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by 감상자

철홍이 부유하다는 것을 모르진 않았다. 학교에서는 그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절대적 권력을 갖고 있었고, 거침없는 행동과 씀씀이에서 충분히 예측 가능했다. 그러나 권력이나 부에 비례하는 것처럼 보이는 커다란 대문이 그 예상을 아득히 넘어설 뿐이었다.


“와, 대문부터 남다르네, 진짜 부자는 다르구나.”


나도 모르게 작은 목소리로 읊조렸고, 그 작은 목소리를 아무도 듣지 못하리라 생각했다. 왜냐하면 나조차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철홍은 당연하다는 듯 그 말을 캐치했다.


“우리 집이 좀 살지, 님 놀람?”


순간 얼굴이 붉어지는 기분이 들었고, 온 열기가 얼굴에 몰리는 것 같았다. 어쩌면 부러움이 섞여있었을지도 모르고, 평범하게 살아왔던 자신과 다르다는 현실을 체감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왠지 부끄러워졌지만, 그 부끄러움을 내색하고 싶진 않았다.


“조금? 사는 세계가 다른가 싶기도 하고.”


애써 수긍했지만, 놀람을, 부끄러움을 들키고 싶지 않아 최대한 의연하게 이야기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그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졌을지 알 수 없지만, 자연스럽게 다른 주제가 이어지길 바라고 있었을 뿐이다. 나의 생각을 어느 정도 이해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 통했던 걸까, 철홍은 대문을 열고 어서 들어오라며 손짓했다.


그렇게 도착한 그의 방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내 방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컸고, 얼핏 봤을 때는 그 방 하나가 우리 집 전체보다 큰 것 같았다. 책상과 잠겨진 컴퓨터, 침대 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내방과 다르게 커다란 티브이가 있었다. 또한 그것에 연결되어 있는 신기한 기계들도 눈에 띄었다. 전에 동영상 플랫폼에서 봤던 콘솔 게임기들 같았다.


그 외에 컴퓨터가 연결되어 있는 또 다른 모니터도 있었고, 책장에는 여러 책들이 존재했다. 그리고 본인의 취향인지 다양한 영화들의 디스크도 있었다. 놀라움에 지배돼서 어떤 것이 있는지 채 파악하기는 어려웠지만, 확고한 취향이 있을 것 같았다. 그는 분명 그런 성격이었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명확하게 알 것이기 때문이다.


“밥은 좀 이따 대충 시켜 먹고, 게임해볼래? 우리 순정남은 어떤 걸 좋아하시려나~”


그는 유쾌한 분위기로 능숙하게 패드를 손에 쥐었고, 이리저리 움직이며 여러 게임들 안에서 고민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의 유쾌함은 나를 미소 짓게 만들었고 부러움이 일게 했다. 그러나 그의 태도는 어딘지 낯설었다. 이렇게 한 순간에 사람이 변할 수 있는 걸까 싶었다.


얼마 전까지 나를 투명 인간으로 만들었던 그가, 이제는 친근하게 나를 대해주고, 자신의 집까지 함께 와서 어떤 게임을 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는 것이 신선하면서도 묘한 불안감이 느껴지게 했다. 일순간 다시 투명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닐지. 이전에 끝내지 못했던 채찍질이 시작되는 것은 아닐지 걱정됐다.


“님 축구 좋아함? 축구 게임이나 할까?”


그의 가벼운 물음에 스스로 품던 불안감들은 천천히 사라지고 있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적절한 대답을 하기 위해 목뒤에서 나올 소리에 집중했다. 머릿속으로 무엇이 적절한가 고민하며 소리를 끄집어내려 했으나 부질없는 시도였다. 나는 게임을 아예 모르고, 무엇이 나에게 맞을지 전혀 알지 못하는 상태였다. 결국 솔직하게 시인하는 수밖에 없었다.


“나 축구 잘 모르는데, 알려주면 같이해보지 뭐.”


그의 삶에 녹아들고 싶었고, 비슷한 경험을 하고 싶었다. 그가 해 보았기 때문에 나도 해 보고 싶었고, 그렇게 부지런히 나와 그가 같은 세계에 있음을 증명하고 싶었다. 아니 그냥 모른다고 하면 또다시 투명 인간이 될 것 같았다. 아무것도 몰라도 아는척하고 싶었다. 금방 들통나겠지만, 그러고 싶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고, 최소한의 발버둥만 치고 있었다.


