겨 얼굴을 확인했다. 철홍이었다. 안심이 되기도 했지만, 또 두려움을 느끼게 됐다. 그럴 때마다, 이제 나는 전과 다르다고 속으로 계속해서 외쳤다. 먼저 인사를 건네고, 어제의 행복했던 감각을 이어가고 싶었다.


“어, 철홍아. 좋은 아침이야.”


나의 말은 이미 나의 입을 떠났고, 그의 귀에 다다랐을 것이다. 그러나 또 시간이 다르게 적용돼서 엄청나게 천천히 그에게 가고 있는 것 같았다. 대답이 오기까지 긴 시간이 흐를 것 같았고, 어쩌면 이미 도달했음에도 그의 입술이 열리지 않을지도 몰랐다. 그래서 그 짧은 시간이 긴장으로 몇 분, 아니 몇 시간으로 늘어나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요, 어제 즐거운 시간 보냄? 사귀는 거임?”


나의 걱정은, 길었던 기다림의 시간은 순식간에 아무것도 아니게 됐고, 다시 한번 행복한 감각을 이어갈 수 있었다. 더 이상 긴장하지 않아도 됐고,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다 순간 그가 한 말에 놀라고 말았다.


“뭐.. 뭐야! 어떻게 알았어?”


혹시 어디선가 나를 지켜봤을까. 아니면 그녀가 그에게 말을 한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지나가던 누군가가 우리를 봤고 소문이라는 형태로 널리 퍼져 그에게 도달한 것일까. 도대체 어떻게 알 수 있었는지 온갖 상상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어떻게 알긴. 어제 보니까 님들 눈에서 하트가 그냥. 사귀겠다 싶었지. 내가 또 눈치가 빨라요.”


그렇게까지 티를 내지는 않았던 것 같았다. 그냥 평소보다 조금, 이전에 하지 못했던 행동들을 하고, 조금 더 웃었을 뿐이었다. 어쩌면 그 조금이라는 작은 눈덩이가 점점 커져서 커다란 형태가 되면서 더 이상 작지 않은 단계가 됐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또 조금이라는 한 발자국의 힘을 실감하게 됐다.


“암튼 축하함. 그럼 오늘도 둘이 데이트하겠네.”


그래. 사귀는 사이라면 그래야겠지. 그녀가 오면 오늘도 함께 하자고 이야기를 해야겠다 싶었다. 철홍은 어느새 자신의 자리에 가서 앉았고, 창밖을 보고 있었다. 창밖이라고 해봤자 특별히 볼 것도 없는데, 왜 고개를 돌리고 있는지 의문이었다. 그 의문을 뒤로 그녀가 교실에 들어서기만을 기다렸다.


하나 둘 다른 아이들이 교실로 들어섰고, 그럴 때마다 나의 시선은 문을 향했다. 그 시선의 끝에서 언제나 실망이라는 형태로 되돌아왔지만, 상관없었다. 그것까지 즐거움이었고, 모든 감각들이 행복하게 느껴졌다. 단지 그녀가 빨리 오길 바랄 뿐이었다.


그 반복되는 시간의 끝에 그녀가 교실로 들어왔다. 어느 사이엔가 그녀와 눈이 마주쳤고, 나를 보며 웃어 주었다. 어젯밤에 보았던 미소였고, 기다림이 즐거움이 되는 정확한 이유가 분명했다.


“왔어? 기다렸잖아.”


나의 말에 그녀는 얼굴을 붉혔다. 그녀의 입술 끝이 자연스럽게 올라갔다. 그렇게 그녀는 나를 향해 오고 있었다. 그녀가 가까이 올수록 심장박동 소리가 점점 커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녀에게 들켜도 상관없었다. 나는 그녀를 좋아하고, 그것이 표시되는 것일 뿐, 그냥 하나의 증거가 될 뿐이었다.


“응, 일찍 왔어? 많이 기다렸어?”


그녀의 대답에서, 그녀의 목소리에서 좋은 향기가 나는 것 같았다. 분명 그녀가 나를 안았을 때 나던 향기인 것 같다. 어딘지 은은하고, 어딘지 달콤한 그 향기가 나의 온몸을 감싸는 것 같았다. 그것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을 때, 철홍이 그 감상의 시간을 장난스럽게 무마시켰다.


