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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사 Jun 27. 2024

못해도 그만인 것들이 주는 재미

당신에겐 잘하지 않아도 되는 권리가 있다





기왕이면 잘하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다. 학교에선 공부 잘하고 싶고 직장에선 일 잘하고 싶고 노래방에선 노래 잘하고 싶고 말싸움할 땐 말 잘하고 싶다. 내가 굉장한 뜻을 두지 않더라도 모든 일을 골고루 어느 정도 잘하고 싶은 게 본능인 듯하다. 노력 없이 거저먹는 게 욕심같이 느껴지지만 사실이 그렇다. 이것도 잘하고 저것도 잘하는 삶은 너무나 윤택하고 즐거워 보인다. 어쩌면 그런 이유로 우리는 스스로의 재능을 궁금하고 좇으려 하는지도 모르겠다. 재능이 있다는 건 남들보다 조금 빠른 지름길을 알고 있단 뜻이기도 하니까.



나는 올해 처음 도자기 수업을 들었다. 가족들이 먹을 밥그릇을 만드는 게 목표였다.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참고할 이미지를 수없이 찾아냈다. 도자기 물레 돌리는 영상도 몇 개 봤다. 어렸을 때부터 손재주 있단 말을 들은 나는 물레질도 내 재능 중 하나라 생각했다. 손으로 하는 건 늘상 남들보다 잘하는 편이니 그릇 몇 개 정도야 뚝딱 빚을 줄 알았다. 그래서 도자기 수업 선생님이 뭘 만들고 싶냐 물었을 때 이런 거 저런 거 줄줄줄 이름을 외웠다. 그걸 비웃지 않고 끝까지 들어줬다는 점에서 그 선생님은 좋은 스승이었다.



물레 앞에 앉은 나는 두 달 동안 엉성한 접시짝 세 개와 식탁에 두면 기우뚱한 밥그릇 세 개를 만들었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도자기에 재주가 없었다. 잘하지 못했다. 그 사실이 실망스러웠다. 실망이 너무 커서인지 사놓은 도자기용 흙이 반이나 남았지만 다음 수업을 등록하지 않았다. 남은 점토는 창고에 던져 넣었다. 더 열심히 하면 발전이 있을 걸 알았지만 그만한 노력과 시간을 투자하기 싫었다. 뭣보다 내가 잘 못한다고 생각하니 더 이상 재미가 없었다. 돈 받고 하는 일도 아닌데 재미없는 것을 일부러 할 필요가 없었다.




여름이 되선 테니스 수업을 시작했다. 운동을 꾸준히 하는 것은 신년 계획 중 하나였다. 태어나 테니스는 쳐본 적도 없는 나는 레벨 1 수업을 들었다. 첫 수업에서 라켓을 잡는 자세를 배우고 짧은 랠리를 진행했다. 타고나길 운동치인 나는 번번이 공을 놓쳤다. 네 명 듣는 수업에서 제일 느리고 못했다. 라켓 잡은 손은 익숙지 않고 그것 좀 뛰었다고 숨이 찼다. 집에 가고 싶은 마음에 수업 내내 몇 번이나 시간을 확인했는지 모른다. 수업이 끝난 후에 ‘재미없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생각보다 힘들었고 얼마나 연습을 해야 다음 레벨로 올라갈 수 있을지 아득했다. 다음 수업에 오고 싶지 않았다.







며칠 있다가 잠자리에서 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주었다. 뭐든 1등 할 필요는 없다고 말하는 책이었다. 때로는 천천히 돌아가는 게 더 재밌다고 하는 책을 읽으며 나는 몇 마디 더 보탰다. 나는 나의 미성숙을 넘어서 내 아이에게는 성숙한 지혜를 전달하려 애쓰는 경향이 있었다.





뭐든 1등 하지 않아도 돼. 제일 중요한 건 네가 즐겁고 행복한 거야.
네가 뭘 하면서 즐거운 게 잘하는 거보다 훨씬 더 중요해.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고 잠들었다. 그리고 나는 내가 한 말을 되새겼다. 도자기도 테니스도 내 취미일 뿐인데 왜 이리 잘하는 데 연연했을까. 취미가 일이 아니고 취미인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건데. 맡은 일이나 잘하고 그 외의 것들은 그저 재밌게 하면 그만인 거 아닐까. 잘하면 좋고 못하면 그만인 것들에 너무 연연하는 태도가 삶을 팍팍하게 만드는 거 아닐까.

