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by 감상자

정적이 느껴지는 공간 안에 있다 보니, 문득 두려움이 샘솟았다. 지금의 정적이 어쩐지 계속해서 이어질 것 같았고, 영원히 침묵 속에 침체될 것만 같았다. 그녀를 바라보던 나의 시선이 흔들렸고, 분명 계속해서 말할 수 있을 것 같던 감정도 덩달아 흔들리고 있었다.


더 이상 흔들리지 않게 붙잡으려 했지만, 여전히 흔들리고 있었다. 그 흔들림이 너무 강해서 나의 손아귀를 벗어나려 하는 것 같았다. 오히려 붙잡은 손, 마음까지 같이 움직이는 것 같았다. 이어지는 적막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크게 심호흡하고, 두려움이 가라앉고 떨림이 안정되기를 바라는 것뿐이었다.


그래도 아직까지 그녀를 제대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를 바라보는 나의 눈이 미세하게 떨리긴 했지만, 단 하나도 놓치지 않기 위해 집중했다. 그녀의 눈동자는 너무도 깊었다. 그러다 문득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떨림과는 별개로 누군가를 제대로 바라보는 것이 엄청나게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처음 느꼈다.


나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시선을 조금 아래로 거두려 할 때, 그녀의 뺨이 붉어지는 것을 보았다. 조금 더 아래로 내려가자 그녀의 입술이, 약간의 미소를 머금었던 입꼬리가 이전보다 많이 올라가고 있었다. 나는 다시 시선을 위로 올렸고, 조금 지나자 그녀의 얼굴 전체가 한눈에 보였다.


“좋아한다는 말을 정말 많이 하네. 듣는 사람 부끄럽게. 후, 나 얼굴 빨개진 것 같은데.”


그녀의 두 뺨은 붉게 물들었고, 그 모습이 귀여웠다. 내가 한 말이 그녀에게 닿았을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그녀의 모습을 통해 제대로 닿았음을 알 수 있었다. 그녀의 반응이 모두 증명하고 있었다.


“그래도 귀여워. 그래서 더 좋아해.”


자꾸만 말하고 싶었다. 떨림과 두려움은 어느 사이에 완전히 사라졌다. 물론 심장은 계속 요동쳤지만, 이전과는 달랐다. 그녀에 대한 나의 감정에 반응하고 있었다. 좋아한다는 말을 하면 할수록 더 많이 뛰는 것 같았다.


“아 뭐래, 흠. 미안해. 내가 너무 예민했어. 너는 그냥 나한테 감정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은데.”


그녀가 말한 미안하다는 그 말이 지금까지 속상했던, 두려웠던 감정들을 순식간에 치유하는 것 같았다. 정확히 몰랐던 나의 잘못을, 서툰 행동들을 용서하는 말이었다. 어쩐지 코 뒤쪽이 시큰한 느낌이었다. 그 시큰함은 곧 눈가로 옮겨갔고 눈동자 뒤에 눈물이 맺히는 느낌이었다. 이러다가 눈물을 쏟아낼 것만 같았다.


“나도, 네가 좋아. 좋은 방법은 아니지만, 그냥 투정 부리고 싶었던 것 같아. 그러면서도 네가 계속 나한테 말 걸어주고, 나한테 다가와주길 바랐던 것 같아. 말하지 않으면 모를 텐데. 속상했을 텐데. 내가 너무 이기적이었던 것 같아.”


그녀의 말에 참고 있던 눈물이 흘렀다. 마치 더위에 땀이 흐르듯, 아무렇지 않게 주르륵 흘러내렸다. 이 감정은 무엇일까. 감동적인 순간이어서도, 안도감 때문도 아니었다. 알 수 없는 감정이 요동쳤다. 그렇다고 눈물이 계속해서 흐른 것은 아니었고, 고여있던 양만, 아주 조금의 양만 흘러내린 것 같았다. 양손으로 흘렀던 그것을 훔쳐 닦아냈다. 그리고 팔을 뻗어 그녀를 품에 안았다.


내 품에 안긴 그녀는 나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보이지 않지만, 그녀의 두 팔이 교차되어 있음이 등 뒤로 느껴졌다. 나는 약간 엉거주춤한 자세로 그녀의 목과 어깨 사이에 나의 얼굴을 파묻었다. 그녀의 향기를 느꼈고, 그녀를 느낄 수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이대로 시간이 멈추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쯤, 엘리베이터 계기판에서 소음이 나기 시작했다. 다행히 그것은 나의 행복한 감정을 가로막거나, 방해가 되는 것이 아니었다. 적절한 순간 같았고, 환상에 빠진 나를 현실로 끌어올려 주는 알람 같았다.


