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모를 때는 대중 따라가는 게...
요즘 들어 대학을 선택할 때, 지방거점국립대(지거국)를 갈지, 인서울 대학을 갈지 고민하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 같다.
2000년 초반 학번까지는 학비 걱정에 지거국을 선택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2010년 즈음부터 국가장학금이 활성화되기 시작하면서 무조건 인서울을 원하는 추세였다.
그러다 최근 어디를 갈지 고민하는 걸 보니, 그 사이 분위기가 또 변한 것 같다.
아무래도 인서울 나와도 취직이 안 되는 경우가 많고, 지거국 나와서 대기업에 척척 취직하는 사례들이 많다 보니 그런 것 같다.
그럼에도 고민이 되는 이유는 지방은 딱 봐도 분위기가 침체되는 느낌이고, 서울엔 계속 사람이 몰리는 모양이니 그런 게 아닐까.
그래서 혼자 또 생각해 보았다.
우리 아이들 입시도 이제 4~5년 후면 시작되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예전에는 인서울 성적 되면 무조건 보낸다고 다짐했었으나, 결국 대학을 가는 이유도 잘 살기 위해서인데 과연 인서울 한다고 그 확률이 올라갈까?
그렇게 고민하다 기준을 하나 정했다.
지거국 vs 인서울 선택 기준
1. 본인 주관이 뚜렷하다. -> 지거국
2. 영어를 잘한다. -> 지거국
3. 그 외 -> 인서울
이렇게 정한 이유는 별 거 없다.
인간은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거다.
오죽하면 인간을 바꾸는 데는 3가지 방법뿐이라는 말이 나왔겠나.
1. 시간을 달리 쓰는 것
2. 사는 곳을 바꾸는 것
3.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것
모두 크게 말하면 환경이다.
혼자만의 의지로 뭔가 다른 인생을 바라는 건 불가능하다.
[시간, 장소, 사람]만이 변화를 일으킨다.
그런 측면에서 대학 선택 기준을 세워봤다.
지거국 vs 인서울 선택 기준
1. 본인 주관이 뚜렷하다. -> 지거국
; 이 말의 의미는 주변 사람들에 쉽게 휩쓸리지 않는 성향이라면, 어느 대학을 가던 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지거국을 가서 학비도 아끼고 각종 대학 혜택을 받으며 해외 어학연수도 가는 등 각종 혜택을 누린다면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주관이 뚜렷하지 않다면, 결국 대학 지인들과 어울리게 되고 그 수준에 맞춰지게 된다. 물론 그 수준이 나쁘다는 건 아니다. 그냥 인서울을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지거국의 지방색이 답답할 수 있으니까 하는 말이다.
; 그럼 본인 주관이 뚜렷한지는 어떻게 알까? 그건 수능 공부할 때 이미 답이 나왔다. 스스로가 제일 잘 알 수 있다. 친구들에 휩싸여 내 계획대로 공부를 하지 못했다면 주관이 뚜렷하지 않다는 것이다. 스스로를 속이지 말고 잘 판단하자.
2. 영어를 잘한다. -> 지거국
; 아무리 번역이 발전한다고 해도 언어는 중요하다. 내 스스로 할 줄 알아야 한다. 언어가 인간의 한계를 만든다는 가설에 적극 동의한다. 내 스스로 나의 한계를 정하는 일이 꽤 많았기에 더 그렇다. 만약 내 언어가 영어중심이었다면 삶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지거국에서 영어를 잘한다는 것은 남보다 기회를 많이 얻을 수 있다는 의미다. 인서울에는 영어 잘하는 사람이 넘쳐나겠지만, 지방은 그렇지 않다.
;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카산드라의 거울"을 보면 아이를 언어의 한계에 가두지 않기 위해 언어를 극도로 제한해 키우는 내용이 있다. 우리 뇌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기에 충분히 그럴 수 있단 생각이다.
3. 그 외 -> 인서울
; 위 두 가지 경우 말고 다 인서울을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평범한 사람일수록 인서울을 가야 한다. 대기업 공채가 거의 사라진 지금 더더욱 인서울 해야 한다. 대기업 공채 같은 공평한 기회는 앞으로 없을 것 같다. 공무원 시험만 남으려나? 앞으로 추천서는 더 중요시될 것인데, 결국 알음알음 취직이 된다는 소리다. 이는 인서울을 해야만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고민 말고 인서울 하자. 죽기 살기로 남들 따라가며 살아야 남들만큼 살 수 있다.
잊지 말자.
나의 주변 다섯 명의 평균이 나다.
지거국 vs 인서울 선택 기준
1. 본인 주관이 뚜렷하다. -> 지거국
2. 영어를 잘한다. -> 지거국
3. 그 외 -> 인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