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내 삶. 그게 뭐더라
퇴사를 결심했으니 이제 내가 원하는 대로 살 줄 알았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나답게 살 줄 알았다. (둘은 분명히 다른 이야기지만 이상하게 동일어처럼 느껴졌었다.) 잠깐, 그러고 보니 ‘나답게’라는 말에서 이질감이 든다. 도대체 나다운 게 뭐지? 나는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처럼은 아니다는 생각으로 무작정 뛰쳐나온 대책 없는 사람이었다. 이걸 알아내고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성장한 것 같으니 일단 스스로를 칭찬해 주기로 했다.
다시 꿈을 생각한다. 내가 바라는 삶의 모습은 어떠한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꿈이라고 생각하니 너무 거창해서 그런지 특별히 떠오르지 않는다. 그냥 즐겁게 살고 싶다. 어차피 성공할 인생이라면 그 과정도 행복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좀 의아해 할 수 있겠지만 나는 당연스럽게 내가 성공할 것을 믿고 있다. 어디서든 사주를 볼 때마다 41살에 대운이 온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니 자연스레 나의 성공을 믿었던 것 같다. (뒤늦게 알았지만 여기서 말하는 대운은 행운을 말하는 게 아니라 움직임/변화를 말하는 것이었다.) 성공하는 것은 알겠는데 도대체 어떻게 성공하는 건지를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무작정 투자 공부도 시작했었다. 뭔가를 해야 결과물이 나오는 것이 아주 당연한 상식적인 일이니까. 투자 공부를 하던 그 3년은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즐겁기도 했지만 힘들고, 매일 피곤했고 점점 지쳐갔다. 미래만 생각했기 때문에 현재를 버렸던 삶이었다. 그런데 지금처럼 모든 것을 다 내려놓는 마당에 당장의 행복까지 버려야만 할까? 나는 어차피 성공할 건데 기왕이면 행복하게 성공하고 싶다. 행복을 위해서는 나다움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납득했다.
자 그럼 다시!
‘나는 즐거움을 좋아한다.’ 이 명제만큼은 명확한 것 같다. 아니, 명확하다!
평소에 좋아하지만 참아내고 있던 드라마, 게임, 웹툰 보기를 떠올렸다. 재미도 있으니 나를 위한 일이 되지 않을까 싶었지만 이런 것에 몰두하고 있을 때 내 마음이 나아지지는 않았다. 말 그대로 킬링타임. 나의 소중한 타임을 죽이면서 나 역시도 죽어간다는 느낌이 든다. 무채색의 내가 되어가는 느낌이랄까, 어쩌면 획일화되는 과정일지도. 그런데 흰색도 무채색이기도 하다. 색이 없지만 어떤 색이든 칠할 수도 있잖아?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지금 나에게 맞는 방법은 아닌 듯하다. 자기 합리화라는 녀석이 열심히 나를 설득하려고 하는 것이 느껴지니 이것이 아니라는 확신이 든다.
그렇다면 재밌는 게 뭘까? 심각한 표정으로 궁리해 봤다. 이런 것도 분석적으로 접근하는 내가 좀 이상하기도 하지만 열심히 몰입해 보면 지금과는 또 다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렇게 접근하니 더 심각해져서 웃을 일이 없어졌다. 오랜만에 유튜브를 켰다. 사람들이 말하는 웃음을 참지 못할 만한 영상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이건 웃음 1점, 이건 실소 정도. 어느새 나는 웃음 평가단이 되었고, 안타깝게도 아주 많이 까다로운 기준을 가져서 점수를 짜게 주는 편이었다. 깔깔깔 소리 내어 웃어보고 싶은데 그럴 일이 정말 없었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나름의 개그에 대한 철학이 있을 정도로 유머러스한 것이 중요한 사람인데 정작 내가 웃질 못한다니. 갑자기 이게 뭔 소리야? 싶겠지만 나한테는 정말 중요한 고민이었다. 얼마나 심각했냐면 주변 지인들에게 진지하게 고민상담을 받아볼 정도였다. 나에 대한 고민은 웬만하면 말하지 않는 사람으로서는 이런 행위가 흔한 일은 아니다. 억지로 기준을 너무 높여서 웃는 것을 막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답변에 어느 정도 납득이 되었다. ‘맞아, 그럴 수도 있어.’
모든 것을 통제하고 싶었던 사람이라서 웃는 것조차 내 기준에 맞는지를 체크하는 그런 류의 사람이었나 보다. 나중에 사람들이 그러더라고. 그때 너무 표정이 심각했다고.
시간을 들여서 고민해 봤자 아무런 결론이 나질 않았다. 나다운 것이 뭔지, 내가 좋아하는 게 도대체 무엇인지. 무엇하나 명확한 것이 없었다. 그래서 더 혼란스러웠다. 몸은 자유로워졌지만 내 머릿속은 뒤엉켜버렸다. 그래도 위안이 되는 것은 내가 성장했음을 느낀다는 점이다.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는 것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내가 퇴사를 결심하는 일이 생길 줄이야. 사람은 절대 안 바뀐다고 했는데 그것도 하나의 프레임일 뿐이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더 좋게 변화할 수 있다. 그것도 충분히. 지금은 혼란스럽겠지만 이것 또한 좋게 변화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믿어보기로 했다.
지금 당장은 실패했지만 더 고민해 보자. 나다움이 무엇인지, 나의 행복과 즐거움은 무엇일지. 이번에도 미뤄버린다면 더 이상 나를 만나지 못할 것만 같았다. 달라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