“아우, 이 커플 아주 뜨겁네. 너무 러브러브 한 거 아님? 학우여 학교에선 적당히 하게.”


그의 장난스러움에, 그녀에게 대답할 수 있는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아쉬웠지만 상관없었다. 그의 말처럼 나중이라는 시간은 계속될 것이고,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은 많으니까 말이다. 그러면서도 그녀의 학업에 방해가 돼서는 안 됐다. 모범생이고, 좋은 성적을 유지하고자 하는 그녀의 태도를 가로막을 권한은 나에게 없기 때문이다.


그녀가 자리에 앉았고, 그녀를 인식하며 틈나는 대로 그녀를 바라보면서, 빨리 모든 수업이 끝나길 바랐다. 이따금 그녀와 이야기하고, 철홍과 웃으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 사이엔가 모든 수업이 마무리 됐다. 아직 그녀에게 오늘 무엇을 할지 묻지도, 계획을 짜지도 못했는데 벌써 그 시간이 다가왔다.


시간은 모두에게 똑같이 흐르는 게 아닌 것 같았다. 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그녀에게 그대로 할 수는 없었다. 그녀가 이 교실을 떠나기 전, 오늘의 마지막이 나에게 다가오기 전에 말을 건네야 했다.


“오늘 뭐 할까? 하고 싶은 거 있어?”


나는 최대한 급하게 그녀에게 말을 건넸고, 그녀는 나를 바라보았다. 분명 그 아름다운 미소로 대답할 것이라는 나의 기대는 순식간에 무너졌다. 그녀가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아쉬움이 서려있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어떡해, 나 오늘은 안될 것 같은데. 나중에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물론 아무런 계획도 떠올리지 않아 다행이긴 했지만, 너무나 아쉬웠다. 당연히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그렇게 너무도 쉽게 무너져 내렸다. 그렇다고 그녀를 남자친구라는 이유만으로 속박하거나 강제할 수 없었다. 그녀를 존중하기에,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기에 아쉬움은 저 멀리 치워버리고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괜찮다고 하면 거짓말이긴 한데, 어쩔 수 없지.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혹시나 큰 어려움에 직면했을까 봐, 도움이 필요할까 봐 걱정이 됐다. 별것 아니길 바랄 뿐이었고, 큰일이라면 그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도울 생각이었다.


“아니야, 어제 학원 안 간 거 걸려서 오늘 학원 꼭 가야 돼서 그래. 늦겠다. 내일 봐!”


별일 아니라는듯한 대답이 다행이었고, 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재빠르게 교실 밖으로 사라졌다. 채 인사도 하기 전에 사라지는 모습에 저 멀리 놓여있던 아쉬움은 더 크게 나에게 다가왔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내일이라는 시간이 또 올 것이고, 내일의 나는 또다시 행복할 테니까.


그때 누군가 나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오른쪽 어깨로 손이 느껴졌고,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 누구인지 확인했다. 사실 확인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분명 철홍일 테니까. 이제는 모두를 구별할 수 있지만, 친구라는 이유로, 친구이기 때문에 그만이 가능한 행동일 것이다. 역시나 그였다.


“아우, 여자친구한테 거절당하셨어요? 우는 거 아니지?”


그의 장난스러운 말투에, 친근하게 어깨동무하는 그의 모습에 또 다른 방향으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이래저래 행복한 감정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나에게 연인뿐 아니라 친구도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지할 수 있었다.


“울긴 뭘, 조금 아쉬워서 그러지.”


그에게는 나의 감정을 조금은 솔직히 말해도 될 것 같았다. 친구란 그런 것 아닐까. 연인에게 다 말하지 못하는 것을 친구에게 말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이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 듯 이어졌지만 그 연결을 끊어버린 것은 철홍의 말이었다.


“아쉬우면 우리 집 가서 놀자. 맛난 거 먹고, 게임이나 합시다. 가즈아~”


그의 우스꽝스러움에 미소 짓게 됐고 아쉬움을 느끼던 감정들은 어느 사이엔가 또 저 멀리 치워버렸다. 아니 이미 사라지고 있었다. 그를 따라 올라탄 택시는 빠르게 목적지로 향했고, 도착해서 바라본 커다란 대문은 놀라움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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