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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른한 오후 Oct 18. 2023

"우리 장인 어른이 야쿠자야."

<카미야(神谷) 바> 1880년 창업한 아사쿠사의 맥주집

아사쿠사에서 사케왕과 맥주를 마시다

늦여름  비가 내린 저녁에 S와 아사쿠사(浅草)에서 맥주를 마시기로 했다.  A는 니혼슈(日本酒) 사업을 한다. 소위 '사케'라고 부르는 게 니혼슈다. 별명은 사케왕이었다.


내 친구의 친구였다. 오래지 않아 나와도 친구가 됐다.  첫 눈에 개성이 강하거나 눈에 확 띄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외모도 그렇고 성격도 그랬다.


항상 편안했고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캐릭터였다. 모범생 정도는 아니었지만 크게 비뚤어짐 없이 단정한 친구였다. 자기 목소리를 내서 모임의 중심이 된다거나 얘기를 재밌게 하는 축도 아니었지만 꼭 필요한 존재였다.


싸움이 나면 말리고 약속이 있으면 좀처럼 늦는 법이 없었다. 나서지는 않지만 묵묵히 자리를 지켜주는 그런 존재. 그런데 이렇게 점잖고 반듯한 A는 아주 가끔 엉뚱한 얘기를 해서 사람을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그 얘기는 좀 있다 하겠다.   


니혼슈는 의미 그대로 '일본주'다. 우리가 아는 사케를 일본에서는 니혼슈라고 부른다. '사케'는 술 전체를 통칭하는 개념이다. 맥주, 위스키, 청주 모든 것들이 '사케'인 것이다.


변두리 서민 동네의 정서가 고스란히 묻어나는 아사쿠사  

사케왕과 맥주를 마시다니. 아사쿠사는 오래된 것들이 넘쳐나는 도쿄에서 더욱더 오래된 것들이 많은 동네다. 일단 100년 이상 된 노포들이 즐비하다.


기모노나 유가타 같은 전통 복장 입은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곳이 아사쿠사다. 특히 시타마치(下町)라고 해서 변두리 서민동네의 정서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 또한 아사쿠사다.   

 

아사쿠사의 상징과도 같은 센소지(浅草寺)의 정문인 카미나리몬(雷門). 센소지는 '아사쿠사의 절'이라는 뜻. 아사쿠사는 뜻으로 읽는 훈독이고 음독으로 하면 '센소'가 된다.


시타마치(변두리)의 정취가 물씬 풍겨나는 아사쿠사의 한 골목


"퇴근 길 딱 한 잔! 이게 바로 선술집이지."


아사쿠사에서 스미다강(隅田川) 쪽을 바라다보면 저 멀리 스카이트리가 보인다. 두바이의 부르즈할리파에 이은 세계에서 2번째로 높은 건축물이다.


쇼와(昭和 1926~89년) 시대의 도쿄의 상징이 도쿄타워였다면 헤이세이(平成 1989년~2019년) 시대의 도쿄 상징은 스카이트리라고 할 수 있다.  

    

스카이트리에서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아사히맥주 본사 건물이 보인다. 맥주 거품을 형상화했다고 하는데 사람들은 ‘황금똥’이라고 부른다.


아사히맥주는 일본 1위 맥주다. 기린맥주에게 1위 자리를 내준 채로 고전을 면치 못하다가 1987년 아사히 슈퍼드라이가 출시 되면서 시장 1위 자리를 탈환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일본 드라마 보면 직장에서 퇴근한 가장이 씻고 수건을 목에 걸친 채 아내가 따라주는 아사히 병맥주 한 잔과 식사를 즐기는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일본 맥주의 대명사가 바로 ‘아사히’다.    

      

왼쪽부터 도쿄의 상징인 스카이 트리와 황금 거품 모양이 인상적인 아사히맥주 본사 건물


“토리아에즈(取り合えず) 나마비루(なまビール)!”     

토리아에즈 나마비루! 술집에 가자마자 외치는 말이다. ‘우선은, 일단은 생맥주’라는 뜻이다. 맥주가 국민음료라는 걸 대변해주는 말이다. 손이 닿는 모든 곳에 맥주가 있다.


독일이나 체코만 그런 게 아니다. 일본에서도 맥주는 일상이다. 물론 요즘 한국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하이볼’의 인기에 조금은 밀린 듯 하지만 맥주는 일본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국민 음료'다. 세계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맥주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아사히맥주가 전 세계 맥주 브랜드를 사들이면서 일약 세계 2위의 맥주 메이커로 발돋움했을 정도다.      


