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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메리 Dec 02. 2024

자녀의 빚 갚아줄 수 있을까?

알아서는 안 될 남의 집 비밀을 알아버린 것 같다.

등기부등본을 떼어보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집 주소만 알면 누구나 쉽게 떼어볼 수 있는데, 단돈 700원이다.

요즘같이 개인정보가 중요한 시대에 이런 걸 이렇게 쉽게 볼 수 있다는 게 놀랍기도 하지만 생각해 보면 누가 일일이 돈 내고 떼어보고 앉아있나 싶긴 하다.

단순 열람용은 특정 개인 정보는 가려져있고 해당 부동산에 대한 중요 정보만 볼 수 있긴 하다.

아마 부동산 거래 편의성 때문에 그런 것 같다.

http://www.iros.go.kr/pos1/jsp/help2/jsp/001001003001.jsp

그런 등기부등본을 보면 언제 누가 얼마에 샀고 대출은 얼마인지를 알 수 있는데,

어떤 집은 대출이 하나도 없어 깔끔한 등기부등본이 있는가 하면,

어떤 집은 소유주가 계속 바뀌고 대출도 계속 쌓여 엄청 지저분한 곳이 있다.

또 어떤 집은 소유주는 계속 한 명인데, 대출을 했다가 갚았다가 이 은행에서 했다가 다른 은행에서 했다가 캐피탈에서 후취 담보를 했다가 하는 식으로 복잡한 집도 있다.

참 부지런도 하다.

대출이자 아끼려고 머리를 엄청 굴리며 계속 갈아타거나 돈이 필요할 때마다 집을 담보로 빌렸다가 갚았다가 한 것 같다.


어쨌든 그렇게 등기부등본에 그 집 스토리가 담겨 있다.

그것을 보고 있자면 머릿속에서 자연스럽게 상상하게 된다.

아... 이 집주인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무슨 사연으로 돈이 필요했을지, 어떻게 돈을 갚았을지 말이다.

얼마에 샀고 얼마에 팔았고, 어디 사는 몇 년생에게 샀고 어디 사는 몇 년생에게 팔았고.

이 사람은 이곳에 살면서 이 집으로 갈아타기를 했구나.

이 사람은 여기서 3~4년을 살았는데 본전도 못 건지고 팔고 나갔구나.

와~ 이 사람은 이때 30대 중반이었을 텐데 이 집을 샀구나... 등등등

정말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최근에 본 집도 그랬다.

집주인이 90년대생인데 엄마가 아들명의로 산 집이라고 했다.

아들이 속을 좀 썩여서 집을 내놓았다고 했다.

도대체 무슨 사연일까.

궁금하다.


전세입자가 살고 있는 집이었는데, 남자 혼자 사는 집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욕실부터 베란다까지 너무 깨끗했다.

이미 매매 가격보다 전세 가격이 오른 상태고, 앞으로 더 오를게 확실한 데다가, 말썽 부리는 세입자도 없는데 정말 왜 파는 걸까?

아들이 무슨 속을 썩이기에?

이럴 땐 700원이 아까우랴.

궁금증을 풀어야 한다.


허어... 이건 뭐지?

굉장히 소액인데 가압류가 걸려있다.

국민행복기금. 1000만 원 이하.

1천만 원도 안 되는 신용대출을 갚지 못했나 보다.

그래서 이 집에 가압류를 걸었나 보다.

직장이 있는 것 같던데 왜 그랬을까?

부모님은 굉장히 좋은 동네에 살던데 안 갚아주는 건가?


국민행복기금은 복권 파는 곳인 줄만 알았는데, 대출도 하는 줄 몰랐다.

난생처음 들어보는 곳에서 가압류를 해오니 검색에 들어갔다.

알고 나니 더 놀랍다.

신용회복을 성실하게 밟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돈을 빌려준단다.

이미 신용이 망가져 기존 금융권에서 돈을 빌리기 힘든 사람들을 위한,

그렇지만 성실하게 빚을 갚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긴급하게 생계자금을 빌려주는 그런 곳이다.

그렇다면 그 90년대생 집주인은 이 집을 사기 전에 신용회복 중이었다는 말인가?

그런데 더 놀라운 게 있었다.

이 집에는 이미 세입자가 살고 있다.

그 말은 즉, 선순위 세입자가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굳이 개인인 누군가가 후순위로 근저당권을 설정해 놓았다.

집주소와 년생을 추정해 보면 집주인 엄마인 것 같다.

근저당 설정에도 비용이 든다.

그 돈을 들여서 아들 명의로 산집에 선순위 세입자도 있는데, 굳이 후순위로 근저당까지 설정해 놓다니.

철저하다. 

놀랍다.

국민행복기금이 어떤 곳인지 몰랐을 때는 엄마가 아들 집에 무슨 근저당권까지 해놓나 싶었는데 알고 나니 수긍이 간다.

개인회생 중인 아들이 못 미더웠지 않았을까.

https://biz.heraldcorp.com/article/3310031

20대였던 아들이 무슨 사고를 쳤던 걸까.

코인이나 주식으로 망했을까?

아니면 다단계 사기를 당했을까?

설마 스포츠 토토 같은 도박을 했을까?

아니면 홀덤펍에 빠졌나?

수많은 뉴스가 스쳐 지나간다.

남일이 아닌 것 같다.

내 자식들이 그렇게 되면 어떻게 하나 싶다.


2000년대 초반 카드대란도 생각난다.

그때도 대학생들 신용카드 무분별하게 발급해 주다가 많이들 신용불량자 됐었다고 했는데...

참 등기부등본 하나로 얼굴도 모르는 알아서는 안될 남의 집 사정을 알아버린 것 같다.

그리고 나라면 어떻게 할지 생각하게 된다.

얼굴도 모르는 90년대생 집주인이 부럽기도 하다.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5112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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