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내 삶. 그게 뭐더라
아이러니하다. 휴직을 하는 시점이 다가오니 오히려 더 바빠진다. 이미 웬만큼 정리가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회사를 떠나기 위해서는 많은 절차와 결제가 남아 있었다.
반납한 내 PC는 내가 퇴사를 결정할 때까지 보존될지, 아니면 그냥 무자비하게 포맷이 되어버리는 것일까? 나의 것이었던 것이 (그렇게 믿었던 것이) 사실은 대여했던 것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주어진 것들이 모두 내 것이라고 착각하지 말자.'
끝끝내 버리지 못하고 가지고 있던 잡동사니들을 쓰레기통에 처넣어버린다. 쓰다 남은 연간 메모공책, 캘린더를 챙겨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어 진다. 입사했을 때부터 출력했던 모든 문서들을 하나씩 세절기에 넣고 갈아버린다. 혹시나 보안 상에 어떤 문제라도 생길까 봐 두려워서 하나도 버리지 못하고 쌓아두고 있었다. 나는 정말 신중한 쫄보구나.
'드드드득' 종이가 갈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내 3년이라는 시간도 갈려서 흩어져버리는 느낌이 든다. 더 이상 돌아올 수 없겠지. 시원섭섭한 마음이 들었다는 점에서 오히려 감사한 마음이 든다. 너무 시원하기만 했다면 이곳에서 지냈던 나를 동정하게 될 것만 같았다.
"안녕히 계세요"라는 인사를 끝으로 회사를 나섰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따스한 햇살이 어색하다. 마지막으로 지하철을 탔다. 매일 돌아오던 길이지만 그날만큼은 모든 것이 어색해서 꿈처럼 느껴졌다. 너무 밝은 창가 너머의 풍경이 묘하게 아름다웠다. 마음이 홀가분해져서 아름다운 것일까? 그건 잘 모르겠다.
마지막 출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더 이상 왕복 4시간의 여행 같은 출퇴근길을 나서지 않아도 된다. 이제 그 시간들은 어떤 것으로 채워지게 될까 문득 궁금해졌다. 휴직을 하기 전에 꿈과 행복과 즐거움을 찾느라 바빴던 나에게 사람들은 좀 쉬라는 조언을 한다. 아내도 지금껏 달려오느라 이런 시간이 없었지 않냐며 일단 좀 쉬라는 말을 꺼낸다. 정말 감사한 말이다.
그런데 나에게는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
첫째는, 쉬는 법을 정말 모른다는 것이다. 그 부분에 대한 정보만 누군가 일부러 도려낸 것처럼 텅 비어 있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쉬는 거 아니냐고 말할 수 있지만, 시간 낭비 하는 것과 제대로 쉬는 것은 다른 것 같다. 쉰다는 것은 'Refresh'라는 단어처럼 뭔가 회복되는 느낌적인 느낌이 들어야만 할 것 같다. 그동안 쉬어 본 적이 없어서일까. 이런 것은 학교에서도 못 배웠다. 이렇게 인생에 필요한 것들을 알려줬으면 좋았을 텐데.
둘째는, 인생에서 한 번은 휴식을 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좀처럼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단 마음이 너무 불편하다. 아무것도 안 하는 연습을 해보라는 조언을 들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애써 만들어 둔 좋은 습관들이 모래알처럼 사라질 것만 같아서 두려웠다. 그렇게 되면 내가 너무 보잘것 없어질 것만 같았다. 아무것도 안 하는 날은 그냥 허무하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은 이 시간에도 열심히 하고 있을 텐데... 나는 뒤쳐지고 있구나'라는 생각으로 가득 찼다. 일종의 갓생병 같은 것이 아닐까. 그렇다고 내가 엄청 부지런한 사람은 또 아니지만 말이다.
뭐라도 깨작거리면서 하는 척이라도 하는 게 나를 방어해 주는 것 같다. 그게 나의 자존감을 올려준다면 그렇게 시작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자책하지는 말고, 나에게 좋은 이야기를 건네면서 조금은 마음의 여유를 가지는 것.
그것이 내가 선택한 쉼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