“에이 축구 모르면 재미없지, 그럼 패스하고 다른 거.”


속으로 많은 고민을, 최적의 대답을 찾는, 투명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는 나를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그는 다시 고민을 이어나갔고, 이래저래 저울질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저울질이 끝났기 때문인지 놓쳤던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인지 고개를 돌려 말을 건넸다.


“어제 은미이랑 스파이더맨 봤지? 영화 재미있게 봤어? 이게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게임인데, 거미줄 타고 다니면서 기술 쓰고 막 그럼.”


드디어 그와 나의 공통점을 알게 됐다. 물론 정확히 스파이더맨이라는 영화 전체를 알고 있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답해야 한다. 바로 어제 그녀와 영화를 봤다 해도, 제대로 집중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급하게 바라보던 영상 속의 지식으로 그와의 연결 고리를 만들어야 했다. 그래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완전 좋아하지, 근데 그런 게임도 있어? 그럼 내가 스파이더맨이 되는 건가?”


고민들이 일순간 사라진 것은 그토록 선망하던, 부러워하던 존재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묘한 상상 때문이었다. 비록 게임일 뿐이고, 그것을 플레이하는 것이 다지만 왠지 그 자체가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해본 적이 없어 엉망진창이 모습만 보여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가 틀어준 게임 화면을 바라보며 여러 버튼을 누르면서 게임 속 히어로를 즐겼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렇게 한 번에 여러 생각을 할 수 있던 사람이었을까. 지금의 나는 히어로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 엉망인 모습을 보일까 걱정되는 마음, 이 과정에서 투명 인간이 될 것 같은 두려움, 그러면서도 그의 표정을 살피는 다양한 행동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차츰 이 생각들은 조금씩 사라졌다. 조금씩 눈앞에서 펼쳐지는 대형화면에 집중하게 됐고, 패드의 질감을 제대로 느끼고 있었다. 다른 생각에 다시 빠질 틈은 없었다. 처음에 화면 안의 영웅을 움직이는 나의 손은 너무나 엉성했다.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질 못했고, 자주 바닥으로 떨어졌다.


어쩌면 그 모습이 용기라는 힘을 얻었음에도 계속해서 불안해하며 주저하는, 엉성하고 엉망진창인 나와 같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점차 손은 익숙해져 갔고 조금씩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나도 조금씩 나아갈 것이고, 더 발전할 것이라는 생각에 화면 안의 히어로가 나와 동일시되었고 묘한 쾌감이 뒤를 따랐다.


“내가 이걸 왜 좋아하냐면, 게임하다 보면 샘 레이미 감독의 스파이더맨 2 오마주가 곳곳에 묻어나거든, 내가 그 영화를 정말 재밌게 봤어, 옛날 영화지만.”


내가 봤던 토막 영상은 주로 스파이더맨 1이었지만 2를 모르진 않았다. 그래서 그가 게임뿐 아니라 영화까지 좋아한다는 사실이 기뻤다. 내가 알고 있고, 꾸준히 찾아보던 존재라는 사실이 신기하고 묘한 동질감을 느끼게 됐다. 하지만 한편으로 두려움이 뒤따랐다.


마치 누군가가 나를 놀리려고 여러 사람들과 짜고 내가 좋아할법한 상황을 연출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겨우 나라는 별 것 아닌 존재 때문에 이렇게까지 대규모로 무엇인가를 기획하지는 않을 것 같았지만, 계속되는 우연 때문에 다소 예민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불안감을 들키지 않는 것이 당연한다는 듯, 나는 애써 웃으며 그의 생각을 파악하고자 했다.


“아 정말? 나도 스파이더맨 2 정말 좋아해, 좀 오래되긴 했는데 너도 취향이 독특한가 봐.”


이 정도면 그의 생각을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만약 우려한 데로 나를 놀리기 위한 대규모의 장난이라면, 깊이 있는 이야기가 어려울 것이며, 하물며 제대로 이야기해도 어딘가 엉성한 모습을 보일 것 같았다.


그런데 나는 그것이 엉성한 사실을, 깊이감에 대해 논할 정도로 충분한 정보가 있을까 스스로에게 의구심을 갖게 됐다. 고작 일부의 영상을 봤던 것이 전부이라 어쩌면 그가 나보다 더 많이 보고 더 많은 생각을 갖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냥 요즘은 CG가 훨씬 발달해서 더 그럴싸한데, 그럴수록 점점 더 현실하고 멀어져 가는 느낌? 그래서 이때의 모습이 더 좋게 보이더라고, 그래서 좋아해. 너는?”


