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다정한 하루

약은 먹은 첫날

by 달항아리

약을 먹은 첫날,

나는 조금 달랐다.


아이들이 어질러놓은 것을 보고도

짜증이 나지 않았다.

오히려 웃으며

“이건 여기에 넣자~”

하면서 같이 치우고,

안아주고,

입맞춤도 가득해줬다.


오랜만에 ‘다정한 엄마’가 되어 있는 나를 보며,

나는 조금 울컥했다.


남편은 말없이

내가 약을 먹는 모습을 지켜봤다.

말은 없었지만

그 눈빛은 조용한 지지처럼 느껴졌다.


**


그날 밤,

처방받은 약을 먹고 잤다.

깊게, 정말 깊게 잤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몸이 너무 개운했다.


“이런 게 휴식이구나.”

처음으로 그렇게 느꼈다.


피로가 싹 풀린 몸으로

창밖 햇빛을 바라보는데

세상이 조금은 덜 날카로워 보였다.


**


하루 종일

약간 멍한 기분이 들었지만,

이게 오히려

사람들이 말하던

“평범한 하루” 같았다.


불안하지 않고,

과잉반응하지 않고,

폭발하지 않고,

그냥 숨 쉬는 하루.


짜증이 나지 않는 삶이

이렇게 좋을 줄 몰랐다.

내가 아이들과 웃으며 보낸 그날,

그게 나에겐 기적 같았다.


**


약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약이 내게 보여준 건 있었다.

“이렇게도 살 수 있다”는 가능성.

그리고

“나는 다정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희망.


나는 앞으로

이런 하루를 조금씩 더

나의 것으로 만들어갈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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