내가 도자기 전공을 해서 내 브랜드 창업을 할 게 아니라면, 도자기 수업은 도자기를 만드는 과정을 직접 진행해 보고 원하는 색을 발라보고 구워진 도자기를 신기하게 만져보고 식탁에 올려보는 데서 의의가 있다. 내가 뒤늦게 테니스 선수가 될 게 아니라면 테니스 수업은 새로운 운동을 배우고 거기서 사람을 사귀고 나중에 아이가 컸을 때 걔랑 공을 주고받는 시간을 누리는 데 의의가 있다.





내가 즐겁고 행복한 것이 도자기 그릇을 하나 더 굽고 테니스 공을 한번 더 치는 것보다 의미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신기하게도 다음 테니스 수업에 가고 싶어졌다.





두 번째 테니스 수업에서 나는 가벼운 마음을 지녔다. 다른 사람이 공을 치면 나이스를 외쳤다. 다른 사람이 공을 놓치면 아쉬워했다. 내가 공을 치면 기뻐했다. 내가 공을 놓치면 허허 웃고 말았다. 다만 그것뿐이었는데 나는 지난 수업보다 훨씬 더 많은 공을 쳤다. 선생님이 칭찬해 줬다. 중간에 숨이 차서 힘들었으나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못해도 그만이라고 생각하자 몸과 마음이 가벼웠고, 잘하면 배로 기분 좋았다.



이처럼 못해도 그만인 것들을 인정하니 편했다. 내가 여태 잘하고 싶어 한 것들, 그래서 할 때마다 재미보다 스트레스를 더 느껴온 것들: 외국어, 요리, 베이킹, 식물 키우기, 브런치에 글쓰기, 원서 읽기, 요가 같은 것들이 사뭇 편하게 느껴졌다. 깨달은 것은 며칠 안 됐는데 그 사이 나는 외국어를 좀 더 속 편하게 하고 완벽하지 않은 쿠키를 이웃에게 선물해 주었으며 브런치에 글을 좀 더 꾸준히 올리게 되었다. 모르는 단어에 끙끙대지 않고 즐겁게 원서를 읽어 나가고 요가할 땐 완벽한 자세 대신 내 숨소리에 좀 더 집중하게 됐다.






못해도 그만인 것은 또한 나의 권리이자 권력이다.




내가 도자기를 잘하고 싶은 것은 완성된 도자기 그릇이 나를 평가한다는 관점이 있어서였다. 테니스 공을 몇 번이나 치는지가 나를 결정짓는다 생각해서였다. 그런 평가나 결정이 없음을 안다는 것, 그래서 결과와 상관없이 나의 행복과 즐거움을 좇는다는 것은 도자기 그릇과 테니스 공보다 나 자신을 더 염두에 둔다는 것이다. 나를 존중하고 나를 아끼는 것은 이 모든 취미와 일상을 이어가게 하는 나의 힘이 되어준다.


이제 더 많은 것들을 부담 없이 겁 없이 잘할 생각 없이 도전해보려 한다. 못해도 그만인 것들을 해나가면서 경험하고 사유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지려 한다. 수영을 하고 악기를 배우고 그림도 그려보련다. 내 삶에서 새로운 재미가 끝없이 자라나는 것은 생각만 해도 즐거운 일이다. 설령 내가 또다시 그곳엔 나의 재능이 없음을 알아도, 손날로 가르는 물보다 실수로 먹는 물의 양이 더 많아도, 악기가 음악 대신 소음을 만들어도, 그 시간이 삶을 행복하고 윤택하게 해 준다면 그것들을 꾸준히 해나갈 것이다. 잘하지 않아도 그만인 일을 잘하려고 애쓰는 것의 결말은 대부분 창고에 처박힌 도자기용 점토처럼 어딘가에 막다른 다는 것을 안다.



지금 이 순간도 나는 이 글을 고쳐 쓰고 싶다. 잘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지만 마음 한 켠엔 더 완벽하게 정리된 글을 발행하고 싶다는 욕심이 아직 남아있다. 그러나 나는 그냥 발행 버튼을 누른다. 이 글이 잘 써졌다면 좋은 거고 아니라면 그걸로 그만이다. 이곳에서 글쓰기가 내게 주는 최고의 의의는 내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가지고 적어낸다는데 있다. 그런 마음가짐이라야 글쓰기를 더 오래 재밌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못해도 그만인 것들이 주는 재미와 자유는 이토록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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