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내 삶. 그게 뭐더라
팀원들에게는 퇴사까지는 굳이 말하지 않았지만 풍겨지는 그 분위기 때문에 어렴풋이 눈치채지 않았을까? 이걸로 인연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또 묘한 감정이 올라온다. 아마도 감사함과 미안함이 아닐까 싶다. 신기한 일이다. 끝이라고 할 때는 싫었고, 미웠던 감정이 따라오지 않게 된다. 덕분에 웃으며 마무리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휴직을 앞두고 오히려 팀원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많아졌다. 나의 생각을 말할 수 있었고 대화의 시간은 편한 분위기가 되었다. 그동안 거리를 둔 것은 솔직히 나의 탓이다. 투자공부로 힘들었기에 점심시간에는 나만의 시간을 가지며 쉬고 싶었고, 혹시나 내가 말실수로 부동산 공부 이야기를 꺼낼까 봐 두려웠던 것 같다. 꼬투리를 잡히고 싶지 않았다. 내가 회사에 적응을 잘 못한 모든 이유가 그것이구나 라며 납득을 하게 되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스스로 파내려 간 구덩이 속에서 홀로 고립이 되었기에 더 외롭고 힘들었고 결국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 아닐까. 내가 조금 더 동료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친근하게 다가갔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도 들지만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다. 지금 후회해 봤자 달라질 것은 없다. 우리의 관계는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고 잠깐 가까워진 이 관계도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멀어질 테니까. 이미 충분히 멀리 있긴 하지만.
3년이 걸렸다. 아파서 눈치를 보며 병원을 갔던 것을 제외하면 근무시간 내에 회사 밖을 나간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회사 바로 앞 편의점에 가는 것이 나에게는 왜 그렇게 어려운 일이었을까. 이전 직장에서는 동료들과 커피 한잔 하면서 시작하는 것이 아침 루틴이었다. 그게 익숙했었던 탓인지 그런 것이 전혀 없는 지금 직장에서는 더욱 감옥처럼 갑갑하기만 했던 것 같다. 하루는 용기를 내어 걸어 나왔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눈에 보이는 음료수를 골랐다. 그동안 눈치 보느라 편의점도 못 갔던 내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이게 뭐라고.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휴직을 하기 전에 다른 동료가 갑작스레 퇴사를 해버렸다. 더 늦게 공지한 동료가 먼저 나가서 팀의 분위기는 엉망이 되었다. 나도 더불어 난감한 상황이 되었다. 아… 이게 아닌데.
내 나름의 미안함을 2달 연장으로 대신했다. 당장 휴직 할 줄 알았는데 2 달이라는 추가 기간이 생기니 휴직이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예정과는 달리 전역일이 갑자기 멀어진 말년병장의 마음이 그럴 것 같다. 그 시간은 너무 길었지만 그래도 평화로움 그 자체였다. 누구도 터치하지 않는 시간이라 좀 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이 좋았다. 나는 어쩌면 이런 자유도를 원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내 의견을 전혀 낼 수 없고, 명확한 가이드를 주는 것은 아니지만 무조건 하라는 대로만 해야 하는 그런 일을 상당히 힘들어하는 타입이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기도 했다.
또 한 가지 달라진 것이 있었다. 말 한마디 꺼낼 때 그렇게 힘들고 눈치를 볼 수밖에 없던 상사들이 이제는 나의 눈치를 본다는 것이다.
“혹시 바빠? 이거 해줄 수 있어?”
이제야 나는 한 명의 인간이 된 것 같다. 사람들이 나를 어려워해야 내가 존중받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니 조금은 아쉽기도 하다. 해야 하는 일을 하고, 물론 급한 일이 있다면 늦은 시간까지 그것을 처리해야 한다. 하지만 정작 일이 없는데 눈치를 보느라 굳이 남아 있지 않아도 된다.
“그럼 전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렇게 당당하게 칼퇴를 할 때 모든 것이 적당해서 처음으로 만족감을 느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나의 권리를 잠시나마 만끽하고 싶다. 그것이 지금껏 아무 말 없이 달려온 나에게 주는 달콤한 보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