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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메리 Nov 25. 2024

'여기에 있어도 좋다'는 소속감을 찾아서

부자도 열심히 사는 이유( feat.《미움받을 용기》)

철학자 : 하지만 평생 다 쓰지도 못할 재산을 모은 부자들도 대부분 지금 바쁘게 일하고 있다네.
왜 일하는 걸까? 한없이 탐욕스러워서?
아니야.
타자공헌을 위해,
나아가서는 '여기에 있어도 좋다'는 소속감을 확인받고 싶어서라네.
엄청난 부를 쌓고 자선활동에 매진하는 부자들조차도 자신의 가치를 실감하고, '여기에 있어도 좋다'는 걸 확인하고 싶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거지.
-《미움받을 용기》 중에서

언젠가 본 사주에서 그랬다.

나는 매력이 많아서 어디를 가도 인기가 있는데,

내가 그 그룹에서 금방 사라진다고...

마치 언제 있었냐는 듯이...


그 말을 듣고 조금 상처받았다.

어? 난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닌데...


생각해 보면 대학교 때도 모임을 4개나 열성적으로 활동했다.

지금도 관심 간다 싶으면 이 모임, 저 모임 열심히 다닌다.

한 번 하기로 했으면 끝까지 열심히 하고, 약속시간도 잘 지키고 추진도 잘한다.

사람의 환심을 사는 것도 그다지 어렵지 않다.


그런데 그 어디에서도 안정감을 못 느꼈다.

내가 있어도 될 곳, 내 마음이 편한 곳은 없었다.


가장 불편했던 곳은 돌싱모임이었다.

정말 미운 오리 새끼가 따로 없었다.

주변에 애 있는 돌싱이 없다 보니 같이 얘기할 사람도 찾고 재혼 상대도 찾을 겸 간 곳이었다.

그런데 다들 나랑 상황이 많이 달랐다.


가장 다른 건 육아 환경이었다.

나는 친정엄마와 같이 살고 있으니 비교적 자유로웠다.

거기다 이혼할 때 분리양육으로 결정되어 아들은 친조부모와 살고 있었다.

그래서 아들은 격주에 한 번씩 면접교섭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양육자와 비양육자, 양쪽 모두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양육자였지만 자유로웠고, 아이 하나는 소위 말하는 버리고 온 비양육자였다.

어느 쪽에도 맘 편히 끼질 못했다.

두 번째는 경제 환경이었다.

교대직 공무원이다 보니 먹고살 만큼은 됐다.

친정엄마랑 나랑 딸.

여자 셋이 살긴 했지만 괜찮았다.

남자의 도움이 필요할 땐, 결혼 안 한 친오빠와 남동생이 언제든 도움을 주었다.

엄마를 내가 모시고 산다며 오히려 고마워했다.

나는 엄마한테 살림과 양육을 도움받는 입장인데 말이다.


그렇게 나는 이혼 후 다른 많은 어려움에 처한 분들과 달랐다.

그러다 보니 내가 가끔 힘들다고 할라치면 핀잔 받기 일쑤였다.

내가 가진 고충은 그들의 어려움에 비하면 세발의 피였다.

나는 점점 그들 앞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되었다.


분명 처음엔 나도 그들에게 위안과 동지의식을 느꼈다.

이혼이라는 큰 공통점 앞에서 화젯거리는 무궁무진했다.

사회에서 배척되는 느낌, 아무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상처, 쉽게 다가오는 사람들 등등등

그렇지만 그것만으로는 관계가 지속되기 어렵다.

언제까지 힘든 이야기만 할 수 없지 않은가.


물론 그들과 나의 가장 큰 차이점이 있긴 했다.

나의 뚜렷한 재혼관이 문제였다.

그냥 연애만 하자 주의는 내게 너무 안 맞았고, 그러다 보니 나는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어갔던 것 같다.

혼자 살만한 능력이 되는 내가 재혼을 하겠다고 하니 '시댁에 덜 데었다, 전남편한테 덜 당했다, 결혼기간이 너무 짧았다' 등등의 이야기를 해댔다.

물론 그 말이 맞을 수도 있다.

우리 엄마조차도 내게 그랬으니까.

그래도 아무리 생각해 봐도 결혼은 좋은 것이었고, 한 번 실패했다고 포기한다면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나랑 안 맞는 곳이었다.

근데 굳이 왜 그들과 어울리겠다고 그러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만큼 외로워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어디에서도 소외된 것 같으니까 어디에든 소속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일부러 우스꽝스러운 소리를 하고 과장된 행동을 해댔다.

나도 이 그룹에 받아들여달라고 애를 썼다.

나를 보는 눈빛들이 이상하다는 걸 느낄수록 더 그랬다.

그렇게 여러 번 여기저기 들락날락하다가 결국 소용없다는 걸 깨닫고 조용히 나왔다.


사실 재혼을 한 지금도 방황하고 있다.

한 군데 정착을 하고 나면 좋을 줄 알았는데, 왠 걸 더 심해졌다.

목표 하나가 있을 때는 다른 건 다 버리고 그것만 보고 달리면 됐는데, 그걸 이루고 나니 갑자기 길이 사라졌달까?


도대체 내가 있어도 좋을 곳은 어디일까.

그나마 지금까지 경험으로 알게 된 것 한 가지는 있다.

내가 있어도 좋을 곳은,

내가 바로 알 수 있다는 것.

오감으로 느껴진다는 것.

그때 하는 노력은 비로소 허탈이 아니라 보람으로 돌아올 거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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