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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루미 Jul 29. 2024

뫼르소의 굳은 다짐처럼

알베르 카뮈(1942), 『이방인』

  소설 "이방인"의 중간에는 맥락과 다른 이야기가 하나 끼워져 있다. 매번 감정 없이 담담하게 관찰자로 존재하던 뫼르소가 체코의 살인사건 기사를 읽는 부분이다. 나는 이 이야기에 눈길이 갔다. 사건은 체코의 어느 비극을 다루고 있다. 이십오 만에 부자가 되어 돌아온 아들을 알아보지 못하고, 욕심에 어머니와 누이가 그를 때려죽인다는 내용이다. 모든 것에 무관심했던 소설의 앞부분과 다르게 뫼르소는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그는 읽고 읽었다. 왜일까? 있을 법하지 않지만 자연스러운 이야기이며 남자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그의 평으로 우리는 그가 너무나 일반적이라는 것을 있다. 그도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그렇게나 읽고 또 읽은 것이다.


  체코 기사 이후로 달라진 소설의 분위기는 이내 사제와의 면담에서 뫼르소가 감정을 터뜨리는 순간까지 달려 나간다. 이 마지막 장면에서 그는 남들과 다르지 않지만 그들의 관습과 도덕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죽음을 맞이하는 심정을 항변한다. 그는 여기에서 자기의 '이방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깨닫고 자기의 목소리를 얻게 된다.


  공무원 노조행사에 갔을 때의 일화가 생각난다. 누군가 산에서 이루어진 서바이벌 게임 중 휴대폰을 잃어버렸다. 분실신고를 접수받은 노조위원장은 '젊은 남자'들을 불러 모으며 산에 가 휴대폰을 찾자고 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도와주는 것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남자로서 힘이 조금 더 필요한 일을 하는 것도 얼마든지 기쁘게 일할 수 있다. 하지만 공무원의 불합리를 잡아주는 노조위원장으로서 그는 그러면 안 됐다. 나는 행사를 다녀온 후 노조 사무실에 가 이 아쉬웠던 일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알겠다며 나를 돌려보낸 후 내가 들은 결과는 혼자 와서 그런 소리를 하냐는 비웃음뿐이었다.


  나와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내 의견이 남녀갈등으로 잘못 번지기를 원치 않았다. 이렇게 나는 그냥 조용히 있는 것을 택하게끔 변해갔다. 하지만 뫼르소는 달랐다. 처형되는 날 많은 구경꾼이 모여들어 증오의 함성으로 자신을 맞이해 달라는 그의 굳은 다짐에서 점차 소극적으로 변해가는 나의 마음에 어떤 울림을 받을 수 있었다.


  일을 하다 보면 내 의견을 낼 때가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의견을 내는 경험은 전부 형식적이었다. '나는 네 의견을 들었어'라는 것을 증빙하기 위한 용도로만 사용된 느낌이다. 이런 경험이 쌓일 때마다 나는 움츠러들고 기존의 메시지에 동화된다. 하지만 새로운 사람의 목소리는 중요하다. 내가 그 말을 할 때나, 들을 때나 전부. 새로운 시선에서 다시 평가할 수 있는 기회기 때문이다. 남들과는 다를지라도 새로운 자로서 목소리를 내내는 것, 이것이 저연차 직원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고 앞으로 내가 들어야 할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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