생각보다 단순한 그의 답변에 내심 안도할 수 있었다. 어쩐지 그 대답은 직관적이며 솔직한 그의 모습과 닮아 있는 것만 같았다. 어쩌면 내 대답은, 내 말은 나를 닮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도 그런 것은 느끼고 있을지 궁금했다. 물론 그것을 직접적으로 물어보긴 어려울 것 같다. 어쨌든 그에게 내 생각을 말하면, 조금은 나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렇게 친구라는 관계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고 싶었고, 의심을 지워나가고 있었다.


“나는 뭐, 아무런 힘도 없고, 평범했던 사람이 힘을 갖게 되고, 활약하면서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게 멋있게 보였던 거 같아. 요즘 거는 안 봐서 잘 모르겠고.”


나의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는 알 수 없다. 그저 그 대답을 듣고 미소를 보였을 뿐. 특별한 반응은 없었다. 딱히 나를 이상하게 보는 것도 아닌 듯했다. 묘한 긴장감이 나를 감싸는 것 같았다.


“그래, 게임하고 있어 뭐 좀 시키고 올게.”


그가 나가고 의심을 지우고자 계속해서 게임의 화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정말 저런 능력이 있다면 어떨까 싶었다. 내가 영상으로 보았던 능력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기도 했고, 다양한 도구를 갖고 있어서 또 다른 매력을 느꼈다.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른 채, 나는 게임 속의 스파이더맨이 되어 있었다. 점차 현실이 아닌 그 안에서 빠져나오고 싶지 않았다. 아니 빠져나오고 싶었다. 나의 현실에는 연인이, 친구가 있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그가 먹을 것들을 갖고 들어왔고, 우리는 순식간에 먹어치우고 있었다. 배는 고프지 않았지만, 그와 함께 무엇인가를 먹는다는 것 자체가 즐거움이었다. 분명 게임 속 환상보다 현실의 이 상황이 더 즐거웠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더욱 환상 같았다.


그는 큰 화면에 동영상 플랫폼을 띄우고 내가 자주 찾아보던 그 영상을 틀어주었다. 이전과 다르게 소리를 죽인, 아무런 소리도 없는 화면의 움직임이 아니라, 방안을 가득 채울 만큼 큰 소리로 틀어주었다.


그러나 소리의 크기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그것이 얼마나 큰 소리를 낸다 해도, 나는 지금 친구와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있고, 그 자체만으로도 즐거웠기 때문이다. 즐거움이라는 것은 시간을 지배하는 특징이 있는 것 같다. 그저 조금 웃고 떠들며, 시답지 않은 이야기들을 주고받았을 뿐인데 어느덧 많은 시간이 흘러버렸다. 이제는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또 다른 현실로 되돌아와야 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즐겁고 커다란, 모든 소리와 행동들, 모든 물건이 컸지만 신경 쓰이지 않았던 거대한 성에서 그와 작별 인사를 한 뒤, 그 크고 웅장한 대문을 등진 상태로 터벅터벅 걸어 나왔다. 왠지 밝은 곳에서 어두운 곳으로 천천히 움직이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걸었고, 어느 순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의 나는 너무나 즐겁고 행복한 일들이 연속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처음으로 친구가 생겼고, 연인이 생겼다. 그런데 친구는 바로 얼마 전까지 나를 투명 인간으로 만들었다. 그들은 그저 내 이름을 불러주었을 뿐, 그 누구도 나를 신경 쓰지 않았었다. 점점 그때가 아득하게 느껴졌다. 겨우 며칠이 지났을 뿐인데.


이게 맞는 상황인지 정확한 답을 내릴 수 없었다. 누군가 정확한 답을 알려주길 기대했지만, 대답해 주는 이는 없었고, 스스로에게 질문만 하다가 집에 도착했다. 이 상황을 확실히 하기 위해 그녀와 이야기를 하고, 철홍과 다시 이야기를 나눠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빨리 내일이 왔으면 좋겠다. 아니 안 왔으면 좋겠다. 신기루처럼 모든 것이 사라질까 봐 겁이 났다. 그들을 직접 느끼면서 거짓이 아니기를 바랐다. 아니 무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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