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어형과 확장형의 국경 관리, 결과?

(강토에 서서 산하를 바라보다 제32화)

by 오해영

왜 중국의 강토는 넓어지고 한겨레는 줄어들었을까?


중국은 역사가 흐르면서 영역이 확대되고 우리 겨레의 삶터는 반대로 축소의 길을 걸어왔다. 이런 결과는 국가의 성격이 제국주의적이었는지 아니면 현황 유지이었는지에 가장 큰 원인이 있지만 지방행정 제도도 이러한 결과에 일정한 역할을 하였다.


왕조시대 국경이나 변경은 지배력이 미치는 범위(면)였다. 이런 상황에서 변경을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강토 확장여부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국어사전에는 국경선이란 단어는 있지만 국경면은 없다. 현재 상식에서 국가 간의 경계는 선이 당연하다. 그러나 왕조시대는 지금과 같은 지도가 없어 국경은 큰 산천을 경계로 범위(면)를 지었다. 그런데 만주지역에는 압록강이나 백두산보다 큰 산천이 있는데 왜 중국과의 경계가 현재와 같이 되었을까?


중국은 변경에 확장 지향의 지방행정 조직을 설치했다.


역대 왕조는 강토 안에는 군현제를 두고 변경이나 소수민족이 많이 사는 지역은 색다른 지방행정조직을 두었다. 보통 군사적 색채를 띤다.


가장 일찍 출현한 조직은 부도위部都尉와 속국도위다. 한 왕조 시대 도위는 군의 책임자인 태수의 부관이었고 담당업무는 군의 군정이었다. 변경지역일 경우 도위는 관할지역도 관장하게 되면서 군사력에 기반을 둔 행정기관의 역할을 하게 된다.


속국 도위는 소수민족을 전문으로 관장하는 관리였다. 한무제 시기 흉노의 혼야왕이 부족을 이끌고 항복하자 중앙조정은 서북지역의 요새 밖에 이들을 거주케 하고 속국도위를 설치하여 이들을 관리한다. 속국 도위는 전속국典屬國(소수민족에 관한 사무 담당 기관)에 속했다. 한나라로 귀순하는 부족이 많아짐에 따라 동한 시기 속국도위는 군과 동급인 지방행정 기관으로 변한다.


도호부도 있는데 시작은 한나라 시기 서역도호부다. 당나라 때에 이르면 안서도호부(서역) 안동도호부(요동) 안북도호부(몽골), 북정도호부(유목), 안남도호부(월남 이북)등이 설치된다. 이들 도호부는 소국을 관리하거나 현을 관할에 두면서 중앙조정이 설치한 주와 역할 구별이 없어진다.


무력 위주의 지방행정기관도 있었는데 북위 6진과 명대 위소衛所이다. 북위 6진은 장성 지역에 설치되었고 위소(도사위소都司衛所)는 변경과 군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에 설치되었다, 변경의 위소는 관할지역과 거주민의 호적도 있었고 본토 지역의 위소는 순수한 군사조직이었다.


청나라 시기 위소는 지방행정 체제인 부주현으로 바뀐다. 그 대신 장군 관할지역과 소수민족 지역의 풍속을 존중하는 맹기盟籏를 설치했다. 특히 만주지역의 장군은 군대와 백성에 대한 권한을 관장하고 통치했다.

이러한 변경의 특수 지방행정조직은 그들의 존재를 드높이고 역량을 키우고자 관장하는 지역을 넓혀갔다. 그러한 역할이 수천 년을 지속되면서 변경이 내지가 되고 새로운 변경을 확보하는 경우가 많아진다. 그러하다 보니 왕조의 강토가 점점 넓어져갔다.


한반도는 방어 지향의 지방행정 조직을 설치했다


우리 겨레의 활동 주무대는 당연히 광활한 만주였으나 잃어버린다. 그런데 역대 왕조의 지방행정 체제를 살펴보면 잃어버린 고토 회복을 추진하기보다는 현황 유지를 중요시하였다. 그리하다 보니 국경지역의 관리조직의 시선은 외적의 침입 막기에 집중했다. 오랜 세월 그러한 역할에 치중하다 보니 확장보다는 수비 지향이 되어갔다.


통일신라의 경우

신라와 당나라의 동맹은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 후 적대관계로 바뀐다. 7년간의 나당전쟁 후 당나라는 황해도 이북지역에서 물러갔다. 신라는 황해도 이북과 평안도를 관리할 지방행정기관을 약 60년 이상 지난 후 행정조직 설치를 추진한다.


그것도 당나라 현종의 관리권 승인을 받고서야 군현을 설치하고 지명을 짓는다. 그렇지만 평양 이북에는 여전히 관리하지 못해 방치되어 갔다.


고려에 들어서면

평안도 강원도 지역에 군사형 행정관리 조직인 양계를 설치한다. 이 양계의 주목적은 이민족 침입에 대응함이었다. 그래서 군사권을 가진 병마사가 행정기능도 겸유하는 방식이다. 병마사 하부기구로 현이 아닌 군사적 성격의 행정조직인 진을 두었다.


조선의 경우

변경 지역에도 다른 지역과 같은 일반행정체제를 두는데 바로 함경도와 평안도이다. 행정권 위주의 관찰사가 군현을 관리하되 변경지대라는 특수성을 감안하여 군사적 비중을 높였을 뿐이다.


이처럼 통일 신라 이후 한반도 북쪽 변경에 설치된 지방행정 기구는 한반도 밖으로 관할을 확장하려는 의도나 성격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런 흐름이 수천 년을 이어 오면서 잃어버린 고토에 대한 회복은 싹트기 어려웠다.


종합

중국은 변경을 확장의 전초기지로 삼았다. 그리하여 새로 확보된 지역은 군현제를 실시하여 통치 영역을 넓혀갔다. 한반도의 경우 변경을 왕조 수비의 방패로 사용했다. 결국 외부로 힘을 쏟기보다는 관할지역을 수비형으로 관리함에 주안점을 두었다. 이런 차이가 강토 역사를 다른 방향으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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