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대한민국을 처음 벗어나 호주라는 나라를 갔을 때 가장 신선했던 것 중의 하나는 여자들이 그다지 꾸미거나 차려입지 않고 자연스런 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한다는 점이었다. 이것은 동네나 시내나 별 차이가 없이 마찬가지였다. 화장을 하지 않은 민낯에 머리는 질끈 묶거나 자연스럽게 풀고 편안한 티에 반바지 차림 혹은 원피스 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그녀들은 낯설지만 자연스런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더욱 놀라운 점을 곧 발견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브래지어를 하지 않는 여성들이 꽤 많다는 점이었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차림을 보는데도 곧 익숙해졌다. 사실 대부분의 여성들이 외출 후 집으로 돌아와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손을 씻고 브레지어를 벗어 던지는 일 아니던가?!
그나마 요즘에는 와이어리스 브라, 스포츠 브라, 브라렛, 브라티셔츠, 나시브라 등 많은 버전의 브래지어가 나와서 여성의 몸에 그나마의 자유를 선사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여성들은 아직도 중력에 저항하는 가슴만이, 나이에 관계없이 풍만하고 탄력있는 그 무엇만이 아름답다는 무언의 압력 속에 여전히 살고 있다.
나는 코르셋이 여성의 속옷 세계에서 어느새 사라졌듯이 언젠가는 브레지어도 조금씩 사라지지 않을까 생각하고 기대한다. 그리고 여성도 남성처럼 아침에 세수만 하고 출근하는 세상을 꿈꿔본다. 여름이면 어디서든 차가운 물을 틀어놓고 세수하고 수건으로 닦아낼 수 있는, 민낯으로 출근하는 여성이 게으르거나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아서가 아님을 서로가 수긍하는 세상이 오기를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나도 민낯으로 거리를 꽤나 잘 활보한다. 이것은 코로나가 나에게 준 선물이다. 코로나 3년의 시간동안 나는 화장하지 않고 사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지금도 일주일에 한번만,나 스스로를 위한 화장하는 감을 잃지 않기 위해서썬크림에 립스틱 정도 바르는 가벼운 화장을 한다. 나이가 들어서그런지 이런 화장법도 꽤 자연스럽고 상대적으로 어려보여 만족스럽기도 하다.
어쩌면 우리는 여성은 얼굴도 몸매도 심지어 손과 발까지 예뻐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점철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만족과 선택으로 하는 꾸밈이라면 언제든 좋다. 하지만 타인의 시선과 무언의 압박에 의한 꾸밈이라면 이제는 사양하고 싶다.