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밍웨이가 사랑한 도시 론다
다마스 버스로 론다에 가기로 되어 있는 아침이다. 세비야에서 론다까지 버스로 2시간 반.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온통 초록이다. 수평선까지 닿도록 심긴 올리브 나무, 구릉도 평지도 온통 올리브 밭이다. 스페인은 올리브의 나라.
누에보 다리와 헤밍웨이 산책로, 투우장
버스 터미널에서 누에보 다리까지 걸어서 10분. 누에보 진입하기 전에 투우장이 먼저 나온다. 세비야의 투우장은 스페인에서 가장 오래된 투우 경기장이다. 티켓을 사서 안으로 들어간다. 입장료 8유로. 원형극장처럼 만들어진 계단에 앉아 텅 빈 투우장을 내려다본다. 투우경기를 좋아했다는 헤밍웨이. 피카소와 나란히 앉아 환호하고 열광했을 대문호를 잠시 상상한다. 헤밍웨이에 대해 아는 게 없지만 나는 그의 간명한 문장만은 좋아한다. 그의 문장은 대개 3 형식을 넘지 않고 현학적 어휘보다 보편적이고 쉬운 단어들로 이루어져 있다. 해독도 이해도 쉽다. 생전의 그는 간결한 문장만큼이나 소탈한 성품이 아니었을까.
투우장을 가로질러 반대편 출구로 나오니 파세오 데 블라스 인판테(Paseo de BLAS INFANTE) 공원이다. 안달루시아 지방 정치가이자 작가였던 블라스 인판테의 이름인데 지역발전에 공헌이 컸던가 보다. 이곳에 헤밍웨이 흉상도 부조되어 있다. 나는 헤밍웨이 산책로를 찾기로 한다.
파라도르 호텔 모퉁이를 돌며 시작되는 산책길은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더 이상 갈 수가 없다. 호텔 건축으로 인해 중간에 길이 막힌 듯. 헤밍웨이 산책길이라는 표지가 무색하다. 아담하게 가꾸어진 정원과 제법 숲향기까지 지닌 길이 이리도 짧게 끝나다니 나는 서운함을 달래느라 그 막다른 길 끝에 한참이나 서 있었다. 예전에 왔을 때도 길은 여기까지였는데 나는 왜곡된 기억을 따라 이곳에 다시 온 셈이다. 이런 허탈함이라니... 산책길 옆에 펼쳐진 좌판에서 기념품들을 만지작거리는 것으로 나의 트래킹은 끝난다.
누에보 다리 위를 걸으며 시선을 멀리 둔다. 전쟁 때 요새로 쓰였을 만큼 고지대에 형성된 도시 론다가 절경을 선사한다. 헤밍웨이는 론다를 '연인들이 로맨틱한 시간을 보내기 가장 좋은 도시'라 명명했다. 이 지점이었을까 그의 시선이 머물렀던 곳이. '세상에 너 하나뿐이라서 널 사랑하는 게 아니고, 널 사랑하다 보니 세상이 너 하나다.(영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속 명대사)' 누에보 다리 위에서 이런 고백을 받는다면 누구라도 그 사랑에 굴복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헤밍웨이는 외국인(미국인)으로 스페인 내전(주 1)에 참여하고 전쟁이 끝난 후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이곳 론다에서 집필한다(1940년 출판). 소설 배경은 세고비아 남쪽 마을이다.
마을의 다리 폭파 명령을 받은 로버트 조던이 작전 장소에 가서 게릴라 부대를 만난다. 그리고 작전을 수행하기까지의 우여곡절. 대부분의 전쟁 배경 소설이 대개 이 같은 흐름 속에 있지만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헤밍웨이의 무신론적 회의와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개인의 심리 변화가 잘 드러나 있는 소설이다. 헤밍웨이 자신의 전쟁관과 그의 무신론적 신념을 들여다볼 수 있는 문장도 여럿 있다.
"... 그걸 누가 알겠어? 이 세상엔 이제 하나남도 안 계시고, 하나님의 아들도 성령도 모두 안 계시니 누가 용서해 줘? 난 잘 몰라."
"그럼 영감님한테는 이제 더 이상 하나님이 없다는 건가요?"(로버트 조던과 안셀모 노인의 대화)
안셀모 노인의 말은 헤밍웨이의 속내가 아니었을까….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발표 당시 신학적 논쟁까지 불러일으켰던 소설이다. 여기서 종은 죽음을 애도하는 조종을 뜻한다.
어떤 사람도 그 혼자서는 온전한 섬이 아니다.
모든 사람은 대륙의 한 조각, 본토의 일부이니.
흙 한 덩이가 바닷물에 씻겨 내려가면, 유럽 땅은 그만큼 줄어들기 마련이다.
한 곶이 씻겨나가도 마찬가지고.
그대의 친구나 그대의 영토가 씻겨 나가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의 죽음도 그만큼 나를 줄어들게 한다.
나는 인류에 속해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알려고 사람을 보내지 마라.
그것은 그대를 위하여 울리는 것이니.
.....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책 첫머리에 실린 글>
지중해 남부, 1월의 태양이 오늘따라 유난히 뜨겁다. 누에보 다리가 햇볕에 반짝이는 것을 보면서 나는 요기할 만한 식당을 찾는다. 누에보 다리의 구시가지에 면한 돈 미구엘 식당. 좁은 층계를 따라 아래로 내려가면 다리 아래 협곡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 정갈하게 테이블이 놓여 있다. 태양을 가릴 만한 파라솔 하나 없는 자리에 앉아 늦은 점심을 즐긴다. 소꼬리찜과 연어샐러드에 샹그릴라 한 잔을 곁들인다. 분위기도 맛도 최상이다.
저토록 아름다운 다리 아래에 감옥을 두었다는 건 아이러니다. (현재는 누에보 기념관으로 쓰이고 있다.) 게다가 누에보 다리 건축가가 완공된 다리 아치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려다 떨어져 죽음을 맞았다니, 누에보의 아름다운 외관은 슬픔의 역설인가...
세비야 이발관
론다에서 돌아온 시간은 오후 5시 반, 갈 때 보다 한 시간이나 덜 걸렸다. 시간을 벌었다고 생각하며 숙소를 향해 걷는데 어제 봤던 이발관이 다시 눈에 들어온다. 세비야의 이발사가 궁금하다. 나는 약간의 객기를 발동시켜 이발관으로 향한다. 유명 인사들이 다녀간 듯 사진 액자들이 걸려 있고 나이 지긋해 보이는 이발사들이 다림질 잘된 유니폼을 입고 있다. 의자 세 개를 두고 영업 중인 좁은 가게지만 고급스럽게 꾸며져 있다. 친절한 피가로에게 서비스를 받고 싶어 진다. 여자 커트도 해 주세요? 나의 바보 같은 질문에 정중하고도 친절한 거절이 돌아온다. 아쉽다. 입구에서 사진만 한 장 남긴다.
주 1) 스페인 내전:1936년 스페인 공화파 집권 시기다. 이에 반발하여 프랑코를 중심으로 한 스페인 군부에서 반발이 있었고 이것이 전쟁으로 확대된 것이다. 이때 헤밍웨이는 파시스트에 대항하여 스페인 공화파에 가담, 구급차 운전기사로 전쟁에 참전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