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진료
의사는 내게 심리 검사지를 건넸다.
‘그냥 체크 몇 개 하면 되겠지’
싶었던 마음은
결과 앞에서 완전히 무너졌다.
불안도가 매우 높고,
예민하며,
공황장애와 PTSD.
불안과 우울의 수치가 심각한 수준이다.
그게 내 진단명이었다.
사실, 예상은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막상 누군가가 그렇게
단어로, 숫자로,
“매우 높다”라고 말해주니
기분이 이상했다.
내가 약한 사람인 것 같고,
뭔가 고장 난 사람 같고,
한참 동안 멍하니 있었다.
의사는 말했다.
“주변 사람은 바꿀 수 없어요.
당신이 바뀌셔야 해요.”
그 말은 나에게 잔인하게 들렸다.
왜 또 나여야 하지?
왜 항상 나만 바뀌어야 하지?
하지만 곧,
그 말은 차가운 현실이자,
유일한 해답이기도 하다는 걸 알았다.
**
나는 잠을 잘 못 잔다.
조금만 소리가 나도 깨고,
아침이면 피곤이 남아 있다.
의사는 말했다.
“잠을 못 자면 예민해지고,
그게 불안을 더 키워요.”
그래서
불안 완화제와 수면을 유지해주는 약을 처방받았다.
약 봉투를 손에 쥐고 나오는 길,
내가 이제
‘병원에서 약을 받는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이
조금 낯설고,
조금 슬펐다.
하지만 동시에
어쩌면 이건
‘이제부터 나를 살려보겠다’는 시작일지도 모른다
싶었다.
**
내가 바뀌어야 한다면
그건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더 잘 보호하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일일지도.
약을 먹고,
자고,
숨 쉬고,
조금씩 내 감정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아주 조금씩
다시 나에게 돌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