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말의 뒷발차기를 멈추게 할 수 있을까요?
사람 간에도 서로가 맞는 사람이 있고, 맞지 않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말과 사람 사이에도 그렇다. 나중에 아주 잘 타게 되면 어떤 말을 타게 돼도 자신 있고, 자신이 원하는 걸음걸이를 만들어 낼 수 있다던데... 나는 아직은 아니어서, 이상하게도 난 사람들이 타기 어렵다고 하는 말이 타기 쉽고, 쉽다고 하는 말이 어렵게 느껴질 때가 많다.
원인은 다양하겠지만 오랫동안 의자에 앉아 있는 생활 습관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골반 방향과 반대로 골반이 전방경사 된 게 가장 큰 이유인 것 같고, 그다음은 골반을 바로 세울 만큼의 다리 힘이 없어서 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래도 왜 쉬운 말이 어렵고 어려운 말이 왜 쉬운 건지는 시원하게 설명이 되지 않지만...
"용희 씨는 오늘 스칼렛 탈게요."
앗, 드디어 만났다. 내가 가장 어려워하는 말.
스칼렛은 하프링거로 우리 승마장에서 가장 멋지게 생긴 미녀 말인데, 사람들은 대체로 스칼렛이 무난한 말이라고 한다. 하지만 내게는 가장 타기 어려운 말이다.
나는 스칼렛에게 고삐를 채우고, 함께 마구간을 나왔다. 스칼렛은 도도한 외모만큼이나 까칠하고 예민하면서 고집도 세고, 다른 말보다 키가 커서 높고 무섭다. 스칼렛은 돌발행동도 많이 하는 데 차를 무서워해서 마장 밖 차도에서 차들이 과속 방지턱에 걸려 요란하게 지나가면 갑자기 냅다 뛰고, 수업 끝날 때쯤엔 내리라고 고개를 세차게 흔들어 댄다.
그래서 스칼렛과 함께 수업하려면 어떤 돌발행동에도 놀라지 않고 엉덩이를 안장에 딱 붙일 수 있는 담대한 마음이 필요하고, 스칼렛이 폴짝 뛰더라도 자기 몸을 두 다리로 중심을 잡아 들어 올릴 수 있는 코어 근육 정도는 필요한 것 같다.
말을 탈 때는 무릎 밑 정강이 안쪽으로 말 배를 감싸야 하는데, 스칼렛의 체형과 내 체형이 뭔가 안 맞는지 스칼렛의 배를 감싸려고 하면 무지 불편하게 느껴지고, 안정적인 느낌이 없다. 또 다른 문제는 내가 상체를 뒤로해서 엉덩이를 안장에 붙이려고 하면 스칼렛의 뛰는 속도가 느려지고, 스칼렛을 빨리 보내려고 상체를 살짝 숙이면 엉덩이가 떠버린다. 그래도 나름의 노하우가 있다면 스칼렛은 상체를 살짝 앞으로 숙이는 게 중심 잡기 편하단 거랄까?
오늘도 나는 어느 정도는 어려운 수업이 될 거라 예상하고 스칼렛에게 말했다.
"스칼렛, 언니 탄다."
부디 오늘은 스칼렛이 얌전하기를 바라며 3단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려는 데, 스칼렛은 보란 듯 엉덩이 방향을 내 쪽으로 틀어서 나를 사다리에서 밀어버렸다.
"헐."
사다리에서 떨어지는 나를 보고 함께 수업을 듣는 부인분이 말씀하셨다.
"용희 씨, 스칼렛은 혼자 타면 안 되고 옆에서 잡아줘야 해요. 쟤는 엉덩이로 다 밀어버리거든."
나는 결국 희숙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안장에 올랐다.
"그러면 수업 시작하겠습니다."
드디어 수업이 시작되었다. 오늘은 내 컨디션이 안 좋은 건지, 스칼렛의 컨디션이 안 좋은 건지 모르겠지만 시작부터 뭔가가 계속 불편했다.
