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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업 중지, 대규모 정리 해고

사업이야기 EP4

by 레베럽 Jan 15. 2025

헤이러너스의 비즈니스 모델은 센트럴키친에서 음식을 만들어, 각 판매점에서는 순수하게 판매만 하면 되는 시스템을 구축해 빠른 성장을 도모하는 형태로 구상되었다. 실제 종로점의 매출로 시뮬레이션하면 월 800만 원 이상의 순수익이 발생하고 있었고, 이를 상암동과 여의도 등 주요 업무지구에 복사 붙여 넣기 하는 것이 성공한다면 서울 안에 100개 이상의 지점을 만드는 것은 그 어느 프랜차이즈 보다 빠르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IR 자료 일부IR 자료 일부

실제로 투자자들 앞에서 발표를 해본 바,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에게 명함을 받았다. 말이 되는 비즈니스라는 반증이기도 했다. 가장 큰 호응을 얻었던 것은, 판매만 하면 되는 소형 매장의 매력이었다. 매장이 작다 보니 큰 비용으로 시작하지 않아도 되고,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인건비 상승으로 인한 직원 고용 스트레스 또한 없애준다. 점주가 직접 일해도 노동 강도가 매우 약한 편이라, 혼자서도 얼마든지 커버 가능하기 때문이다. 매장 손님들 중엔 프랜차이즈화 시작하면 꼭 자기에게 매장 하나만 내달라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내 주변 사람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니, 잘 될 사업이라는 데에 한 치의 의심도 없었다.


우리가 풀어야 할 유일한 문제는, 상암동 매장이 종로점처럼만 매출이 나오게 만들면 되는 것이었고 오픈 초기엔 순탄해 보였다. 나는 이제 다음 스텝으로 여의도에 매장을 낼 준비를 위해 돈을 마련하고 시장조사를 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 문제가 생각처럼 풀리지 않았다. 


매출을 올리려 이런저런 마케팅도 해보며 고군 분투 했지만, 오픈한 지 6개월이 다 되어가는데 종로점 매출의 반정도밖에 안 나오는 사태가 벌어졌다. 첫 단추가 틀어졌다. 같은 음식을 판매하는데 지역에 따라 이렇게 차이가 날 수 있다는 것은 예상 밖의 일이었다. 상암동 매장은 종로의 매장보다 훨씬 큰 권리금과 비싼 월세를 감당해야 하는 곳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나 차이가 난다면 이는 프랜차이즈가 될 수 없음을 의미했다. 어느 매장에서는 잘 팔릴 수 있지만, 어느 매장에서는 잘 안 팔릴 확률이 있다는 것. 모든 사업주가 자금이 여유롭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점주가 1 급지의 좋은 매장을 선택할 수 없다는 경우의 수가 훨씬 더 많을 것이라는 가정이 생기고, 이 경우 잘 되는 곳 보다 잘 안 팔리는 매장이 훨씬 많을 것이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더 빨랐어야 했다. 이 판단이 훨씬 빨랐어야 했다. 시간이 지나면 매출이 올라오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은 빠르게 접어두고, 어떻게든 되게 만들려고 일찍부터 노력하던가 빠르게 사업전환을 준비했어야 했다. 월 수천만 원씩 적자를 감당하며 6개월이 지나니 2~3억이 녹아 없어졌다. 나의 우유부단함이 돈도 시간도 녹아 없어지게 한 것이다. 불행하게도 이 사태를 6개월 전에 예약한 가족여행 가기 직전 직시했고, 부득이 가게 된 호주에서 나는 스트레스로 인해 역류성 식도염이 도지고 이는 기관지염으로 번져 며칠을 고열에 시달렸다.


타롱가 동물원에서 찍은 시드니 전경타롱가 동물원에서 찍은 시드니 전경

호주의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으나, 내 마음은 폭풍우가 몰아치고 있었다. 그것을 가족들에게 내색 안 하려고 최대한 애를 썼으나, 고열과 기침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살면서 처음으로 타이레놀 10알을 3일 만에 다 먹었다. 약은 어지간하면 먹지 않는 주의지만, 이땐 진통제 없이는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다. 그렇게 다녀온 지 일주일이나 지난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나는 기침을 하고 있다. 제기랄


일주일간의 여행이 끝나고, 복귀 날 아침 7시에 여의도의 한 커피숍으로 운영진을 소집 후 회의에 들어갔다. 2시간의 회의 끝에, 우리는 자본에 밀려 이 비즈니스모델을 존속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날 내가 한 업무는, 직원들에게 영업중지와 피벗팅을 설명하고 11명 중 8명을 해고하는 일이었다. 영업중지를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영업을 하면 적자가 4500만 원인데, 영업을 중지하면 2700만 원으로 줄어드는 아이러니 때문이었다. 


가장 먼저 주방으로 가서 주방 직원분들께 현 상황을 알려드리고, 죄송하다며 영업 중지 및 해고를 알렸다. 다행히도 직원들과의 관계가 나쁘지 않아, 누구도 나를 원망하지는 않았다. 비록 이렇게 됐어도 잘되길 바란다는 인사를 들었다. 마음은 아팠어도 괜찮았던 같다. 곧이어 상암동 매장으로 이동해서 매니저와 알바, 배송직원분께 존속 불가능과 사업전환 그리고 해고를 알렸다. 죄송하다 말씀드리며 90도로 고개 숙여 인사하고 고개를 드는데, 눈물이 왈칵 터져 나왔다. 몇 개월간 같이 고생한 매장 매니저도 눈물이 터졌고, 마지막 인사처럼 포옹을 하는데 서로 끌어안고 10초는 울었던 것 같다. 울음이 터진 이유를 곱씹어보니 서로를 이해하는 사람이 있었기에 그랬던 같다. "고객에게 나은 서비스란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우리 고객이 만족스러워 있을까?" 고민을 같이 6개월간 하다 보니 통하는 게 있었나 보다. 그래도 잠깐이지만 울고 나니 후련했다.  그리곤 종로로 넘어가 3번째 고지를 했고, 이때엔 감정이 휘몰아치지 않았으나 몹시도 우울했다. 정작 해고되는 직원들 모두가 내힘내라고 이야기해 줬지만, 도무지 힘이 나지 않는다.


