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내 삶. 그게 뭐더라
당시 자기 계발에 몰두했던 터라 1분 1초에 상당히 집착하고 있었다. 한번 마음 편히 푹 쉬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만 애써 고개를 저으며 다시 일어서는 날들의 반복이었다. 휴직을 결정 한 이후로는 너무 많은 시간적 여유가 생기게 되었다. 직장에서 언제 퇴근할 수 있을지 눈치 싸움도 안 해도 되고, 퇴근하고 나서도 투자 공부를 위한 시간이 줄어들었던 이유였다.
‘와아아아!!! 나는 시간 부자다!’
그토록 바라던 여유 시간이 생겼을 때 하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모닝커피를 마시면서 따스한 햇살 아래에서 우아하게 독서를 하거나, 오운완(오늘 운동 완료)을 외치며 흐르는 땀을 닦으며 바람을 느끼는 그런 상상을 했었다. ‘나름 부지런히 살아왔는데 그 습관이 어디 가겠어?’라는 믿음이 무색할 정도로 나의 루틴은 처참하게 무너져버렸다. 3년의 습관이 모래성처럼 흩어지는 것을 보는 것은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누워서 밀린 웹툰을 보고, 드라마를 보는 것이 너무 중요한 일이 되어버렸다. 나태함을 온몸으로 표현하려고 애쓴다는 느낌이랄까. 일단 누우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인간의 본성과 보상심리는 정말 무서운 녀석이다.
며칠 동안의 아담한 사이즈의 방황을 마치고 다시 한번 정신을 차리고 나서야 의미 있는 행위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꿈이 뭘까?’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이제는 중학교 때부터 미뤄왔던 대답을 들어야만 한다는 사명감 비스므리 한 것도 생겨났던 것 같다. 역시 사람이 몸이 편해지니까 꿈을 생각할 수 있구나 싶어 진다. 현실에 치여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꿈이 뭐냐는 질문을 하는 것이 잔인한 행위라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살면서 꿈을 잃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꿈이라고 할 만한 게 없었으니까. 단 하나도.
남편이 되었고, 아빠가 되었고, 무언가를 하긴 했지만 그것이 꿈이라고 할만한 것은 아니니까. 그나마 인생에서 처음으로 꿈을 꾸고 싶었던 것은 투자를 통해 내 인생이 바뀔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을 때였다. 그 당시에 나는 경제적 자유를 이루고 나면 무엇을 할 수 있는 상태인지를 생각했고, 그것들의 조각들을 모아서 비전보드를 만들었다. 좋은 집, 좋은 차, 세계여행, 그러고 나서 여윳돈으로 자산사업. 그저 내가 돈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의 나열이지 꿈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감이 느껴진다. 이것조차도 다른 사람의 것을 참고한다면서 슬쩍 보고 나서 베낀 결과물이 아닌가. 진짜 나를 만나고 싶어졌다. 일단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을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좋으니 떠올려보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습관처럼 했던 것 같다.
“부자가 되면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누워만 있을 거야”
이 얼마나 원초적이면서도 비논리적인 결론인가. 그렇기에 더 진심이 담겨있고 신뢰가 가는 말이다. 폐인 같이 누워서 드라마와 애니메이션만 봤던 그 옛날 고등학생 때처럼 아무 걱정 없이 누워서 푹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때는 물론 미래에 대한 걱정은 있었지만 지금처럼 현실이 크게 와닿지는 않았기 때문에 막연한 두려움 정도였으니까. 정말 생각 없이 살았구나.
문득 떠오른, 조금 창피하지만 나의 가장 하고 싶은 첫 번째 일인 ‘아무것도 안 하기’를 한번 해보기로 했다. 말 그대로 아무것도 안 하고 딱 누워있는 것이니 스마트폰, 영상도 모두 없는 상태였다. 그렇게 20분이 지나니 꽤나 지루해졌다. 생각보다 힘이 드는 일이라는 사실이 우스웠다. 그리고 아무것도 안 하는 게 그다지 행복하지도 않았다. 너무 당연한 사실이지만 경험을 해봐야 명확해진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역시 무엇이든 행동이 중요한 것 같다. 이렇게 쉽게 알 수 있는 것이었으면 미리 해봤으면 좋았을 텐데 왜 그렇게 하지 못했을까?
두 번째로 떠오른 것은 회사 점심시간에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이었다. 점심시간 시간이 끝나갈 때 서둘러서 사무실로 들어가고 있는데 한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가 강아지와 함께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스누피 강아지로도 유명한 베들링턴 테리어(품종을 모르겠어서 겨우 검색해서 알아냈다)라는 강아지였는데 우리 동네에서는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종류여서 더욱 눈길이 갔다.
‘이 시간에 특이한 강아지와 여유로운 표정으로 산책이라니 그것도 젊은 사람이!’
솔직히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 당장 뛰어들어가야 하는데 왜 이 사람은 이렇게 여유로울까.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길래 이 시간에도 일을 하지 않아도 될까라는 궁금증이 생겼지만 그렇다고 직접 물어볼 용기는 없었다. 그저 내가 부자가 되면 저런 모습이 될까 라는 생각을 하며 그저 헐레벌떡 뛰어갈 뿐이었다. 모처럼 시간이 생겼으니 이런 여유를 즐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당장 강아지를 키울 수는 없으니 가장 비슷한 종류의 일을 생각해 봤다. 바로 ‘평일 낮에 카페에서 사람들을 보면서 멍 때리기’이다. 스타벅스에 앉아서 창밖 너머의 사람들을 관찰한다. 이런 여유라니 나름의 사치를 부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순간 떠오르는 생각을 놓치지 않겠다며 끄적거리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하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갈 때쯤 알게 된다. 여유는 있지만 나에게 크게 뭔가 남은 것은 없었다. 뭘까 이 허전함은.
고작 이런 것들이 내가 바라던 모습이자 꿈이라고 하니 조금은 허무해진다. 아무튼, 이런 것들도 하루이틀이지 매일 할만한 일은 아니었다. 이런 행위들을 하고 있을 때 분명 여유로울지는 몰라도 이게 행복이지~라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온전히 경제적 자유를 얻은 것이 아니라서 그런 걸까 라는 의문도 생겼지만 그걸 지금의 내가 증명해 낼 수는 없으니 일단은 머릿속에서 지워보기로 했다.
할 수 있는 것을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