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채 큰 마루에 모여 앉은 사람들은 한 집에 사는 조돼지 엄마, 차돼지 엄마, 우영 아저씨였다. 우영 아저씨는 안방에 큰 책상을 놓고 시계수리를 했다.
아저씨의 돋보기는 한쪽에만 끼는 것인데 처음 봤을 때 커다란 한쪽 눈을 본 후로 가끔 아저씨가 외계인 같다고 생각했다.
만화책에서 본 외계인은 분명 눈이 하나였는데, 아저씨는 쪼끄만 눈이 큰 눈 옆에 살짝 붙어 있었다.
두 돼지 엄마들은 돼지띠 해에 아이를 낳아서 그렇게 불리었다.
일주일 전 나는 급성 맹장염으로 수술을 했기에 학교에 가지 않았다.
" 경아엄마 애 데리고 건너와. 고구마 쪘어."
가을 햇살이 어느새 마루로 살금살금 기어 들어오고 있었다.
주인 할머니가 고구마를 내 손에 쥐어주다 말고 내뱉는 말 때문에 나는 내밀었던 손을 얼른 뺐다.
" 경아! 너 수술하고 네 엄마 얼마나 놀랬는지 아니? 아바이도 없이 니들 삼 남매 혼자 키우기 힘드는데 네 엄마 시집보내자."
" 그래. 맞다 아버지가 있으면 덜 힘들지. 엄마 장사 안 다녀도 되고 이렇게 매일 너랑 놀고."
두 돼지엄마들까지 맞장구를 쳤다.
" 싫어요."
엄마는 웃고 있었다.
의심이 갔다. 엄마도 원하는 걸까?
" 야야! 니 친엄마도 아닌데 왜 새아바이는 안되네?"
뭐라고? 나는 숨이 멈추는 걸 느꼈다.
뭔 소리냐고?
" 니 몰랐나? 니 다리밑에서 주워 왔단 말이다."
내 눈은 뜰 수 있는 데까지 몽땅 뜨고 엄마를 바라봤다.
여전히 엄마는 웃고 있었다.
" 친딸도 아닌데 왜 수술은 해서 살렸어?"
" 주워왔어도 죽으면 안 되지."
"그럼 친엄마는 어디 있어?"
" 그야 모르지. 포항에서 주워왔으니 거기 안강 다리 밑에서 기다리지 않을까?"
전에 들은 적이 있는 말이다. 나를 포항에서 낳아 첫돌이 지나고 서울로 올라왔다는 말.
진짠가?
엄마는 아직도 웃고만 있다.
그 사이 고구마 바구니는 반이 비어있다.
그랬구나.
엄마 혼자 우리 삼 남매를 키우려면 힘들겠다.
남동생은 기억에 없지만 막내는 엄마가 낳은 걸 봤으니 적어도 막내는 엄마 딸이 맞을 테고 남동생은 아들 낳았다고 잔치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나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좋아하셨다는 말만 들었던 기억이 났다.
주워왔어도 좋아할 수는 있지 않았을까?
아직 실밥을 빼지 않은 오른쪽 배가 뜨끔거린다.
슬그머니 일어나서 우리 방으로 가는데 주인 할머니는 뒤통수에 대고 또 한마디 한다.
" 짐 싸러 가나?"
아직 나는 내 진로를 정하지 못했는데 주인 할머니가 정해 버렸다.
일단 책가방에 교과서를 챙겨 넣고 보자기를 펼쳐놓고 우선 갈아입을 옷을 보이는 데로 쌌다.
목젖이 덜컹 내려앉아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엄마. 친엄마는 아니어도 나를 살려주시고 그동안 키워주셔서 고맙다는 말은 해야 할 텐데.
자고 있는 막내를 내려다보다가 그만 눈물이 흘렀다.
막내는 엄마를 닮았는데, 나는 아무리 거울을 봐도 엄마를 닮지 않은 것 같다.
친엄마를 닮았나?
가방을 메고 보따리를 왼손에 들고 아직 아픈 수술자리는 오른손으로 누르고 신발을 찾아 신었다.
" 야야! 지금 바로 갈라나부네. 주소는 아나?"
" 경찰서 가서 물어볼라고요"
대문 앞에서 뒤를 돌아다보며 고맙다고 인사를 하려는데 엄마가 나를 잡았다.
아까부터 내려앉았던 목젖이 올라붙었는지 나오던 소리가 꼭 막혔다.
" 그동안 고맙......"
와락 엄마 품에 안겼을 때,
바들바들 떨며 우는 것은 내가 아니라 엄마였다.
그 이후로 주인 할머니와 두 돼지엄마들은 다리 밑에서 주어온 아이 얘기 같은 농담을 절대로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