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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메리 Dec 04. 2023

정신건강의학과 세번째 진료-서서히 받아들이고 있다.

또다른 동반자-우울증

벌써 세번째 진료를 봤다.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병원에 갔다.

하지만 이번에도 이런저런 다른 질문을 하는 의사가 불편했다.

남자 의사라서 그런가?

마음이 열리지가 않는다.


심리 상담 치료할 때는 그렇게 열린 마음으로 미주알고주알 털어놓던 나였는데...

그래서 상담을 할 때마다 한 시간이 부족하도록 눈물, 콧물을 다 쏟아내던 나였는데...

다른 건 남자 의사와 여자 상담사라는 것뿐인데 이상하게 말하기가 싫다.

자꾸만 그냥 약이나 처방해 주지 왜 자꾸 다른 질문을 하는지 답답하다.

그래서인지 이번에도 나는 거의 단답형으로 대답을 했다.


- 어떠셨어요?

- 네... 뭐... 괜찮았어요.

- 특별히 다른 부작용은 없었나 보네요.

- 네.


- 엄마와의 관계는 어떠세요?

- 엄마랑은 뭐 괜찮아요. 약 먹기 시작한 후로 엄마가 안심한 거 같긴 해요. 제가 술 먹는 걸 엄청 싫어하셨는데 술을 잘 안 먹으니까요.


- 남편과는 어때요?

- 좋아요.

너무 단답이라 의사가 당황스러워하는 것 같아 다른 말을 덧붙일까도 싶었는데, 뭐라 더 할 말이 없다고 느껴져서 그냥 입을 다물었다.

진짜 좋다는 말 말고는 할 게 없으니까.


- 딸과는 어때요?

- 딸은... 또래에 비해 성숙하지 못하거든요. 그래서 아직도 엄마인 나를 많이 찾아서 좀 그렇긴 한데, 요새는 그래도 괜찮아요. 잘 지내요.

이번에도 뭔가 의사는 내가 더 말을 하길 바라는 것 같았다.

내 말을 못 믿어하는 것 같기도 했는데 굳이 더 설명하고 싶지 않아 더 말하지 않았다.


- 회사 일은 어떤가요?

- 네. 뭐 짜증 나는 일이 있긴 한데 금방 가라앉아서 괜찮아요.

- 구체적으로 짜증 난 일이 어떤 건가요?

- 그냥 사람들이 다 고집이 있어서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자기 맘대로 해석해서 일을 하거든요. 그래서 제가 팀장이나 윗사람한테 사람들이 일을 다 다르게 해서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통일시켜야 한다고 이야기를 해봤는데, 다 그냥 모른 척해서 엄청 답답해요. 그런데 제가 뭐 권한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제 할 일만 하면 그만이니까 신경 안 쓰려고 하죠.

- 상사분들이 책임을 안 지고 나 몰라라 하는가 보네요.

- 네, 그런 셈이죠.


- 회사 일은 좋아하세요?

- 아니요.

나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엄청 빠른 속도로 대답이 나왔다.


- 이전에도 한 번도 좋아한 적이 없으세요?

- 네, 계속 싫었어요. 첫째 낳고 면접을 엄청 많이 다녔었는데 다 떨어지고, 애 있는 아줌마가 할 수 있는 게 이 공무원 밖에 없었어요. 이혼 전에는 이직하려고 공부를 했었는데, 이혼하고 나서부터는 돈 벌어야 하니까 어쩔 수 없이 이 일을 계속했어요.


- 그렇게 해오셨군요. 혹시 나를 위한 시간을 가지시나요?

- 그냥 요즘엔 자죠.

- 잠 말고 다른 건 안 하세요?

- 아... 요즘엔 글을 쓰기 시작해서 인터넷에 글 올리고 그래요.

- 그 일은 재밌으세요?

- 아니요. 그냥 뭐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하는 거예요.

- 에너지가 많으신 것 같네요. 항상 무얼 해오신 것 같아요.

- 네, 그렇죠.


그렇게 10분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대화가 오가다가 이전에 같은 용량의 약을 처방받고 다음 주 예약을 하고 병원을 나왔다.

이런 대화들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알 수가 없다.


엄마는 내가 가족력이 있어서 약을 계속 먹어야 할 것 같다고 하니, "하긴 너희 외할머니도 할아버지도 아빠도 좀 그랬지." 라며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나도 시간이 지나니 내 운명인가 싶어서 별 생각이 안 들기 시작했다.

그냥 나는 이렇다는 걸 조금씩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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