당당한 아사쿠사 1번지, 140세 넘긴 맥주집 카미야바

A와 나는 아사히맥주 본사 건물을 바라다보다가 다시 아사쿠사로 건너왔다. 그가 아사쿠사 1번지에 정말 끝내주는 맥주집 카미야(神谷)가 있다고 했다.


카미야의 주소는 아사쿠사 1-1-1이다. 아사쿠사 1번지인 것이다. 찾기도 쉽다. 아사쿠사역에서 내리면 바로 보인다. 주소만 1번지가 아니다. 일본 최초의 바(bar)다.


지금도 정식 명칭은 <카미야바>다. 140년 된 맥주집 상상이 가는가. 맥주의 본고장인 독일이나 체코 얘기가 아니라 일본 얘기다. 역사만 대단한 것이 아니다. 한 자리에서 140년을 버티고 있는 것도 남다르고 건물 전체가 카미야다.   

  

1층은 맥주와 가벼운 음식을 먹는 바이고 2층은 레스토랑이고 3층은 갓포(割烹 자르고 삶는다는 뜻인데 일반적으로 정성을 기울인 고급 요리를 지칭한다)다. 일종의 카미야 타운이다.


취향에 따라 기분에 따라 층을 골라 가면 된다. 당연히 이 고풍스러운 건물은 등록문화재다. 건물 전체가 식당이다 보니 와쇼쿠(和食 일본요리)도 있고 중국음식도 있고 서양음식도 있다. 웬만한 음식이 다 있고 아주 특별한 맥주도 있다.  


    

아사쿠사의 위풍당당한 터줏대감 카미야바


인종, 성별, 연령 관계없이 카미야 생맥주 앞에서 하나가 된다

가벼운 마음으로 1층의 문을 열었다. 정말 시끄럽다. 담배도 자유롭게 핀다. 외국인도 많다. 시끌벅적하긴 한데 뮌헨의 옥토버페스트 같은 느낌은 또 아니다. 그냥 일본식 오래된 맥주집의 전형이라고 본다.


흥겹고 편안하다. 시스템이 재밌다. 처음에 들어가자 마자 식권을 산다. 그 종이를 들고 자리에 앉으면 종업원이 알아서 주문한 것들을 가져다 준다.


광속으로 맥주가 나온다. 음식도 나름 빨리 나온다. 회전율이 좋으니 돈도 많이 벌겠다 싶었다. 종업원만 1층에 수십 명이 된다. 아사쿠사를 거닐다가 맥주 한 잔 하러 온 외국 사람들이 꽤나 많아 보인다.


1층에서는 가벼운 식사도 하고 끼리끼리 모여 앉아 맥주잔을 기울이는 회사원들도 있다. 인종, 성별, 국가, 연령 관계없이 맥주 앞에서는 모두 하나가 된다.


이렇게 손님이 많은 집은 대개 불친절하다. 세상에서 가장 친절하다는 일본마저도 예외는 아니다. 140년의 전통답게 아주 적당히 친절하다. 불친절이라는 선을 넘지 않는다.


편안하게 가서 맥주 한 잔 마시고 가벼운 소시지 하나 먹을 거라면 오히려 친절이 부담이 된다. 손님들하고의 적당한 거리두기가 나쁘지 않았다. 이런 집에서는 불친절하지만 않으면 다시 찾게 되니까.    

  

카미야바의 주소는 아사쿠사 1-1-1이다.


사업의 뒷 배경(?)이 된 장인 어른의 직업

A를 두 번째 만났을 때였던 것으로 기억난다. 도쿄에서 니혼슈(日本酒, 우리가 사케라고 부르는 청주) 사업을 하고 있던 그에게 나는 어떻게 해서 그쪽 분야에서 일을 하게 됐냐고 물었다.     

 

"우리 장인 어른이 야쿠자야.”     


장인이 뒷배경이 돼서 자기 사업을 도와주고 있다는 거다. 초면에 가까운 나에게 괜한 얘기를 할 리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인상 좋고 반듯한 A와는 쉽사리 매칭이 되지 않았다.


 장인 어른이 야쿠자라는 얘기는 최소한 아내가 재일동포이거나 일본인이라는 얘기다. 질문이 다시금 꼬리를 물었다.


아내의 눈물어린 고백으로 시작된 부부의 연

"와이프는 어떻게 만난 거야? 근데 한국 사람은 아니지?"


