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사 Jun 19. 2024

눈 내리지 않는 스노우볼은 팔리지 않는다

스노우볼에 눈이 내리려면




20년 전만 해도 스노우볼은 고급 장난감이었다. 동그란 유리 안에 눈사람이나 산타 할아버지, 아니면 서양식 집처럼 이색적이고 이국적인 피규어들이 서있었다. 손에 들면 보기보다 묵직했다. 홱 뒤집어 흔든 뒤에 자리에 두면 반짝이는 은빛 눈이 내렸다. 펄펄 날리는 눈발 사이에서 이국적인 피규어들은 잠깐이나마 생동감을 얻었다. 그게 마법인 것처럼 시선을 사로잡곤 했다. 은빛 눈은 구 안에서 하염없이 흩날리다 무겁게 바닥에 내려앉았다.



시간이 더 지나니 배터리를 넣고 전원을 켜면 자동으로 눈이 날리는 스노우볼이 나왔다. 그 안에 서있는 것들은 영원 같은 눈발 속에 파묻혔다. 어떤 것들은 오르골 음악 소리도 나왔다. 대게 크리스마스 캐롤이었다. 그걸 보고 있노라면 내가 아는 것과 다른 종류의 겨울이 코앞에 있는 거 같았다. 나 홀로 집에 같은 영화에 나오는 집마다 전구가 반짝이고 눈은 폭신하고 커다란 크리스마스 트리 밑에 선물이 줄줄이 쌓여있는 그런 겨울이 내게도 온 듯했다. 실상은 서울 어느 허름한 동네, 우리 집은 당시 크리스마스 트리를 놓을 자리도 없었고, 캐롤 같은 걸 틀어놓은 여유도 없었음에도 그랬다.






외국 살이를 하던 어느 날, 코스트코에 갔더니 아주 커다란 스노우볼을 팔고 있었다. 여러 개의 스노우볼 안에서 미키마우스와 그 친구들이 파티를 열고 있는 풍경 위로 눈이 사부작댔다. 천장에 조명이 달려 있어서 깃털같이 움직이는 눈발마다 그림자가 졌다. 미키마우스는 과연 행복해 보였다. 그러던 중 나는 그 속에서 작동하지 않는 스노우볼을 하나 발견했다. 죄다 밝고 활기찬 가운데 조명도 눈발도 없이 잠자코 앉아있는 스노우볼은 생기가 없었다. 비슷하게 생겼는데 다만 눈이 안 내리는 것 만으로 하나는 오래전에 시간이 멈춰버린 골동품 같은 모양새였다.


눈이 더 이상 내리지 않는 스노우볼. 애초에 이름부터 ‘스노우’가 들어간 스노우볼에 눈이 더 이상 내리지 않는다면 의미가 있을까? 스노우볼은 눈이 내리는 것에 의의가 있다. 눈이 내려야 더 멋진 풍경이 된다. 그게 아니면 별 볼 일 없는 장난감에 불과하다. 나는 눈 내리지 않는 스노우볼을 좀 더 보다가 삶에 지친 나를 떠올렸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삶에 방황하는 나는 종종 잔잔하고 별일 없는 인생을 찬미했지만, 과연 그게 삶으로서 의미가 있을까?


배터리가 고장 나서, 혹은 누군가 흔들어주지 않아서 영원히 깨끗한 그러나 텅 빈 유리구 안에 갇힌 스노우볼처럼 아무 일 없이 지나가는 삶은 재미가 없다. 생기가 없다. 더 나은 풍경을 가질 수 없다. 그 풍경에 빠져 모여드는 사람들을 가질 수 없다.





눈이 내리는 순간이 스노우볼의 클라이막스이다. 그걸 위해선 누군가가 스노우볼을 흔들어야 한다. 크게 흔들수록 더 큰 눈보라가 친다. 더 장관을 만든다.






삶이 스노우볼이라면, 그래서 멋진 순간을 이루어내려면, 나도 내 삶을 흔들어야 하지 않을까. 흔들리는 걸 견뎌야 하지 않을까. 흔들리는 것은 찰나이지만 눈 날리는 풍경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매료될 만큼 멋지니까. 내가 흔들든 남이 흔들든, 취업준비가 흔들든, 통장잔고가 흔들든, 인간관계가 흔들든, 정신없이 흔들리는 때가 있더라도 그때를 잘 견디고 나아가면 삶은 그럴듯한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그러니 지칠 때마다 지금은 스노우볼처럼 흔들리는 중이라 생각하자. 더 멋진 광경을 위해 지금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하자.

 



이전 06화 가성비가 당신의 낭만을 해치지 않도록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