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온, 그리움을 싣고.
와온에는 우리들의 형이 있다.
8월 14일
마음이 맞으면 못할 것이 없다.
가자 순천으로.
오늘은 평일이니 병원은 근무 중일터이다. 깜짝 손님을 빙자해 형을 만나러 한달음에 고속도로를 달렸다.
휴게소에서 가장 빠른 점심으로 해결하고 도착한 시간은 3시 32분.
환자와 상담 중인 형을 기다리는 잠깐동안 숨 고르기를 하면서 여러 사정으로 건너뛰었던 시간이 미안해졌다.
하지만 다시 오겠다며 떠난 시간과 다시 찾은 시간은 어제와 오늘쯤의 간격으로 밖엔 느껴지지 않았다.
순천 시내를 흐르는 옥천 옆에 있는 카페에서
나눈 우리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곽재구 시인이 형에게 " 누수"라는 호를 붙여 주셨단다.
맞다.
형의 마음은 늘 누수였다.
누구에게나 듬뿍 나눠주는 ( 실은 몽땅 줘버리는) 사랑에 우리는 늘 감동이었다.
형의 삶 전체가 사랑이었다.
아직도 덜 자랐다고 낮추는 형을 만나면 지고 있던 등짐이 훌쩍 가벼워진다.
형이 덜어 준 것일 게다.
무거운 이야기도 가볍게 들려주며 오히려 듣는 이를 걱정하는 눈빛.
순천 아래시장 장어탕으로 저녁을 먹고 곧바로 와온 집으로.( 형이 곽재구 시인과 의견을 맞춰 지은 문인들의 집이다 )
와온 집 옆에 섰다는 말로만 듣던 건물들이 화려하다.
교회건물이라며?
어차피 사람 모이라는 곳이니 교회면 어떻고 펜션이면 어때. 행복하면 되는 거지.
덥다. 더워.
형이 다녀 간지 꽤 된 듯한 오래 비워졌던 빈 집으로 들어섰다.
여명의 바다는 들물이다.
낮은 바다 와온.
떼거지로 몰려와서 주구장창 퍼 마시던 막걸리색의 안개가 걷히면서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두 번이나 깎다가 멈춘 잔디밭과 집 주변의 동백나무를 삼켜버린 환삼덩굴이다.
그는 내게 책 읽고 있으라며 창고열쇠를 찾아들고 나선다.
넓은 챙 모자를 쓰고 낫을 찾아든 그는 정원으로 내려서서는 소리를 지른다.
" 오늘은 내가 마루야마 겐지다. 으하하하하"
며칠 전에 읽은 마루야마 겐지 작가의 ( 그렇지 않다면 석양이 이토록 아름다울 리 없다.) 책이 떠올랐는지 유쾌하다.
온몸이 젖었다. 덩굴 밑에 숨겨져 있던 한 알 들어있는 오목눈이의 집도 찾았다.
푸른색의 알은 메추리 알의 3분의 1 정도의 크기였는데 동백나무열매 같기도 했다.
그의 몸이 몽땅 젖고 나서야 집이 숨을 쉰다.
새벽에 마을로 쳐들어왔던 바닷물이 빠지며 덩굴 걷힌 동백나무 울타리 사이로 바람을 보내온다.
덩굴에 발목 잡혔던 집이 숨을 쉬었고 거둬낸 덩굴을 치우며 우리도, 형도 숨을 쉴 수 있었다.
오늘의 마루야마 겐지를 연출한 그가 더 멋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