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공터
“누나!! 미경이 누나!!”
“덕구 형아가......”
만호가 입천장 마른 소리를 지르며 내게 뛰어들었다.
막내를 씻기고 있던 나는 반사적으로 튀어 나간다.
‘누구야?’
말을 들어보기도 전에 알 것 같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지를 가늠하려는 마음이 더 급해졌는지도 모른다.
“건우 형이랑 현동 형이 덕구 형을 때려서……피가 나……“
그다음 소리를 다 듣기도 전에 공터에 도착했고 내 다리는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나보다 두 살이나 많았고 윗 골목, 아래 골목 합쳐서 제일 독종들이다. 지난번에는 오돈이 엄마가 말려줘서 쉽게 마무리되었는데……오늘은 나 혼자다.
점심 먹고 과자봉지 들려서 내보낸 것이 화근이다. 늘 파리한 덕구는 입도 짧아 두어 숟가락 깨작대서 과자 한 봉지를 먹으라 했는데……그새 그걸 가지고 나가 건우와 현동이 눈에 띄었나 보다.
달라. 안 준다.
몇 개는 줬을 것이다. 나머지는 뺏기고, 그 와중에 맞았고 소아마비인 동생의 힘없는 다리로는 도망칠 수도 없었으리라…….
겁난다.
가난한 동네에는 낮에 어른이 거의 없다.
나는 오늘 저 아이들을 이기지 못하면 안 된다.
일단 눈에 들어온 부러진 부삽 자루를 일단 주워 들고…….
저것들은 독종이니까, 쿵쾅대는 내 심장 소리에 내가 놀란다.
빈 과자봉지를 발로 비비고 서 있던 현동이가 나를 본다. 건우가 옆에 있으니 의기양양하다. 현동이 눈은 소를 닮았다. 건우보다 덩치만 컸지 거의 바보다. 독종은 사실 건우다.
건우는 엄마가 신이 들렸다고 한다. 늙지도 않은 건우 엄마가 쪽 머리를 하고 다녀서일까? 기도하러 가서 산에서 산다고 했다. 지금 건우는 가발공장에 다니는 작은 누나와 살고 있다.
나는 건우를 노려보면서 일단 덕구의 상태를 봤다. 넘어진 건지 맞은 건지 입술에 흙과 피가 묻어 있다.
내 손에 힘이 들어가고 나는 가차 없이 건우를 향해 뛰었다. 건우도 내 쪽으로 걸어오며 주먹을 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아니 안 봤다는 게 맞을 거다. 어느 정도의 거리인지는 모르겠으나 부러진 삽자루가 빗나갔다. 피하고 난 후 건우가 표독스러운 눈으로 째려본다.
나는 안다, 내 긴 머리가 불리하다는 걸…….
내 몽둥이가 먼저 건우의 어깨를 향했고 건우의 주먹이 날아왔다.
퍽, 번쩍!
쿵쾅대던 내 심장 소리가 멈췄다. 다시 날아오는 손목을 잡아챘다. 할 수 없다. 건우를 이기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욕이 튀어나오기도 전에 나는 건우의 손목을 물어 버렸다.
“크……. 아악”
이겼다. 난 이겨야 한다.
허구한 날 뺏기고 얻어터진 입술로 울며 들어오는 동생 앞에서 지면 절대 안 되니까, 나의 이는, 아니 이빨은 먹이를 문 짐승의 이빨일 뿐이다.
내겐 아주 긴 시간이 흐른 것 같았고 옆에서 아이들의 소리가 들린다.
‘피가 난다고?’
하지만 놓을 수가 없다. 애들은 나보다 더 겁이 많으니까, 건우는 독종이다. 이 정도로는 이길 수가 없다. 건우가 운다. 아프다고, 놓아 달라고……. 나는 오히려 더 이빨에 힘을 준다. 상대를 설핏 건드려 놓으면 다음은 내가 당한다.
지난번 은삼이랑 싸울 때도 그랬다
이번에는 절, 대…….
결국 건우가 애원하다가 통곡으로 바뀐다. 다시는 덕구를 안 때리겠다고 맹세를 한단다. 사실은 나도 무섭다. 상처를 볼 생각에 부르르 떨리기까지 한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덕구가 내 다리를 붙잡고 눈물 콧물에, 코피까지 범벅이 되어있다.
“네가 왜 우냐?”
슬그머니 손목을 놓아주자 건우는 손목을 부여잡고 겅중겅중 뛰며 운다. 누가 불렀는지 옆집 목수 아저씨가 뛰어오신다.
아저씨는 아신다.
“놔라, 미경아”
다행이다. 속으로는 아저씨가 좀 더 빨리 오셨더라면 싶었다. 아저씨는 언제나 내 편이시다. 나랑 덕구를 보시더니 이내 길길이 뛰며 우는 건우에게로 가신다.
다짜고짜 건우의 머리통을 따악!
건우가 앞으로 고꾸라진다.
“그러게 애는 왜 괴롭혀?”
“따악”
확실히 독종이다. 대갈통도 딱딱하다. 다행히 내가 문 손목에서 피는 나지 않았다. 대신 내 잇자국만큼의 때는 벗겨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