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비야
알부페이라에서 세비야까지는 4시간 반이 걸렸으나 국경을 넘어오니 시간이 바뀐다. 스페인은 포르투갈보다 1시간이 빠르다. 1시간만큼 동쪽으로 온 셈. 세비야에 숙소를 정한 후 스페인 광장과 근교 도시 론다, 코르도바, 일정에 여유가 생기면 세고비아까지 탐문할 예정이다.
넘치는 짐, 한국으로 보내기
알사 버스 스테이션에서 숙소까지는 걸어서 15분. 육중한 가방을 들고 걸을 수가 없으므로 우버앱을 연다. 택시비 8유로. 세비야 구도심은 골목길이 너무 좁아 자동차 진입이 통제된다. 택시에서 내려 200미터쯤 가방을 끌고 더 걷는다. 길에는 화려한 옷차림의 사람들과 노숙인이 혼재한다. 게스트 하우스 앞에도 넝마를 걸친 이가 앉아 내게 인사를 건넨다. 위협적이지는 않다. 가난이 위험을 뜻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 이후 나는 저들에게 말도 걸고 햄버거 같은 먹을 것을 사 건네기도 한다. 내가 괜찮은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웃으로서.
18세기 세비야를 무대로 한 롯시니의 희가극 <세비야의 이발사>, 낑낑거리며 가방을 끌고 골목을 들어서는데 이발소가 보인다. 21세기의 피가로가 저곳에 있을까, 이발소 문을 열고 들어서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머무는 동안 한 번 가 봐야지….
숙소를 옮길 때마다 가방 무게로 고생이 말이 아니다. 뭘 저렇게 많이 싸들고 온 거지?! 게다가 시설 좋은 호텔이 아니라 게스트 하우스를 숙소로 찾다 보니 3층까지 계단을 오르는 때도 있다. 대형 여행가방과 배낭, 기내용 손가방까지 두 손이 모자랄 지경이다. 두 달 넘는 객지 생활이 될 것이라 이것저것 챙겨 넣은 것이 화근이다. 평소에 즐기던 차를 마신답시고 다구세트까지 들고 왔으니, 원. 방금 얼굴이 벌게지도록 가방을 끌어올린 세비야 숙소는 3층. 음하하! 좁고 높은 계단에 가방을 끌고 오르니 맨발로 야자수를 타고 오르는 기분이었다! 발바닥도 손바닥도 화끈거린다. 다리도 후들후들 한다.
3층 복도에 가방을 던지듯 내려놓고 힘 풀린 손으로 휴대폰으로 이메일을 확인한다. 집주인이 보내준, 열쇠 찾는 법이 거기에 있다. 비밀을 푸는 황금열쇠인 듯 현관을 열고 들어서기까지 시간이 좀 더 걸린다. 드디어~~ 방안에 들어선 나는 쉴 새도 없이 가방을 풀어헤친다. 짐을 줄여야겠다!
겨울 외투와 신 한 켤레, 모직 스커트, 작은 전기냄비와 포르투에서 산 와인 두 병을 챙겨 들고 우체국을 찾는다. 한국까지 짐 부치는 비용 186유로, 20만 원이 훌쩍 넘는다. 차라리 버려버릴까 하다가 마음을 바꾼다. 오늘 한 일 중 가장 잘한 일이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건 말건 우체국을 나선 기분은 하늘을 날 것 같다.
과달키비르 강변을 걷다
숙소는 구도심 중심에 있어 웬만하면 걸어 돌아다닐 수 있다. 가장 먼저 가고 싶은 스페인 광장은 숙소로부터 8.8km, 히랄다 탑과 세비야 대성당, 로열 알카사르, 황금의 탑이 모두 2km 내에 있다.
세비야의 명물이 된 메트로 폴 파라솔에 나와 과달키비르 강을 따라 걷다 보니 스페인 광장까지 왔다. 젊은 커플이 자전거를 세워 두고 바닥에 누워 있다. 비눗방울을 만들어 날리는 아저씨는 5,6년 전 왔을 때 모습 그대로 같은 자리에서 비눗방울을 만들어 낸다. 물끄러미 서서 구경하는 내게 그가 비눗방울을 뿌려 준다. 관광객을 실은 마차가 또각또각 발굽쇠 소리를 내며 돌아 나가고 남녀 한 쌍이 광장 둘레 운하를 따라 뗏목 같은 배를 젓고 있다. 나도 광장의 일부가 되기 위해 솜사탕을 사서 그늘진 벤치에 앉는다.
마부를 불러 마차 타는 가격을 묻는다. 3,40분 타는 동안 45불. 짐 보내느라 몸살을 한 나는 마차에 앉아 쉬고 싶은 유혹을 떨치지 못한다. 마부 아저씨가 가이드처럼 광장 곳곳을 설명한다. 마차가 광장을 벗어나 도로로 진입한다. 세종문화회관 앞 이순신 장군 동상처럼, 도로 중앙에 로시난테 동상이 서 있다. 누에바 광장이다. 마차는 히랄다 탑과 로열 알카사르가 있는 곳까지 주변 주요 명소를 모두 돈다. 나는 히랄다 탑 앞에서 하차한다. 세계에서 세 번째 규모라는 세비야 대성당의 정교한 외관에 감탄한다. 시간이 늦어 안으로 못 들어간다니 아쉽다.
대성당 옆의 알카사르 궁전, 예전에 알카사르 궁전 오렌지 정원에서 찍은 사진이 눈앞에 선하다. 같은 곳에서 같은 포즈로 사진을 한 장 남긴다. 알카사르는 건축 장식의 정교함 못지않게 넓은 정원이 또 아름다운 장소다. 정원 나무 사이를 거닐며 오후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