뒤에 계신 회원분이 말씀하셨다.
"종아리를 말 배에 더 붙이고, 발뒤꿈치 내려요. 오늘 잘 안되는 것 같은데요?"
역시나 내 종아리는 스칼렛의 배에 밀착되지 않고 허공에 붕붕 떠 있었다.
"네. 몸이 좀 풀려야 될 것 같아요."
그렇게 대답하고 어느 정도 수업 진행돼서 고관절이 풀리면 좀 나아질 거로 생각했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다 보니 뒤의 분이 트랙의 다른 곳에 계시는지 보이지 않으셨다. 나는 수업 중반부터 머리를 흔들어 대는 스칼렛을 컨트롤하느라 온 신경이 스칼렛에게 향했다.
"용희 씨, 고삐 연결이 잘 되어 있으면 말이 머리를 흔들려고 할 때 바로 알 수 있어요. 말이 머리를 움직이려고 할 때 한쪽만 고삐를 살짝 잡아당겨 보세요."
말은 쉬운 데, 기좌가 잘 잡히지 않는 상태에서는 고삐를 계속 놓치는 것만 같았다.
"용희 씨, 네 번째 손가락에 힘 더 주시고요. 엄지손가락에서 고삐가 빠지지 않도록 하세요."
그렇게 고삐와 기좌에 신경쓰면서 한참을 달리다 보니, 어느새 수업도 끝나간다.
"자, 그러면 평보 한 바퀴 돌고 수업 마무리하겠습니다. 말한테 칭찬."
나는 오늘 애써준 스칼렛의 목을 쓰다듬으며 태워줘서 고맙다는 의미로 토닥토닥 해주었다. 마장 문 앞에 이르러 말을 정지시키려는 데, 뒤에 아까 사라지셨던 회원님이 나타나셨다.
'응? 언제 나타나셨지? 안 보이셔서 밖으로 나가신 줄 알았는 데, 계속 계셨나 보네?'
생각하면서 말을 확실히 멈추려는데, 별안간 스칼렛이 뒷말에 뒷발차기를 시전했다. 나는 유튜브에서 앞다리를 들어 올리는 태연히 앉아 있는 분의 동영상을 본 적은 있지만 뒷발차기 하는 말에 탄 사람은 본 적이 없는데...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지 당황스러웠지만 난 말에서 떨어지고 싶진 않아서 최대한 고삐를 잡고 버텼다.
그렇게 스칼렛은 몇 번 더 뒷발을 차더니 제자리에 멈추었다.
수업이 끝나고 소식을 들은 미정 선생님이 내게 말씀하셨다.
"아이고. 용희 씨. 무슨 일이래?"
"저도 잘 모르겠는데, 스칼렛이 저를 태우고 뒷발을 차 버렸어요."
"그건... 완전 기승자 무시한 건데..."
'그런 거야 스칼렛? 이거 완전히 마음에 상처 입었는데?'
"그럴 땐 고삐만 앞쪽에서 당기면 안 되고, 엉덩이를 안장에 딱 붙이고 최대한 뒤로 누워야 해요."
미정 선생님의 말씀에 의하면 말이 돌발 행동을 할 때 기승자가 기좌를 제대로 잘 한다면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기좌는 기승자가 말을 탔을 때 허리를 펴고 안장 중앙 깊숙이 앉아 체중을 양쪽 골반에 잘 앉혀놓고 무릎 안쪽을 말에 밀착시킨 후 골반, 무릎, 다리를 바른 자세로 내려놓은 채 발뒤꿈치를 아래쪽으로 내리면 되는 것인데... 하지만 과연 어느 정도의 자신감이 있으면 말이 날뛸 때 태연하게 엉덩이를 말 등에 붙일 수 있는 것 일까?
앞으로 나는 그 정도의 깡이 생길 때까지 말을 계속 타 봐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