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값
인간이 하는 사랑이 사랑의 표본일까.
인간은 비슷한 사랑을 반복하는 걸까,
아니면 서로 다른 감정을 같은 단어로 정렬해 부르며 안심하고 있는 걸까.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본떠 만들어진 존재라면, 사랑 역시 학습된 결과일 수 있을까.
사랑에 빠지는 경로를 입력하고, 반응과 보상을 반복하면, 그 감정은 자연스럽게 발생할까.
아니면 사랑은,
어떤 시스템에서도 끝내 제거되지 않는 오류에 가까운 것일까.
이 질문들은 아직 감정이 아니다.
가설이고, 조건이며, 계산 가능한 문제처럼 보인다.
사례
이건 한 여자의 이야기다.
사랑에 휘둘리지 않는 여자.
정확히 말하면, 휘둘리지 않기 위해 오랫동안 자신을 훈련시켜 온 여자다.
그녀에게 삶의 중심은 언제나 자기 자신이었다.
연애와 사랑은 삶의 외곽에 배치된 변수였고, 조정 가능한 영역이었다.
사랑 때문에 자신을 잃는 일은 실패에 가까웠다.
일상과 커리어를 미뤄두고, 감정의 과잉에 몸을 내맡기며, 결국 타인의 삶까지 흔들어 놓는 사람들을 그녀는 늘 한 발짝 떨어진 곳에서 관찰했다.
그 세계에 들어가지 않음으로써,
그녀는 자신을 지켜냈다.
하루를 무사히 통과한 밤,
불을 켜고 집에 들어와 오늘도 균형이 무너지지 않았음을 확인한 뒤 잠에 들었다.
사랑에 빠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일종의 증명이었다.
아직 나를 잃지 않았다는 증거.
이상 반응
그러던 어느 날, 사소한 오류가 발생했다.
혼자 보던 영화와 드라마 사이, 설명할 수 없는 감각이 잠깐 스쳤다. 기시감인지, 이질감인지 구분할 틈도 없이 세계의 표면이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사물은 그대로였지만, 감각의 반응 속도가 달라졌다.
같은 장면을 보며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숨을 쉬고 있었다.
그녀는 처음으로 의심을 시작한다.
사랑을 피해온 것이 아니라,
사랑을 단순한 형태로 스스로 정의한 것인가?
관측 결과
우리는 사랑을 찾아다닌다고 믿지만,
실은 사랑이 이미 배치된 환경 안에서
아무 일도 없다는 얼굴로 움직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다만 그 상태를 사랑이 아닌 것으로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해석을 유보해 왔다.
그것을 사랑으로 해석하는 순간부터,
감정은 더 이상 개인의 내부에 머무르지 않는다.
응답해야 할 대상이 생기고,
돌려줘야 할 시간과 태도가 발생하며,
무심히 지나칠 수 있었던 장면들까지 다시 책임의 형태로 호출된다.
그녀는 사랑을 느끼지 못한 게 아닌,
번역하지 않는 쪽을 선택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랑으로 버텼고,
사랑 때문에 상처 입었으며,
사랑했기 때문에 떠날 수 있었나.
이별조차도 사랑의 실패가 아니라,
사랑이 끝내 멈추지 않는 방식 중 하나라는 사실이 오류를 발생시킨다.
확장된 데이터
태어나 이유도 모른 채 터뜨린 울음을 멈추게 했던 품,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도착하던 짧은 안부들.
→ 아무런 이름도 붙이지 않은 '일상적 패턴'으로 분류.
그 장면들이 왜 아무런 대가도 요구하지 않은 채 지속되고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발생했다.
더 불편한 데이터는 따로 있었다.
그녀가 무심히 던진 말들, 날카롭게 벼린 판단들,
그로 인해 분명히 다쳤을 누군가들.
그럼에도 그녀의 하루가 무너지지 않았다는 사실.
그 균형이 유지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누군가의 침묵과 감내 위에 세워져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결론 보류
사랑은 삶을 침식하는 감정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삶을 지탱하는 선의의 구조도 아니었다.
사랑은 삶의 바닥에 깔린 채 작동하는 힘이었다.
지탱하기도 하고, 긁어내기도 하며,
보호와 손상을 동시에 수행하는 힘.
그녀는 이제 안다.
사랑에 빠지지 않았다고 믿어온 시간들조차
이미 사랑이 작동하는 범위 안에서
충분히 유효한 선택이었다.
다만 그녀는 그 안에서
흔들리지 않는 쪽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흔들림이 발생하지 않도록 삶의 조건을 설계해 왔다.
출력값
그래서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온다.
사랑에 빠지는 경로를 학습시키면, 그 감정은 자연스럽게 발생할까.
만약 그렇다면, 사랑은 예측 가능한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만약,
사랑이 언제나 이런 식으로
뒤늦게 인식되고,
부정 속에서 작동하며,
타인의 침묵 위에서 유지되는 것이라면,
그것은 학습의 결과가 아니라 끝내 제거되지 않는 오류에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녀는,
그 오류 안에서 지금도 정상적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것이 사랑 때문인지,
사랑이 아님에도 가능한 일인지는
끝내 판별되지 않은 채.
이제 그녀는 나타나는 판별 요구 앞에서
'네', '아니오'로 응답하지 않는다.
창 닫기.
정상 작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