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잎 클로버
오후 세 시,
느루 먹는 시간처럼 적당한 권태로움이 스멀스멀 거릴 즈음, 전화를 받는 옆지기의 표정이 그리 밝지 않다.
" 어딘데? 우리는 5시 퇴근이다. 굳이 내려오지 말고 집 근처로 와라."
" 누구?"
" 죽었다 살아온 놈."
덤덤하게 대답하는 그를 보는 나는 덜컥 심장이 내려앉는다.
몇 년 전에 실종된 적이 있던 그는 하던 사업을 접고 정말 사라졌었다.
낚시 갔던 섬에서 낚싯대와 가방에 차까지 남겨 놓고 없어졌었다.
" 왜?"
" 글쎄, 오늘 좀 보자는데 여기로 온다는 걸 집 근처로 오라고 했어."
느닷없는 안부는 겁부터 난다.
이렇게 갑자기 연락해 오는 친구라는 사람들은 대부분 돈 빌려 달라는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몇 번의 경험도 있었던 지라 건너다보는 내 시선을 의식한 그가 먼저 입을 연다.
" 그냥 보고 싶은가 봐. 은퇴하고 이 친구 저 친구 찾아다니는 애들이 많아졌네. 저녁이나 먹고 오지 뭐."
" 그럼 ㅇㅇ씨랑 같이 만나지."
" 왜?"
" 나이 든 남자 둘이서 뭔 얘기로 시간을 메꿔? 한 사람 더 있으면 사연도 더 늘어나겠지."
" 괜찮은 생각이네. ㅇㅇ이 본 지도 좀 됐기도 하고......"
실은 ㅇㅇ씨가 같이 있으면 애매한 분위기를 쉽게 넘길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뒷집 이장님네 사냥도 못 가는 사냥개들이 일제히 소리를 지르는 통에 대화는 거기서 멈췄다.
11시 38분.
평소보다 늦은 그는 코트 주머니에서 손을 빼지 않은 채 뭔가를 만지작 거리고 있다.
분명히 그것은 바스락바스락 거리는 비닐봉지 소리였다.
소리를 들으면서도 그의 표정을 먼저 살폈다.
기분 좋게 취한 것 같으면서도 뭔가 입안에는 내뱉지 못하는 말들이 주머니 속에서 바스락거리는 비닐봉지 소리로 대신하듯이.
늘 그랬었다. 잠깐이면 된다고 해서, 두어 달만 돌려 달래서, 많이 힘이 든가 봐.
이번에는 어떤 말이 나올까?
" 늦었네?"
독서대 옆으로 툭 내려놓은 것은 열쇠고리와 책갈피였다.
앙증맞은 네 잎클로버가 진공 되어있는.
"비닐봉지 소리가 이것이었구나."
" ㅇㅇ가 나 밥 사주려고 일부러 왔대. 그리고 이건 애들하고 집사람 주라고 하네."
" 웬걸? "
" 이거 만들어 판대. 돈 많이 벌어서 밥 사주려고 왔단다. 참나, 죽었다고 울며 불며 찾아다닌 친구들에게 살아 돌아와서 제일 먼저 내게 밥 사주고 싶었다네......"
얼핏 본 것 같다. 그의 눈가가 반짝이는 것을.
" 돈도 돈이지만 재미있대. 종이공예 할 때보다 더 재미있다면서 표정이 아주 밝아졌어."
" 다행이네. 좋은 선물도......"
자라 보고 놀란 가슴이 솥뚜껑 보고 놀란다 했던가?
탁자밑으로 숨고 싶은 마음에 열쇠고리 하나 일부러 툭 떨어뜨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