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우린 살아있으나 내일은 아닐지 모른다

에단 호크의 <완전한 구원>을 읽고

by 임가영

사실 이번 주는 책을 두 권이나 읽었다. 그런데도 제 날짜에 맞춰 마감을 하지 못했다. 실은 한 자도 쓸 수가 없었다. 마흔 다섯 해를 살면서 지난 일 년은 가장 빠르게 지나간 일 년이었다. 아직 하루가 남은 12월을 제외하면 말이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우리 사무실에 모인 넷은 시간이 빛의 속도로 갔다며 호들갑을 떨었었다. 그런데 2024년의 마지막 한 달이 이리도 힘겹고 느리게 흘러갈 줄이야. 뉴스를 보면 내가 점차 소멸되는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시시각각 올라오는 뉴스를 모른 척할 수 없다. 우리나라 국민이니까. 내 일이기도 하니까. 그렇지만 내 의지대로 나를 표현할 수 조차 없었다. 그저 극과 극으로 치달은 전쟁 같은 시간들이 빨리 지나가길 바라며 기도를 할 뿐이다. 각종 행사들이 연이어 취소됐다. 바다가 보고 싶었다. 매년 겨울이면 우리 여섯 가족은 부산 여행을 했다. 광활한 동해 바다의 끝없이 이어지는 풍경과 야경이 빛나는 도시의 북적함이 공존하는 도시. 우리 집 어르신들과 아이들이 모두 충족할 수 있는 공간으로 부산만큼 좋은 도시는 없었다. 그렇지만 주말 부산의 방값은 사악했다. 그래도 불꽃처럼 타오르는 내 마음을 바다로 잠재울 시간이 필요했다. 부산을 가기로 작정을 하고 숙소 예약을 하는데 쏘아대는 그놈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지금 이 시국에 가족 여행을 간다고?? 이 정도면 병적이다.

그 목소리도, 나도...


내 키만큼 자란 아들과 160cm를 코 앞에 두고 있는 딸, 여섯 명이 한 차에 끼어 세 시간 반을 달려가는 건 무리다 싶어 차 두 대를 가지고 움직일까 했었는데 부모님께서 KTX를 타고 부산으로 오신단다. 이 자체만으로도 색다른 경험이었다. 낯선 도시 식당에서 부모님을 기다리는 일. 매일 보는 사이인데도 택시에서 내리는 두 분의 모습을 차창 너머로 보고 마구마구 손을 흔들어 대는 일. 잠깐 사이에 그리움이란 게 몰려와 더 큰 사랑이 되었다.

우린 항상 해운대에 묶곤 했는데 이번 여행은 거의 잠만 자고 바닷바람 쐬고 오는 거라 송도로 숙소를 잡았다. 이 번 여행 중 가장 좋았던 건 가족들이 함께 바닷가를 걷던 일, 나답지 않게(아침형 인간이라 여행지에서도 보통 새벽이면 눈을 뜬다.) 늦잠을 자고 있는데 "해가 뜨고 있어. 창 밖을 봐봐"란 b의 목소리에 잠이 덜 깬 상태로 바다 윤슬에 비친 태양을 바라보던 일. "엄마 정말 행복해" 하며 날 바라보는 딸과 눈 맞췄던 일. 이번 여행 중 가장 슬펐던 건 조식을 먹고 뉴스 검색을 하다가 '무안 참사'를 접했던 일. 이튿날 청주로 오는 길 내내 뉴스 속보를 들으며 몹시도 슬프고 자꾸만 슬퍼져 무기력했던 일.




영화 <위대한 유산>의 주인공 기네스펠트로와 에단호크의 아름다운 사랑을 보고 가슴이 설렜던 적이 있다.

그 배우 에단호크가 작가라고? 에단호크의 소설이라고? 제일 먼저 작가 얼굴을 보고 상한 속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분수대 앞에서 입을 맞추던 찬란하고 빛났던 그 남자 배우는 온데간데없고 삶에 찌들 대로 찌든 수염 기른 50대 아저씨 같았으니까.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점점 그 생각은 바뀌어 갔다. 그의 영혼이 깃든 자유분방한 표현과 지독한 외로움이 글 속에 묻어났고, 연기에 대한 열정을 표현한 그의 글은 작가로서 전혀 손색이 없었다. 뉴스를 보다 진절머리가 날 때 티브이를 끄고 막 읽기 시작했던 소설, 에단호크의 <완전한 구원>.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지만 할리우드 유명 배우라서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아가는 윌리엄 하딩의 삶은 꼭 에단호크 자신을 투영한 것 같았다. 팝스타인 부인을 두고 바람을 피워 언론의 뭇매를 맞고 철저히 무너져 내리는 그의 인생은 처절하고 가여웠다. 한 순간에 언론은, 대중들은 sns를 통해 그를 파렴치한 인간으로 몰아갔고, 한 때 대스타였던 그는 그야말로 쭉쟁이가 되었다. 하지만 연극 무대에서만큼은 아니었다.


지상 모든 곳의 극장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전쟁터의 극장, 모스크 지하의 극장, 아르헨티나 공원의 극장, 웨스트엔드와 도쿄의 극장, 모종의 마법 신비, 신성한 요술의 가능성이 거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생각이 행동으로 이어지듯, 상상은 의식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극장은 세상의 살아있는 의식입니다. 관객, 조명, 음악, 세심하게 선택된 단어들의 리듬, 몇몇 여배우가 자기도 모르게 왼손을 움직이는 동작 속에 상처를 치유해 주는 상상력의 춤이 있습니다. 이 춤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우리는 살아 있으나 내일은 아닐지 모른다. 이것이 현실,
이것이 나의 기도입니다. 오늘 밤 제가 이곳에 존재하게 해 달라는 것.

에단 호크의 <완전한 구원> p207


연극 무대가 끝나면 공허함이 밀려온다.

그 공허함 속엔 깨달음이 있다.

"우리는 살아 있으나 내일은 아닐지 모른다는 현실, 이것이 나의 기도입니다. 오늘 밤 제가 이곳에 존재하게 해 달라는 것"

작가의 말처럼 존재 자체는 살아가는 이유가 된다.

슬픈 밤이다.


무안 공항 참사 희생자와 유가족들 위해 기도드립니다.





keyword
일요일 연재
이전 17화누군가 널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