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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이 다가오는 중이라고 믿어봐

이꽃님의 <행운이 너에게 다가오는 중>을 읽고

by 임가영

전화보다는 카톡과 문자, DM으로 연락이 많이 온다. 내가 아는 분 중 한 분은 카톡 대신 문자를 쓴다. 왜 그러시냐고 묻자 문자는 단답으로 대화가 끝나서 편한데 카톡은 대화의 끝을 어떻게 맺을지 모르겠다는 게 이유였다. 볼일 다 보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에서 끝날 줄 알았는데 이모티콘이 등장하더니 "건강 챙기세요. 식사는 하셨어요?"로 이어진단다. 기자시절 오랜 시간 전화보다는 카톡으로 제보자들과 대화를 주고받았던 터라 내 양쪽 엄지는 이미 혹사를 당했다. 그래서 가끔 무리한 날에는 양쪽 엄지에 파스를 붙이곤 하는데... 꼭 그런 날이 있다. 카톡이 쏟아지는 날, 이 사람에게 답장을 하고 있는 중인데 위로는 알림창이 뜰 때, 수 백 명이 있는 단톡방에라도 초대된 날에는 '안녕' 인사와 '카톡방에서 나갔습니다.'가 동시에 뜨는 경우를 종종 보기도 한다. 오죽하면 카카오톡 회사서 '조용히 나가기'와 상대방이 대화를 읽었는지 아닌지를 확인할 수 있는 '1이 사라지지 않고 카톡 확인하는 방법'까지 나올 정도니까. 이날도 꼭 그런 날이었다. 카톡이 별처럼 쏟아지던 날. 민원이었다.

"도서관에서 추천한 책이라는데.. 이게 말이 되나요?"

"네? 무슨 책인데요. 잘 지내셨어요?"

"도서관 사서 추천 책이라던데 제목이 '죽이고 싶은 아이'에요. 이게 뭡니까? 어떻게 아이들한테 이런 책을 추천할 수 있죠?"

"아.. 그 책이요? 저희 딸도 읽던데.. 제목이 좀 그래서 그렇지 내용은 괜찮다고 하던데요.. 아니.. 더 알아보고 다시 전화드릴게요."

5학년 딸이 유일하게 서점에 가면 사달라고 했던 청소년 베스트셀러 중 한 권이었기에 민원을 받고 크게 걱정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제목이 주는 어감은 학부모가 봤을 때 충분히 민원 제기를 할 법도 하다. 이날 퇴근 후 딸에게 물었다.

"엄마가 저번에 사준 <죽이고 싶은 아이> 다 읽었어? 이 책 어때?"

"이꽃님 작가 책은 재밌으면서도 슬퍼. 근데 있을 법한 이야기라서 더 그런 거 같아. 엄마 이꽃님 작가 책 중에 <행운이 너에게 다가오는 중>이 있거든. 친구가 그러는데 무척 재밌데. 서점 못 가면 주문해 주라"

젊은 작가 미술 전시회에서 본 듯한 핑크빛의 일러스트 디자인의 책 표지는 보고만 있어도 행운이 내게 올 것만 같아 나른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딸 책상 위에 있는 놓여 있는 책을 바라보다 민원인의 말이 생각나 직접 읽어보기로 했다. 엄마와 나처럼, 내 딸과 함께 같은 책을 읽고 마음을 나누는 일을 상상하니 괜스레 미소가 지어졌다. 그런데 내심 책장을 열고 첫 페이지부터 놀랐다. 중1짜리 우리 아들이 가끔 친구랑 통화할 때 쓰는 리얼한 대화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서다. 예를 들면

"당연하지. 거기 라면이 진짜 개맛있대.", "걔 화난 얼굴 박제됐다던데.", "헐, 내가 지금 엄청난 개소리를 들었는데, 애들이 너랑 타노스랑 사귄대, 대박이지."


정말 성장기 청소년들의 대화를 바로 옆에서 엿보는 기분이었다.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단숨에 다 읽어버릴 정도로 글의 전개가 단순해 다음 내용이 쉽게 짐작이 가지만, 쉬운 말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우리 아이들의 언어로 녹여낸 소설이기에 내 마음에 더 와닿았으리라. 소설은 행운의 여신, 운, 타이밍, 운명의 존재가 화자가 되어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가정 폭력을 당하고 있는 주인공 은재에게 어느 날 행운은 축구공을 은재에게 굴려주고, 늘 외톨이였던 은재에게도 친구들이 생기면서 희망이란 끈을 잡을 수 있게 해주는 슬픔을 따스하게 녹여내는 이야기다. 소설이나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끔찍한 가정폭력이나 학교폭력은 더 이상 먼 얘기가 아니다. 그동안도 보도자료를 통해 익히 접하긴 했어도 교육청에서 근무하면서 사건 사고의 민낯을 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어 은재의 이야기가 그저 허구로 느껴지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일을 하라고 한다면 그렇게 힘든 일을 어떻게 하느냐고 대답할 것이다. 어떤 이는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거고, 어떤 이는 내 인생도 힘든데 어떻게 다른 사람의 인생을 바꾸느냐고 물을 것이다. 다른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일이 그저 관심을 가져 주는 것이라고 하면 아무도 믿지 않을 거다. 고개를 젓고 헛소리 말라며 코웃음을 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토록 간단한 것이 인생의 비밀이다.
관심을 가질 것. 너무 쉬워서 아무도 믿지 못하겠지만, 그래서 대부분이 그렇게 하지 않겠지만.

이꽃님의 <행운이 너에게 다가오는 중> p196/ 문학동네



관심을 가질 것.

작가의 말처럼 너무 쉬운 일 같지만 그리 쉽지만도 않은 일.

나의 관심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고??

핵개인화 시대, 더욱이 요즘 같은 혼돈의 시기를 살아가면서 내 멘털 챙기기에도 버거운데 내가 아닌, 우리 가족이 아닌 누군가에게 관심을 가지라고?

그래야만 한다. 각자의 싸움에서 이기지 않으면 종말이 올 것처럼 세상이 요란 맞게 시끄럽지만

누군가는 힘겹고 지친 외로운 영혼들을 위해 따뜻한 관심을 가져야만 한다.

새해가 밝은지 나흘이 지났다. 달력을 바꾸고 새 마음으로 2025 다이어리에 적었다.

행운이 다가오는 중이라고 믿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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