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컷 울고 난, 그래서 쉬어버린 듯한 소리를 긁어내리며 끊일 듯이 이어지는 그녀의 목소리에 푹 빠졌다. (미안해요)라는 노래에서 자꾸만 미안해지는 그때의 나는 무제한 미안한 마음만으로도 살아만 있었다.
아들의 뇌경색 충격으로 놓아 버린 엄마, 기억의 말간 눈빛은 나를 알아보지도 못하고, 잠깐씩 돌아오는 기억으로 사위에게 미안함을 대신하던 것은 거식증.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때.
대학병원에서 요양원까지 나는 남편에게 미안했다. 13년째 미안해하고 있다.
노래는 위안이었을까?
내가 하지 못하는 말을 대신해 준 것이었을까?
사는 게 힘들다며 찾아온 친구와 차를 마시다 들려준 이 노래는 ( 미안해요) 긴 밤을 새우면서도 감추고 싶었던 눈물을 남김없이 쏟아내게 했었다. 묻고 답하기가 굳이 필요치 않았다. 그저 들으면서 울 수 있으면 되는 거였다.
이따금 안부전화 속에서도 그녀의 흥얼거리는 듯한 (미안해요)가 들린다.
우리는 살면서 대나무 숲 하나쯤 있었으면 할 때가 많다.
대단한 사연도, 엄청난 고민도 아니지만 그러나 자기 말을 토씨 하나 빠뜨리지 않고 들어 줄 그 누군가가 꼭 있었으면 하는 그 순간.
노래가 있었다.
질퍽하게 풀어져 있는 노랫말과 가수의 음색이 덧칠되어 때로는 시원한 대나무 숲 속에 부는 바람인 듯한 그 노래.
쉰 목소리로 뱉어 낼 단어조차 찾아내지 못하던, 게워낼 한 모금의 목소리조차도 남아있지 않을 때까지 듣고 또 불렀었다.
공포에 질린 내가 들키고 싶지 않아서 씩씩하게 나를 속였었다.
먹어도 먹어도 허기가 몰려왔고, 먹는 양의 비례해서 살은 빠졌고, 글씨를 쓸 수 없을 정도로 손을 떨었다.
갑상선 항진증.
병명보다 오래 앓았다.
(미안해요)
이미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넜댔죠
무슨 의미인지.
차갑게 식어 버린 말 끝에
단단히 굳어 버린 몸짓에.....
그렇게 힘겨워했던 때.
딸아이가 건네준 강허달림의 작은 콘서트 티켓.
처연하게 노래하는 가수의 모습에서 젤소미나( 영화 (길)에서 나왔던 )를 만났다.
젤소미나가 떠난 잠파노를 찾던 불안했던 눈빛과 울먹이는 목소리는 등짐에 눌려 있던 나를 위해 노래해 주던 강허달림이라는 가수였더랬다.
흐르는 눈물을 받아 준 이는 옆자리에 있던 남편이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