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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뱅 Jan 23. 2024

첫 고비: 웨딩촬영 - 오전

아침 일찍 일어나서, 아무것도 못 먹고, 얼굴에 쥐나게 웃어

드레스 픽과 예복 대여를 마치고, 사진 촬영날까지 관리하기 시작했다. 2주도 안되는 짧은 기간이었기에 미미한 변화만을 가져온 채, 촬영일이 다가왔다.

촬영 전날, 예복 대여삽에 정장을 픽업하러 갔다.


"죄송해요, 바지가 아직 반납이 안 됐어요. 바지는 저희가 내일 스튜디오로 가져다 드릴게요."

전에 빌린 사람의 촬영이 길어졌는지, 내가 대여하기로 한 정장의 바지 한 벌이 없다고 했다.


"지난번에 스튜디오로 못 가져다 준다고 했는데, 되는거였네요?"

스튜디오가 가까우니 가져다 주거나, 당일 픽업이라도 하고 싶다 했던 내 요청을 거절한게 불편했다.


"아 이번엔 저희 책임이어서요."

진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럼 보상은요?"

내 나쁜 버릇 중 하나는 상대방이 내 기분을 안 좋게 했을때, 순수하게 상대방의 기분을 나쁘게 만드는 걸 목적인 행동을 한다. (내가 기분이 나빠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네?"

"저는 퇴근하고 여기까지 왕복 두시간을 운전해서 와야 됐잖아요. 근데 대여한 정장을 다 받지도 못 했네요."

"아 ... 혹시 원하시는게 있으세요?"

"해달라는대로 다 해주시게요?"

"...! 그럼 넥타이 2개 드릴게요, 오셔서 픽 하세요"

필요도 없었지만, 준다고 하니 넥타이를 받기로 했다.


대망의 촬영일, 청담동에 위치한 헤어/메이크업 샵에 7시까지 도착해야 했던 우리는 새벽 5시 반에 기상하여, 6시에 집을 나섰다.


"안녕하세요! 예약자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ㅂㅈㅇ 이요"

"네, 아래층으로 가서 대기 하실게요"

샵은 지하부터 지상까지 7층은 되어 보였다. 결혼 촬영으로 돈을 얼마나 벌고 있는 건지 궁금해졌다.


"신랑님은 좀 기다려 주시고, 신부님은 이리로 오실게요"

촬영에 있어서, 주인공은 신부다. 신랑의 역할은 30분 내로 끝나는 헤어와 메이크업을 마치고 신부를 기다리는 것이다.


"짐 잘 지키고 있어"

난 짐 지키는 강아지 였다.


신부 헤어/메이크업은 3시간 이상 걸린다. 달리 할 일이 없었던 나는 구경을 시작했는데, 인상적인 점은 요즘 결혼하는 사람들의 나이가 정말 많다는 거다. 결혼 당시 31살이었던 나보다 어려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결혼을 마음 먹은지 한달도 되지 않은 난 '이게 맞는건가' 하는 생각을 안 할 수 없었다.


"잘 되고 있어?"

심심했던 나는 메이크 업을 받고 있던 그녀를 찾아갔다.

"잘 모르겠어, 어때?"

"돈 주고 받는 이유가 있네"

확실히 전문가의 솜씨가 다르긴 했다. 그녀는 화장을 잘 못하기에, 그 차이는 더 극명했다.


"얼마나 더 걸려?

"몰라, 기다려"

매몰차게 쫓겨난 난 다시 대기석으로 돌아와서 웹툰을 보기 시작했다.


"신랑님, 준비해주세요"

3시간의 기다림 끝에 그녀의 준비가 끝났다. 첫 드레스 까지 입은 그녀는 다른 사람 같았다.

"와... 촬영에서 내 역할은 큰 부케 정도겠다. 차원이 다르네 진짜"

"뭐래 ㅋ"


"안녕하세요, 오늘 촬영 도와드릴 실장 입니다."

신부의 드레스는 입고 벗는거, 움직이는게 어려워, 도와줄 실장님이 한 분씩 있다.


"차를 샵 문 앞에 좀 대주시겠어요?"

베테랑인 실장님은 촬영을 진두지휘 했고, 우리는 얌전히 시키는대로 했다. 스튜디오에 무사히 도착한 우리는 대기실을 배정 받았고, 촬영을 진행해줄 사진작가님을 만났다.


"안녕하세요, 오늘 촬영 진행할 ㄱㅅ 작가 입니다. 이쪽은 도와주실 어시 분이고, 헤어 원장님은 좀 있다 오신다고 합니다."

웨딩 촬영을 하는데, 너무 많은 사람들을 만난 나는 기가 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는 공복이었다.


"야, 진짜 결혼식 보다 사진 찍는게 더 힘들어!"

나보다 먼저 결혼한 형의 말이 실감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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