나는 한 번도 담배를 피워본 적 없고, 술도 잘 마시지 않는다. 그런데 이때는 술담배를 동시에 하면 기분이 나아질까 싶은 충동이 일었다. 하지만 기분이 안 좋을 때 이런 행위를 하는 것은 더더욱 안 좋다는 것을 잘 안다. 그 대신 나는 아이스크림 하나를 사 먹으며 종로 거리를 배회하는 것으로 나를 달랬다. 기관지염으로 기침을 하는데, 날씨는 영하라 추운데,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종로 거리를 돌아다니는 유일한 인간이 바로 나였다. 그냥 돌아다니기는 양심에 찔리니까, 새로운 매장을 오픈할 입지를 본다는 핑계로 돌아다녔다. 그러다 도저히 일 할 마음이 들지 않아 집으로 일찍 들어왔다. 내가 대표니까, 집에 일찍 들어가도 아무도 뭐라 할 사람이 없다. 그렇다고 평소에 일찍 집에 들어가는 일은 거의 없었지만, 오늘은 왠지 누가 내게 뭐라 하지 않는 자리에 있다는 게 외로웠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내가 선택한 자리인데.


팀원이 믿고 따라오게 만들 수 없는 리더는 존재 가치가 없다.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그들에게 성장과 성취를 경험시켜야 한다. 그리고 이번엔 이게 분명히 될 거라고 그들도 믿게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팀원에게 희생을 강요할 수 없다. 비전이 없는 팀은 반드시 와해된다. 이제 우리의 비전은 클래식으로 돌아간다.


주방이 붙어있어 음식을 바로 제공할 수 있는 식당을 운영한다. 이를 통해 인건비를 최대한 아끼고, 신선한 음식을 제공한다. 너무나 간단하지만 이것이 새로운 비전이다. 

브런치 글 이미지 3

우리의 메뉴 중 감태 생참치 김밥이라는 메뉴가 있다. 갓 나온 감태 생참치 김밥은 너무나 맛있었다. 그래서 이 김밥은 잘 팔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출시하고 보니 문제가 있었다. 우리 비즈니스모델 특성상 갓 나온 김밥을 제공하는 게 아니다 보니, 시간이 지나 감태가 눅눅해지면 비릿한 향이 올라오는 것이다. 같이 들어있는 새우튀김도 바삭함을 잃고, 참치도 빛을 잃는다. 결국 우리는 이 메뉴를 사전주문 한정 메뉴로 돌리고, 소수에게만 이 김밥을 판매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새로운 매장에서는 이 김밥을 누구에게나 신선하고 바삭하게 제공할 수 있다. 그리고 새로 나올 스테이크 김밥마저도 따듯하게 제공할 수 있다. 애당초 신라호텔 출신 셰프가 만드는 고퀄리티 프리미엄 김밥을 지향하는 브랜드였던 헤이러너스가 아니었던가. 종로에서 다시 시작할 신규 매장 오픈은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더 양질로 제공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훌륭한가. 순식간에 대형 프랜차이즈 회사가 되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처음부터 쌓자는 생각으로 다시 시작하는 거다. 하지만 1호점, 2호점, 주방까지 모두 정리되어야 그 돈으로 매장을 차릴 수 있기에 아직 매장 오픈까지는 몇 개월 걸릴 것 같다. 돈이 없는 사장의 서러움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1월 13일부터 영업 중지를 선언했으나, 매장을 닫고 월세만 내며 가만히 두기가 너무나 아까워서 16일 목요일부터 종로점 매장은 하루 100줄 한정으로 영업을 재개한다. 최소 인원으로 만들려면 이 정도 수량이 최선일 것 같아서다. 이러다 매장이 갑자기 팔려 언제 다시 중단될지 모르지만, 늘 정성으로 음식을 만들어 대접하겠다는 초심을 잊지 않고 일하다 보면 고객도 기다려 주실 것이란 믿음으로 영업을 재개함을 알아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


PS: 연어 아보카도 김밥은 저희의 시그니처 메뉴이자 가장 잘 팔리는 메뉴인데, 원화 가치 하락으로 인해 연어 원물 가격이 1.5배 상승했습니다. 마진율이 엄청나게 떨어지는 일이죠. 그렇다고 가격을 올리는 결정을 하자니 경제도 어려운데 선택하기 힘든 문제였습니다. 저희의 결정은 오프라인(테이크아웃)은 1.2만 원을 유지하되 온라인 배달은 1.5만 원으로 가격변경 후 판매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온라인 배달의 마진율이 극악이라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저희의 입장입니다. 더 많은 고객분들께 저희 김밥을 알리고픈 마음에 손해를 감수하고 그간 동일 가격과 할인가격 등으로 판매해 왔으나, 저희가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1월부터는 할인 없이 그렇게 판매하고 있는 점 양해부탁드립니다 ㅠㅠ



EP5 예고

사업은 생각보다 훠어어얼씬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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