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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의 사랑의 역사

by 문 자 까

20대 내내 나는 사랑을 탐구하고 기록하고 탐미했다.


어느 어른들은 그런 내게 아직 어리다며 진부한 사랑 예찬에 지루해했고, 어느 또래 지인들은 사랑에 몰두한 나를 신기하게 여겼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그런 나를 애틋하게 여겨주기도 했다.


자유를 갈망하는 나는 이십 대 내내 감정에서 해방되길 원했다.


스무 살 초중반의 나는 상대의 작은 행동 하나에 두려워 도망가기 일쑤였다. 그러면서도, 도망가는 나를 잡아주길 바라고 또 원했다. 가까운 이들의 배신과 음침함에 사랑과 관계에 대한 시선의 염증은 곪고 곪아 나를 염세적인 사람으로 만들어 냈다.


그래서 떠났다. 더 이상 미워하기 싫어 도망치듯 떠난 고향. 도망간 발걸음엔 다행히 새로운 도전이라는 희망도 함께 있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다. 이들은 내가 원하는 자유와 진심이 함께하는 사람들이었다. 과한 자유에 상처를 받기도 하고, 깊은 진심에 변하기도 하는 나를 볼 수 있었다.


내가 뭐라고 사람들은 나에게 정성을 다하고 진심을 쏟아 줄까. 모순으로 가득한 내 모습 안에 진심을 발견하곤 “넌 누구보다 사랑이 많은 사람이야”라며 꾸준한 응원을 아끼지 않은 사람들. 이들 덕분에 왜곡됐던 내 과거는 나름대로 행복했단 걸 깨닫게 되었다.


돈이 없는 남자들을 줄곧 만나오며, ‘내가 먹여 살린다.’라는 사랑의 형태를 갖다가 일을 더 사랑하게 된 나. (나 하나도 먹여 살리기 힘들단 걸 깨달은 건 얼마 안 됐다.)


꿈을 사랑하는 상대에게 나 좀 봐달라며 갈구했던 과거의 나. 지금 생각하면, 그들을 좀 더 이해하고 깊이 사랑했더라면 서로 덜 상처받았을 텐데.


켜켜이 쌓이는 내 사랑의 역사는 이십 대 끝자락의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네가 받았던 사랑 중 가장 인상 깊었던 형태는 뭐야?” 나는 대답하길 “나라는 존재 하나만으로 충분했던 그런 사랑”


고향 친구가 말하길, “다른 사람이 하면 힘들었을 행동인데, 너니까 나는 그게 즐겁고 재밌게 느껴져. 그냥 이 모습도 너니까.”


과거 만났던 어떤 이가 말하길, “나도 네 친구들의 남자친구들처럼 싫다고 말할 수도 있는데, 넌 너의 인간관계도 중요한 사람이잖아. 그래서 난 괜찮다 한 거야. 이게 내가 사랑하는 방법이니까. 그러니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상대의 쌓아온 시간과 이야기들을 나라는 변수로 헤집어 놓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 존중하고 이해하는 것. 천천히 스며드는 것.


이를 실행하는 과정은 꽤나 큰 저림을 동반하지만, 완전한 수용의 단계로 이르렀을 때의 쾌감은 그 어떤 사랑보다 큰 쾌감을 허락한다.


가까운 각자의 형태. 자주 보지 않아도 오래 보는 나의 사랑. 그게 내가 누군가를 가장 아끼는 방법.


내 주변 사람들은 자주 연락하지 않아도 진득하고 깊게 이어지는 우리의 관계가 신기하고 애틋하다 한다. 난 이를 이해해 주고 남아주는 그대들에게 더 애틋함을 느끼고.


겉으론 가벼운 사랑을 외치는 나지만, 사실은 그 누구보다 진심이기에 고독하고 은밀한 사랑을 탐미하고, 이를 알아주는 소중한 사람과 사람들. 그저 고마울 따름.


진정한 수용과 행위에 대한 만족감은, 비로소 나를 ‘사랑 속 자유함‘으로 이끌어 냈다.


ps. 어떤 형태든 네가 나의 오랜 인연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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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살 가족에 대한 사랑을 깨닫고,

29살 친구들에 대한 사랑을 깨닫고,

서른이 된 순간 나는 내 진정한 사랑의 형태를 깨닫고.


20대의 난 ‘그저, 사랑’의 역사였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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