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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루미 Aug 03. 2024

세잔의 그림에서 안식을 찾다

울리케 베크스 말로르니(2007), 『폴 세잔』

  폴 세잔의 그림을 처음 보게 된 것은 2017년이 끝나갈 무렵의 겨울이었다. 그 당시 나는 서울에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이었는데, 심한 우울증에 걸려(그 당시에는 몰랐다) 마음에 염증이 가득한 상태였다. 친구의 추천을 받아 서울에 살 때 문화생활을 해보기로 한 나는 예술의전당으로 찾아가 '예르미타시박물관展'을 보게 되었다. 전시회는 어디선가 들어본 화가들의 작품이 가득했다. 초상화는 재미없었고 풍경화는 지루했다. 그러던 중 폴 세잔의 'The Banks of the Marne'(1888, 제목 이미지)이란 작품을 보게 되었고, 본 즉시 나는 마음의 평화를 얻게 되었다. 풀 숲 속에 숨겨진 오렌지색 주택과 그 앞에 놓인 강에 비친 전경, 거기에서 나오는 숨이 멎을 듯한 고요함 앞에서 나는 한참의 시간을 보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이 책을 만났다.


  2007년 발간된 이 책은 TASCHEN 베이식 아트 시리즈 중 하나다. TASCHEN 베이식 아트 시리즈는 화가와 미술 사조에 대한 기초적인 설명을 제공해 주어 평소 애용하는 시리즈다. 이 책은 폴 세잔의 어린 시절부터 사망할 때까지의 주요 작품과 그에 대한 해설, 화풍의 특징과 시간에 따른 변화를 알려준다. 인상 깊었던 부분은 폴 세잔은 자연을 영속적으로 묶어두려고 하였다는 것이다. 그것은 시간의 정지가 아닌 변화와 영원성의 통합이었다. 그리하여 만들어진 고요의 형태를 보고 있자면 모든 것이 안전하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마치 모든 것을 쉽게 꿰뚫어 보는 신 아래 있는 느낌이다.


   <Onions and Bottle>(1895~1900년 경)


  책에 소개된 그림 중 'Onions and Bottle'을 보면 마치 세상의 질서와 같은 묘한 어우러짐이 있다. 먼저 딱딱한 유리병과 흘러내린 식탁보가 보인다. 유리잔으로 불투명한 그림에 투명함이 더해진다. 사물들은 가만히 놓여있지만 대각선의 구도를 가져 생동감이 탄생한다. 술병과 테이블의 생김새를 자세히 보면 다시점(多視點)의 관점이 보인다. 이 그림에서 우리는 세상 양면의 화합으로 완성되는 완전함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한 화가의 사랑 어린 시선을 찾을 수 있다.


  <Mont Sainte-Victoire, Seen from Les Lauves>(1904~1906년)


  또 다른 그림 'Mont Sainte-Victoire, Seen from Les Lauves'에서는 모든 것을 단순하게 보이게 하는 평면적 구성이 눈에 띈다. 세부적으로는 색채의 조화로 완성되는 자연과 우리에게 본질을 알려주는 것 같은 생 빅투아르 산이 보인다. 흐릿한 경계지만 뚜렷한 색을 가진 색들, 어우러져 있지만 고고히 서있는 산의 형상을 보고 있으면 그림은 마치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태도를 알려주는 듯하다.


  세상에 이리저리 치이다 보면 내가 생각하는 중요한 가치를 잊고 세상의 작고 별 볼 일 없는 것들에 마음을 뺏길 때가 있다. 예를 들면 스트레스를 풀지 못해 혐오가 담긴 사회기사를 보고 열을 낸다든지, 당장의 돈이 궁해 돈만 세며 행복을 잊는 것이다. 많은 책에서 소개된 위기관리 기법으로 애초에 위기상황을 만들지 않는 것이 있다. 폴 세잔의 그림은 내게서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 견고한 구도의 그림은 내게 마음의 여유를 가져다준다. 완성도 있으며 조화로운 색채는 내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해 준다. 그의 그림은 그렇게 나의 안식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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