열심히 맥주를 마시던 그가 남의 얘기하듯이 대답했다.


“응, 일본인이야. 한국에서 만났어.”     


일본인 아내를 한국에서 만났다고. 참 어리둥절한 얘기다. 한국에 놀러 온 일본인 아내를 친구의 소개로 우연히 만났단다. 그때 그는 여자친구가 있었고 지금의 아내를 만날 처지가 아니었다.


몇 번의 만남이 겹치면서 그녀가 그를 좋아하게 됐다는 것을 알았다. 눈물을 떨구며 그가 좋다는 그녀를 보면서 새로운 만남이 시작됐다. 그가 얼마나 좋았던지 일본인 아내는 한국에 눌러 앉은 채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신혼 생활은 한국에서, 그런데 갑자기 캐나다로?

아이도 낳고 몇 년이 지났다. 한국 생활에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불현 듯 A부부는 캐나다에 가고 싶어졌다. 역마살일까. 방랑벽일까. 의외로 좌고우면하지 않았던 그들 부부는 아이들과 함께 어마어마한 짐을 이끌고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캐나다까지는 무사히 갔다. 모든 준비가 완벽한 줄 알았다. 그런데 중요한 서류가 누락이 돼서 캐나다로의 입국이 불허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한참을…아니, 잠시 고민하던 그가 결론을 내렸다. 아내에게 얘기했다.    

 

“우리 일본 가자.”     

아내에게 일본가자고 해버린 것이다. 아내의 고향 일본 말이다. 그녀는 당황했지만 그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그렇게 고대하던 그들의 행선지가 갑자기 캐나다에서 일본으로 바뀌는 극적인 순간이었다. 충동이라는 게 늘 나쁜 것일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때 서류를 보충해 캐나다로 갔었더라면 그를 알게 됐을 리도 없.


가정이라는 게 무의미하지만 그런 상상을 해보니 웃기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다. 인생이 적잖은 것들이 바뀌었을 것이다. 일본어와 한국어를 번갈아 쓰는 딸아이들은 어쩌면 영어와 불어와 한국어를 쓰는 아이들이 돼 있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사케가 아닌 캐나다 <무스헤드> 맥주 대리점을 하고 있지 않을까. 이런 얘기를 아주 덤덤하게 하는 그를 보면서, 이 친구도 정말 독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늦여름 남아있던 최후의 열기까지 식혀주는 궁극의 시원함

맥주가 가히 일품이다. 이렇게 구수하고 탄산이 강한 맥주는 참 오랜만이다. 카미야용 생맥주를 특별하게 공급한다는 포스터가 붙어 있다.


아마도 걸어서 10분 거리의 스미다강 건너 편에 있는 아사히맥주 본사와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카미야를 위해 전용 맥주를 아사히에서 공급해주다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손에 꼽을 정도로 훌륭한 맥주였는데 특히 궁극의 시원함은 늦여름에 남아 있던 최후의 열기까지 속 시원히 날려버렸다. 생맥주는 회전율이 좋아야 맥주의 선도가 유지된다. 좋은 맥주를 많은 사람들이 빨리 마셔주니 신선도는 최상일 수밖에 없다.


카미야바에는 맥주만 마시러 와도 남는 장사다 싶었다. 거기에 분위기는 덤이다. 기다리는 손님들이 입구 근처에 스치듯 보이자 3번째 잔은 포기하고 A와 나는 딱 2잔만 마시고 발길을 돌렸다. 한 잔 더 마시기 위해 우리는 다시 어둠이 깔린 아사쿠사 거리로 간다.


카미야바 맥주는 살아있다. 강렬한 탄산과 내장 깊숙히 박히는 쨍한 시원함.

     

연령, 성별, 나라 관계 없이 카미야바 맥주로 하나가 된다


4년만에 알게 된 진실

코로나 때 나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코로나의 긴 터널을 지나 4년 만에 다시 A를 서울에서 만났다. 도쿄에 있을 때는 그렇게 자주 만났는데. 쌓인 시간만큼 할 얘기가 많았고 취기가 돌 때쯤 갑자기 궁금한 게 생겼다.    

 

“정말 장인어른이 야쿠자야?”     


4년만에 진실이 드러났다. 그가 피씩 웃으며 대답했다.  

   

“그걸 아직도 믿고 있냐?”     


와, 정말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르겠구나. A는 정말 엉뚱하구나.            

SINCE 1880이라고 선명히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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