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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루미 Jul 29. 2024

실패에서 지혜로 가는 길을 찾다

헤르만 헤세(1922), 『싯다르타』

  나는 20대의 8년을 방과 독서실에서만 보냈다. 방에서만 3년, 서울에서 2년, 그리고 다시 고향 독서실에서 3년. 그렇게 8년의 도전 끝에서야 공무원을 합격했다. 아직도 약을 먹고 있는 우울증과 평생 지워지지 않을 자해의 흔적도 함께 얻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 기간이 전부 어둠과 우울이었다면 절대 그렇지 않다. 나는 이 시간들 속에서 내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무엇을 잘하고 무엇이 부족한지, 나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고 앞으로 내가 어려울 때 어떻게 해야 극복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오늘 이야기할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1922)도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싯다르타"는 주인공 싯다르타가 열반에 이르기까지의 수양 과정을 다루고 있다. 혹자는 말한다. 경험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람이 현명한 사람이라고. 하지만 싯다르타도, 나도, 우리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다. 특히 우리는 싯다르타보다는 고빈다와 더 가까운 사람일 것이다. 싯다르타가 고빈다와 다르게 열반에 들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싯다르타는 우리 내면에 이미 답이 있다고 하였다. 그는 직접 경험함으로써 축적된 지혜로 답을 얻었다.


  해보야만 아는 것이 있다. 해보지 않고서는 모를 애로사항과 그 감정들. 남들이 말해주는 것만으로는 어렴풋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물론 그렇게 하다 보면 실패하는 경험 또한 생기게 된다. 선택하는 모든 길들이 성공일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실패에도 굴하지 않고 다른 길로 방향을 틀어잡는 태도 그리고 목표를 향한 꾸준함이다. 지혜 또한 마찬가지다. 지혜로워지리라는 목표와 통찰력을 갖추고자 하는 태도를 갖춘 채 수양하는 것이 그 길이다.


  고빈다는 열반에 들지 못했다는 말을 했었다. 나는 고빈다가 결국에는 열반에 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배우고자 하는 태도를 놓지 않은 결과 그는 싯다르타에게 배움의 방향을 얻었다. 그는 여생을 배운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는 남의 말로 지혜를 얻고자 하는 길로 가 실패해 본 것이다. 그리고 그 실패의 경험으로 새로운 방향을 수용했다. 나도 시험 실패의 경험으로 하고 싶은 것을 참는 법과 하기 싫은 것을 하는 법을, 그리고 나의 우울과 싸우는 법을 배웠다. 고빈다는 싯다르타와 다르지 않다. 우리도 고빈다와 다르지 않다. 매 삶의 경험에서 배우고 고쳐나가다 보면 우리는 조금씩 더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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