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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해영 Jan 03. 2024

자존감 지키기, 쓸모 붙들기
(개자추 설화)


연초에 접어들면 과거의 삶을 점검하고 앞으로 계획을 고민해 보는 분위기가 된다. 더욱이 언론을 통해 유명인의 안타까운 선택을 보면서 삶의 과정에서 자존감 지키기와 사회적 쓸모 붙들기에 대해 생각을 해본다.   

  

자존감이 상처받고 사회적 쓸모가 의심받아 힘든 고통의 시간과 선택의 기로에 처해져서 많은 아픔과 좌절을 겪는다. 타인이 그러한 경우에는 객관적인 상황판단과 바람직한 권고를 할 수 있는데 그 문제가 나 자신에게 닥치면 주관적인 감정에 빠지고 유독 아픈 부분에 초점을 맞춰 자신을 책망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하다 보니 어쩔 때는 자존감이 한없이 추락하여 내 존재의 의의까지도 스스로 부정하기도 한다. 더 깊게 빠지게 되면 되돌아올 수 없는 선택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 역할을 잘 수행하여 내 존재감을 지키면 얼마나 좋을까? 나보다 잘하는 동료를 보면 부럽고 그만큼 오히려 내가 더 작아지기도 한다. 


아주 평범함이 재주인 내 삶도 이럴진대  뛰어난 재능으로 굴곡이 심한 삶을 살아간 경우 자존감 지키기와 사회적 쓸모를 어떻게 다루었는지 설화를 보자.  


   


개자추와 한식


당태종(진문공의 오인)에게 세명의 충신이 있었는데 그중 개자추는 제갈량만큼이나 모르는 게 없었다. 당태종이 난리를 평정하여 대국을 점령하고 공신에게 벼슬을 주는데 세명중 두 명에게는 영의정 우의정 벼슬을 줬다. 개자추는 혼자 계시는 모친이 병이 들어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집으로 가버린 상태였다. 


마을 사람들이 개자추에게  “자네도 서울 가면 우의정 하나는 할 텐데, 오막살이 집에서 고생이 많네.”

개자추는 대꾸하길 “자연히 불려 가서 벼슬해야지 자청해서 벼슬함은 싫소!”      


그러자 마을 사람들이 “자네가 안 올라가면 우리가 통기를 해줄 거네.”  밤이 되자 어떤 동네 사람이 대문에 글씨를 써 붙이고 내려왔다.

 

“이이는 등용문 하고 일이는 타락하니.”

  

문지기가 이튿날 대문에 쓰인 글씨를 임금에게 상소했다. 

“아하! 셋 공신 중 내가 개자추를 잊어 뿌렸네, 내 실수다. 빨리 개자추를 모셔 오너라.”      


개자추는 엎드려 절 받기식은 싫다며 오라 캐야 하지 통기해서 얻는 벼슬은 아니다 하고 그날 밤 모친을 업고 도망을 했다. 나라에서 개자추를 찾아오는 사람에게 상금을 줄 거다라는 영을 내렸다. 어떤 백성이 개자추가 촉나라의 금각산에 들어가는 것을 봤다고 했다.      


군사를 금각산에 풀어 수색을 하였으나 찾지를 못하자 나라에서 영을 내려 산을 삥 둘러서 불을 내라 했다. 뜨거워지면 산에서 나올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불이 다 꺼진 후 다시 찾아보니 개재추 모자가 바위 밑에서 타 죽어있음을 발견했다. 


나라에서는 죽은 개자추의 넋을 세상이 기억하라고 춘추 대제를 지내게 했다. 복자(관상가)에게 택일을 명령하니 이월 청명 이튿날이 좋다고 했다. 그래서 임금이 영을 내려 청명 이튿날을 한식이라 하고 민가에서 그날만큼은 불을 못 피우게 했다. 죽은 넋에게 연기를 내면 안 된다고 하면서.


그게 우리니라에 전해져서 한식날 불을 이용하지 않고 식사를 준비하며 또 이날은 어떤 일을 해도 귀신의 탈이 없어 선조묘에 사토를 하는 풍습이 되었다.    



 

설화와 사실 엿보기     


설화에 등장하는 개자추는 기원전 7세기 무렵 중국 춘추시대에 살았던 실존 인물이다. 그가 모시는 공자 중이(후에 진문공이 됨)가 정치세력 간의 알력에 의해 외국으로 도피 생활을 19년 동안 하게 되는데 이때 그를 수행하며 숱한 어려움이 닥쳐도 흔들림 없이 성심을 다하여 공자 중이를 모셨다. 


19년이 지난 후 나라의 난이 마무리되자 공자 중이는 귀국하여 군주가 되었다. 진문공은 그간 자기와 함께 고생한 사람들을 논공행상을 하여 높은 벼슬을 주고 고생한 노고를 보상받게 하였는데 개자추는 어떠한 벼슬이나 보상도 받지 못했다.


 그러자 그는 깊은 산속으로 모친을 모시고 숨어버렸다. 나중에 진문공이 잘못을 알고 그를 찾으려 여러 차례 노력을 하였으나 설화에서 처럼 현실에서 도망하여 깊은 산속에서 불에 타 죽어 버렸다.  진문공은 그의 애석한 죽음을 기리기 위해 청명절에 불을 피우지 않게 하고 제사를 지냈다. 여기서 한식 명절이 연유한다.


그런데 개자추와는 정반대의 행위를 한 두수라는 인물이 있다. 그는 진문공의 집에서 창고를 관리하는 자이었는데 진문공이 외국으로 유랑할 때 자기의 특기인 돈을 관리하는 역할로 함께하나 고생길만 보이고 보상을 받을 가능성도 없을 것 같자 진문공 일행의 돈을 가지고 도망처 버렸다.     


 외국에서 정처 없이 떠도는 일행에게 돈까지 사라지니 고생이 더욱 가중되어 먹는 것도 구하기 힘들 상황에 처 해진다. 그러나 나중에 진문공이 군주가 되자 두수는 그 앞에 나타나 본인의 쓸모를 역설하고 사용해 달라고 주장한다.


진문공은 옛날의 배신행위로 얼굴 보기도 싫었으나 당시 진문공은 정치적 입장(기존 정치세력을 용서한다는 진문공의 조칙을 믿지 못함)을 고려하여 그를 처벌하지 않고  오히려 높은 벼슬까지 준다, 그는 천수를 누리다 자연사한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개자추와 두수 두 사람의 상반된 삶에서 자존심 지키기와 사회적 쓸모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단순하게 경우의 수를 생각해 볼 수 있다.  

   

⓵자존심과 사회적 쓸모 모두 지킴, ②자존심과 사회적 쓸모 모두 못 지킴, 

③자존심 지키고 사회적 쓸모 못 지킴,  ⓸자존심 못 지키고 사회적 쓸모 지킴    

 

개자추의 삶은 ③번이고 두수의 경우 ⓸번으로 볼 수 있다. ⓵과 ②는 극단적이고 보통의 경우 ③또는 ⓸경우라면 여러분은 어떤 번호를 선택하겠습니까?     


성주 지명


위 설화는 성주에서 전래하는데 성산가야(벽진국)가  신라에 복속되어 본피현, 적산현이라 하다가 통일 신라 경덕왕 신안현, 도산현으로 개명된다. 그 후 고려 충렬왕 때 성주로 바뀌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지명에 별과 관련된 의미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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