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을 춥시다!

이해하고 싶었어, 너의 그 단호함을. 너의 편협함까지도.

by 소서
붕대감기, 윤이형


나는 느리게 자라는 사람이었다.

키도 늦게 자랐고, 몸집도 남들보다 한참 뒤늦게 커졌다.

몸보다 마음은 늘 한 발 더 뒤에 있었다.

누군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일도 늘 뒤늦었다.


나의 성장은 늘 천천히 진행되었다.

뒤늦게 깨닫고, 한참이 지나서야 말이 되는 일들이 많았다. 그 더딘 시간 속에서야 비로소, 사람을 사랑하는 법 역시 느리게 배워 나갔다.


다 컸다고 믿었던 어른의 걸음 틈새로 성장통이 스며들었다. 마음은 아직 한창 성장기를 치르고 있다는 신호였다.


그리고 그 지연이 가장 오래 머문 자리가 있었다.

큰 상처도, 끝내 회복까지도 전부 맡겨야 했던 자리.

내가 배워 온 사랑의 대부분은 그곳에 있었다.


오래 거리를 두었고, 미워했고, 질투하기도 했던,

그 모든 여성들에게.




아이라인을 진하게 그려 눈을 숨기던 여자,

향수로 자신을 가리기도, 오래 남기기도 했던 여자,

첫 만남부터 거리를 좁히며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내던 여자,

사랑을 찾아 헤매다 쉽게 울음을 보이던 여자,

갖고 싶던 것을 손에 넣고 아이처럼 눈이 빛나던 여자,

자신을 드러내지 않겠다 말하며 시선을 피하던 여자,

아이 둘을 버스에 앉히고 그 옆에 서서 내내 아이들과 눈 맞추던 여자.


화장품 가게에서 제품을 찾지 못해 내 등을 살며시 두드리던 여자의 멋쩍은 미소도,

키오스크 앞에서 한참을 망설이다 뒤에 서 있던 나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던 그 쳐진 눈꼬리까지도.


나는 그 모든 여자들의 부족함을,

더딘 걸음을, 오래 머뭇거리던 순간을 사랑하게 되었다.


느려서 나의 시간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고,

몰라서 나와 눈을 맞출 수 있었으며,

추운 날 품속에서 오래 품었다가 조심스레 꺼내 보이던 그 다정함은 움츠러든 나를 위한 그녀들의 체온이었고, 곁에 맴도는 따스함이 나를 은은하고 단단하게 지탱해 주었다. 그렇게 내 계절이 지금껏 진행되어 왔음을 이제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나는 자랐나 보다.




한때 미워했던 건 사실,

당신을 너무 사랑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갖지 못한 것을 쉽게 지닌 당신의 반짝임이 순간 나를 질투하게 만들었고,

당신을 사랑하게 되었을 때 지금까지 쌓아 올린 나의 조각들이 어긋나고 흩어질까 두려웠다.


갑자기 좁혀진 거리 속에서 내가 숨겨둔 저열한 마음까지 들킬까 봐 겁이 났으며,

당신과 멀어졌을 때 나에게서 벗어난 온기를 다른 사람과 나누고 있을까 불안했다.


돌이켜보면, 나는 사랑 앞에서 늘 서툴렀고

그래서 더 쉽게 안심을 받고자 했지만

끝내 그 이기심을 드러내지 못하고

쌓아둔 애정을 단정히 말로 꺼내지도 못했던

나의 미숙함이었다.


늘 한 발짝 느린 걸음을 계속 걷고 있었다.




뒤늦게 깨닫는다.

나의 느린 시간을 통해 당신의 느림을 보았고,

당신의 느린 시간까지 사랑할 수 있게 되었으며,

그래서 더 오래 당신을 사랑하게 될 것 같다고.


이제야 맞물린 애정의 시간과 온도를 온전히 느끼며,

‘친구’라는 넓고도 긴밀한 춤을.

이 짧은 생에서 가능한 한 많은 여성들과 함께 추고 싶다.


언젠가 다시 땅으로 뿌리내려

또 다른 흔들림을 단단히 지탱하는 곳으로 돌아가며 막을 내리는 엔딩까지 있는 춤을.




그날까지,

우리는 계속 춤을 춥시다.

춤만 춥시다.


명목도, 설명도 필요 없는 자리에서

손은 꼭 잡고, 서툰 마음까지 데리고,

이상하고 아름다운 춤을 춥시다.


뜨겁고, 용감하고, 그리고 오래 남는 춤을!




by sos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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