"치직.. 치.. 상기… 치직… 엘… 터가.. 치지직.. 다…동.. 안…"


철홍이 무엇인가 말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잡음 때문에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쨌든 그 소리에 은민에게서 떨어진 뒤, 소리가 나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손을 뻗어 종 모양의 버튼을 다시 눌렀고, 신호음이 이어지다가 잡음과 함께 끊겼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철홍이 벌어주기로 했던 시간이 다 지나간 것 같았다. 무엇인가 말하려고 했던 것 같으나, 제대로 된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몇 차례 버튼을 눌렀지만, 계속해서 끊길 뿐이었다. 이러다가 은민이가 안 좋은 상태가 될까 걱정이 되어 바라보았지만 다행히 그녀는 미소를 머금은 상태로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녀는 오른손을 뻗어 나의 왼손을 잡았다. 그 손을 잡으며, 계속해서 미소를 지었다. 그녀를 걱정하느라 생기던 불안감은 또 그렇게 사라지고 있었다. 그래도 그녀를 안심시키고 싶었고, 서로 맞닿은 손에서 용기를 얻어, 입을 열려고 했다. 그러나 나보다 먼저, 그녀의 입에서 소리가 나왔다.


“금방 열릴 거야.”


잡음이 많이 났기 때문에 불안했을 수도 있었지만, 그럴수록 나의 손을 더욱 강하게 쥔 그녀의 손을 통해 그녀의 온기가, 마음이 제대로 전달됐다. 내가 있기 때문에 안심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녀가 있기 때문에 안심이 됐다.


엘리베이터에서 다시 잡음이 몇 차례 들리다가 이전보다 선명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여전히 잡음은 조금 있었지만 분명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강상기! 괜찮아? 이게 갑자기 멈춰서 그런지 강제로 멈춰서 그런지 진짜 문제 생긴 것 같아. 수리기사 금방 온다니까, 조금만 기다려!”


철홍의 다급함이 느껴졌다. 기다리는 것밖에 할 일이 없다면, 이제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진정시킬 수 있는 손길이 있었고, 그녀의 미소가 남아있었다. 그래서 차분하게 대답할 수 있었다.


“알았어, 기다릴게.”


안심이 많이 됐기 때문일지, 너무나 편하게 답을 하고 말았다. 나의 태도에 의문을 가진 그녀가 말을 건넸다. 여전히 미소 짓고 있었지만 그녀의 눈에 물음표가 떠오른 것 같았다.


“근데 네가 강상기인걸 어떻게 알아? 너는 왜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고? 그러고 보니 황철홍 목소리 아니야?”


순간 놀라고 말았다. 조금 더 주의를 기울였어야 하는데, 행복하고 기쁜 감정 때문에 계획 속에서 일어난 사실이라는 것을 깜박하고 말았다. 혹시나 그녀가 기분이 상했을까 표정을 살펴보았다. 일순간 무표정이 되는 것 같았다. 내심 걱정하는 사이 그녀의 입꼬리가 아까보다 많이 올라갔다. 그녀는 즐겁다는 듯 큰 소리로 웃었다.


“뭐야, 나한테 고백하려고, 황철홍하고 짰어?”


열심히 계획을 짜준 철홍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녀가 이 상황을 즐거움으로 느끼는 것이 좋았다. 이제는 어떤 것도 흠이 되지 않는 듯했다. 약간의 민망함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계속해서 기분 좋은 상태가 유지됐다.


“하하, 들켰네. 철홍이가 도와줬어. 둘이 이야기할 수 있게.”


그녀는 계속해서 웃었고, 그녀의 웃음은 엘리베이터 안에 울렸다. 그 웃음소리는 메아리치듯 나의 귓가에 다시 돌아왔고, 그 소리가 돌아오면 돌아올수록 행복한 감정이 느껴졌다. 이게 진짜 행복이 분명했다.


행복함을 느끼면서, 점차 진정하는 그녀와 엘리베이터 내부에 자리 잡고 앉아 다시 작동하길 기다렸다. 그녀와 둘이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은 충분했다. 무슨 말을 주고받았는지, 전부 기억나지는 않았지만 그녀가 웃기도, 내가 웃기도,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 짓기도 했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흘렀음에도 엘리베이터가 다시 작동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그녀와 계속 단 둘이 있으라는 누군가의 배려가 아닐까 싶었다. 그녀와 함께라면 어디에, 얼마나 갇혀 있어도 상관이 없겠지만 평생 이 좁은 공간에 있을 수는 없다. 그때 기기에서 철홍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엘리베이터가 완전 문제가 생겼나 봐, 수리기사 와서 지금 보고 있는데 다시 작동시키려면 한 시간은 걸린데. 그래도 안전장치도 있고 해서 추락하거나 그러진 않을 거래. 뭐 산소가 부족해지거나 그러지도 않을 거라니까. 얌전히 기다려.”


결국 다시 작동할 것이고, 기다리는 동안 그녀와 함께 있을 것이다. 아무런 문제도, 걱정할 것도 없을 것이 분명했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하지만 그녀가 그러지 못했는지 어딘가 초조해 보였다.


“괜찮아?”


그녀의 변화가 나에게 걱정이라는 감정을 일깨워 주었다. 그녀를 안심시키고 싶었고,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불안감을 잠재우고 싶었고, 그렇게 말이 나왔다. 그녀는 부끄러운 듯 말을 이어 나갔다.


“나 화장실이 좀 급한데.”


변수가 생겼다. 행복이란 감정 때문에 구름 위를 걷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 구름은 사라졌고, 현실로 빠르게 내려오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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