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은 먹은 첫날
약을 먹은 첫날,
나는 조금 달랐다.
아이들이 어질러놓은 것을 보고도
짜증이 나지 않았다.
오히려 웃으며
“이건 여기에 넣자~”
하면서 같이 치우고,
안아주고,
입맞춤도 가득해줬다.
오랜만에 ‘다정한 엄마’가 되어 있는 나를 보며,
나는 조금 울컥했다.
남편은 말없이
내가 약을 먹는 모습을 지켜봤다.
말은 없었지만
그 눈빛은 조용한 지지처럼 느껴졌다.
**
그날 밤,
처방받은 약을 먹고 잤다.
깊게, 정말 깊게 잤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몸이 너무 개운했다.
“이런 게 휴식이구나.”
처음으로 그렇게 느꼈다.
피로가 싹 풀린 몸으로
창밖 햇빛을 바라보는데
세상이 조금은 덜 날카로워 보였다.
**
하루 종일
약간 멍한 기분이 들었지만,
이게 오히려
사람들이 말하던
“평범한 하루” 같았다.
불안하지 않고,
과잉반응하지 않고,
폭발하지 않고,
그냥 숨 쉬는 하루.
짜증이 나지 않는 삶이
이렇게 좋을 줄 몰랐다.
내가 아이들과 웃으며 보낸 그날,
그게 나에겐 기적 같았다.
**
약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약이 내게 보여준 건 있었다.
“이렇게도 살 수 있다”는 가능성.
그리고
“나는 다정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희망.
나는 앞으로
이런 하루를 조금씩 더
나의 것으로 만들어갈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