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우(關羽)의 신격화

by 박대우

보민정성수정익찬선덕관성대제(保民精誠綏靖翊贊宣德關聖大帝).


엄청나게 길고 무슨 뜻인지 잘 모를 누군가의 직위이다. 누구인지 아시겠는가? 바로 관우(關羽)이다.

삼국지를 읽어 보지 못하신 분은 거의 없을 것이다. 유비, 관우, 장비의 도원결의부터 시작하여 삼국지 전편에 걸쳐 관우는 충(忠)과 의(義)의 화신으로 묘사된다.


유비가 조조에게 패한 후 유비, 관우, 장비 삼 형제가 흩어지면서 관우는 조조의 밑으로 들어가게 된다. 온갖 부귀영화를 제의하며 조조는 관우를 자기 휘하에 두고자 하였지만, 관우는 이 모든 걸 마다하고 유비와의 의리를 저버리지 않는다. 조조를 떠나 유비에게 돌아오는 과정에서 그 유명한 오관참장(五關斬將)이 나오면서 관우의 의리와 무용은 절정에 이른다.


그 이후에도 유비에 대한 변함없는 충성과 출중한 무용으로 유비가 촉을 얻는 데 공헌하며 중국 천하를 삼분하는 데 큰 공을 세운다.

촉나라의 요충인 형주를 지키다가 오나라 여몽에게 잡혔으나 항복을 거부하고 충의를 위해 아들 관평과 함께 죽는다.


가만히 살펴보면 관우는 결점이 많은 사람이다. 필부와 같은 옹졸한 자만심도 엿보인다. 황충과 같이 오호대장군에 봉해지자, 황충과 같은 인물이 어찌하여 자기와 같은 반열에 오를 수 있느냐며 불만스러워했다.

자신이 마초와 비교되자 기분이 나쁘다며 화를 내다가, 제갈량이 자신을 달래는 편지를 보내자 다른 이들에게 편지를 자랑하며 마음을 풀기도 하였다. 쓸데없는 객기와 오기로 촉나라의 요지 중의 요지인 형주를 잃고 결국 목숨마저 잃는다.


그런데 왜 관우는 중국에서 신(神)의 반열에까지 오르게 된 것일까?

삼국시대는 철저한 약육강식의 시대이고 온갖 권모술수와 배신이 난무하는 시대였다. 그러한 시대에 관우는 온갖 유혹에도 자기 주인인 유비를 저버리지 않았다. 형주에서 패하여 오나라 여몽에게 잡힘을 당한 후 뒤도 돌아보지 않고 꿋꿋이 죽었다.


일반 사람들, 현실에 묶여 비굴하게 살 수밖에 없는 민중들이 하지 못하는 것을 관우는 아무렇지 않게 해낸 것이다. 물론 관우가 신격화된 것은 송, 명, 청 등의 권력자들이 충성의 화신으로 관우를 미화하며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하여 신격화를 부추겼던 면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렇게 오랜 세월 변함없는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중국 민중들의 가슴속에 흐르는 사람의 도리에 대한 강한 갈망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삼국지는 소설이라는 점이다. 역사에 기초하긴 했지만, 많은 부분이 허구라는 뜻이다. 관우의 오관참장이나 조조를 살려 보낸 화룡도 장면 등은 모두 허구이다. 그리고 삼국지에 등장하는 관우의 무기인 '청룡언월도'도 그 시대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비록 소설일지라도 삼국지는 억눌린 중국 민중들의 가슴속에 깊이 파고들었을 것이고, 오랜 세월이 지나다 보니 소설이 마치 사실처럼 생각되기도 했을 것이다.


그래서 관우는 마침내 신이 되었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결국엔 현실을 택할 수밖에 없는 민중들의 고단한 삶 속에서 민중 자신들이 살고 싶어 하는 삶을 산 관우는 그래서 그렇게 신이 되었다.


우리 주변에도 그렇게 신격화되었거나 신격화되고 있는 인물들이 있을까 싶지 않나 싶다. 역사라는 것은 보는 입장에 따라 다르기는 하겠지만, 자신이 되고 싶어 하는 인물상에 대하여 과장된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우리 같은 일반 서민들과 다르게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갔던 사람들에게 박수와 사랑을 보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관우도 그런 사랑의 표현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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