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내 삶. 그게 뭐더라
사람은 생각대로 산다고들 하던데 그게 맞는 말이었나 보다. 나는 딱 이 시기에 그것이 크게 와닿았던 것 같다. 정말 생각하는 그대로를 선택하는 삶을 살게 되었으니까.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생각한 대로 사는 거라면 나는 왜 부자가 아니지?"
이 질문이 정답을 원하는 것이라면 안타까운 일이고, 비꼬는 것이라면 그것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인생을 또 다른 사람의 말 한마디에 맡기는 셈이니까.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서, 나는 이것이 생각과 상상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생각은 자신의 깊숙이 숨겨진 그 어딘가에서부터 오는 것 같다. 오랜 세월 동안 쌓인 다양한 경험이 굳어져서 하나의 가치관으로 단단하게 자리 잡는다. 그런 가치관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진심으로 믿을 수 있는, 아니 나도 모르게 맹신하고 있는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편견이라는 모습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런데 갑자기 왜 상상과 생각 타령이냐고? 나에게 있어서 퇴사는 너무나도 하고 싶지만 쉽사리 할 수 없는 것이라는 정의가 내려져 있었다. 말 그대로 그런 모습을 상상만 해왔던 것이다. 그런데 내 인생의 우선순위가 결정지어진 그 순간부터는 회사가 더 이상 나에게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었다. 회사가 없으면 내 인생이 망할 것 같고, 큰일 날 것 같았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이것은 돈을 버는 하나의 수단일 뿐이었다. 그것은 다른 방법도 존재한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퇴사라는 것이 상상이 아니라 생각이 되어버리니 선택지가 생겨버렸다. 이제는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미련 없이 내려놓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굳이 이 일이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니까 말이다. 물론 지금까지 해온 것들이 있고, 쌓아온 14년이라는 시간이 아까울 수도 있다. 솔직히 지금이 가장 연봉의 절정으로 다가가는 시기이니까. 그래, 현실적으로 따지면 이건 미친 짓이 맞다. "미쳤네"
반대로 생각하면 앞으로 억지로 붙잡고 있을 10년이 더 아깝게 느껴졌다. 어차피 평생직장은 없는 것이고, 정년까지 버틸 수 있을지도 솔직히 모르겠지만 대표가 아닌 이상 회사를 떠나야만 한다. 그때 가서 뭐 해 먹고살지를 생각하기 시작한다면 그건 더 미래가 없는 삶이 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선택을 미룰수록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지는 더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때쯤에는 ‘나는 나이가 많아서…’라는 고정관념이 절대적인 힘을 휘두를 때이고, 나는 도통 그것을 이겨낼 자신이 없다. 그렇게 생각하니 1년이라도 젊을 때 빨리 직장이라는 울타리 같은 감옥에서 나와서 평생 할 수 있는, 내가 즐길 수 있는 그 무언가를 찾는 것이 그리 최악의 선택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가장 좋은 방법은 지금부터 차근차근 준비를 해서 몇 년 뒤에는 그것을 더 몰입해서 해보겠다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이겠지만 꼬박꼬박 월급이 들어오고, 야근하느라 바쁘고 지쳐 있는데 몇 년을 꾸준히 준비할 수 있는 사람이 그리 흔하지는 않다. 하더라도 집중력에서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배가 부르니까.
갑자기 이렇게까지 구구절절하게 설명하는 이유는 바로 자기 합리화를 위해서이다. 이미 휴직이라는 공을 던져버렸으니까 이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내가 더 불안에 떨 수밖에 없지 않은가. 지금 이 순간에 내가 해야 하는 일은 후회보다는 합리화를 성공적으로 해내고 내 선택이 틀리지 않게 만드는 것뿐이다. 지금 당장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서 선택을 다시 할 것도 아니니까 말이다. 아무튼 가장 몸값이 높을 때 대책 없이 회사를 나선다는 정상적이지 않은 선택을 결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신기할 정도로 마음이 편해졌다. 몸이 망가져가는 동안 내 마음도 비정상이 되어버린 걸까. 이런 건 산재처리는 안 되겠지?
자유로움은 정말 대단하다. 회사를 다니면서 그동안 불편하던 것들이 그렇게 불편하지도 않다며 모든 것을 이해하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세상이 모두 아름다워진다. 이건 경험해 봐야만 알 수 있는 영역이라고 자부한다. 2시간의 지하철 출근길도 나쁘지 않다. 오늘도 기차여행을 떠나는 기분이 든다. 지상철이라서 감사하게 된다. 밖의 풍경을 즐길 수 있으니까. 더 이상 사무실에서 들려오는 부장님의 헛기침 소리가 귀에 거슬리지 않았다. 오히려 헛기침이 나와서 목이 불편하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주 평화로운 날이구나. 만약 득도를 한다면 이런 느낌일까 싶어 진다. 결국 나를 짓누르던 모든 것들은 마음의 병일뿐이고, 내 마음의 변화가 가장 좋은 치료제였던 것이다. 다행히 숨도 잘 쉴 수 있게 되었다. 이것도 결국 스트레스가 문제였던 것이 맞았다. 의사들의 말이 모두 맞았다. 해결책을 못 줄 뿐이지 진단은 정답이었던 것이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주사위의 모든 면에는 회사를 나간다는 내용이 각인되어 있다. 어찌 됐던지 나가겠다는 결심을 한 것이다. 뭐 하나 제대로 못하는 나라서 불안한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디즈니 애니메이션 <모아나>에서 봤던 장면이 슬며시 떠올랐다. 모아나의 모험과 나의 지금이 겹쳐 보인다. 그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부족장이라는 역할에 사로잡혔다. 나는 직장인이라는 역할에 몰두해 왔고 그러다 보니 나 자신이 없어져버렸다. 어느새 역할에 잡아먹혀버린 탓일까.
그녀는 주변의 끈질긴 만류에도 불구하고 결국 바다를 보며 노래를 부르다가 배를 타고 자신의 길을 나섰다. 나의 모험이 그녀와 같이 해피엔딩이라는 보장은 없다. 어떤 무지막지한 모험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불안보다는 기대감으로 바라보려고 한다. 더 이상 불안감으로 멈춰 있을 시간이 없으니까.
그저 그런 이유에서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낙장불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